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 너구리 Sep 22. 2020

도가니집

도가니집


                                                 박태건


늙은 아버지와 늦은
점심을 먹는다 장맛비 오는
전주의 오래된 식당인데
식탁은 좁아서 우린 한 식구 같다

혼자 온 사람, 함께 온 사람, 늙은이, 젊은이, 양복쟁이, 츄리닝……
한 그릇의 국밥에 머리를 숙인다
식당의 강아지도 머리를 숙인다

나는 아버지의 수저에 깍두기 한 알을 얹으며
비 내리는 창문에 CT 모니터 속의
아버지의 주름과 갑작스런 나의 실업과
어느새 흘러간 것들을 생각한다

어떤 순간은 기도 같아서
비 긋는 좁은 처마 아래
우린 한 식구 같다



늙은 아버지와  늙은 아들, 그것도 갑작스러운 실업을 당한 아들의 식사가 도가니 집에서 이루어지는 풍경이다. 늙은 아버지, 그리고 늙은 아들, 그들의 늦은 점심. 이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나 흔한 풍경일 수 있다.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그 발자국을 따라 우리들도 한 발 한 발 늙어간다. 아무리 세월을 붙잡고 싶어도 붙잡아지지 않는 세월이 참 무심하다.


갑자기 실업을 당한 아들과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아버지는 아침 식사를 아마도 늦게 했겠지. 아침 일찍 시작되는 다른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과는 다른 천천한 삶의 시작이다. 장맛비까지 부슬부슬 오는 전주의 오래된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부자지간만은 아니다.


혼자 온 사람, 함께 온 사람, 늙은이, 젊은이, 양복쟁이, 츄리닝…… '으로 표현된 식사하는 사람들은 사실적인 그림처럼 보인다. 도가니 집뿐 아니라 일반 음식점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의 면면이 좀 슬프다. 혼자 왔거나, 함께 왔지만 늙었거나 젊고, 양복쟁이이거나 츄리닝을 입었다. 그런데 이 일상적인 풍경이 나는 왜 슬플까? 그것은 이들이 먹는 점심이 '늦은' 점심이라서 그렇다. 모두들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에겐 정해진 점심시간이 있고, 그 시간 안에 점심을 해결해야 하니까.


적어도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가 있든지 간에 끼 때를 놓친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이 슬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행위' 한 그릇의 국밥에 머리를 숙이'는 행위야 말로 이 시에서 나는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만큼은 고개를 숙인다. 고개를 숙이는 행위는 지금 이 식탁에 놓여 있는 음식에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 식탁을 준비해준 모든 사람들, 모든 자연의 이치들에 고개 숙여 감사하는 행위이다. 그러기 때문에 '식당의 강아지도 머리를 숙인다'  


마지막 연에서 이들이 모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행위는 '기도'와 연결된다. 이 식탁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비 긋는 좁은 처마 아래' 에서 같이 기도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들에게서 시인은 '한 식구 같'음을 발견해 낸 것이리라. 시인은 '아버지에 대한 걱정, CT 모니터 속의 아버지의 주름'으로 대변되고 있는 아버지의 건강에 대한 걱정과 자신의 실업으로 인해 야기되는 모든 걱정들을 ' 아버지의 수저에 깍두기 한 알을 얹'는 행위로 극복해내고 있다. 그의 기도는 도가니 집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아버지의 수저에 깍두기를 얹는 행위를 통해 완성되고, 이루어진다.





커버이미지: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 박태건 시인. 모악 출판사. 2020. 8. 31.



매거진의 이전글 비닐봉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