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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너구리 Sep 11. 2023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이장

1. 동네 사람들이 작당하다

이 글에 등장하는 장소와 인물은 허구이며, 실제가 아닙니다.


마치 황소가 화가 난 모습과 유사했다. 추운 새벽녘, 콧김도 얼어붙을 만큼 꽁꽁 얼어붙은 새벽에 화가 난 황소가 콧김이 얼어붙을 틈도 주지 않고 뜨거운 콧김을 어찌나 자주 뿜어내는지 얼어붙을 시간이 없어 콧김이 흘러내리는 듯 자주 숨을 뿜어내고 있는 것 같은 형국으로 이상용 씨는 콧김을 뿜어대며 골목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감히, 내가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뭔, 투표를 실시한다고 난리여'

이상용 씨는 참을 수가 없었다.

씩씩 콧김을 내뿜으며 집으로 들어선 이상용 씨는 마당에 널브러져 있는 양동이를 발로 걷어찼다.

"집 안 꼴이 이게 뭐여 응? 살림을 하는 거여, 마는 거여?"

집 안에서 침대 겸 소파에 누워 있던 김은수 씨는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마치 겨울잠을 깨고 나오는 곰처럼 느릿하다. 머리가 어찌나 무거운 지 백 근은 되는 듯하다. 사람이 옥상에서 떨어지면 머리 먼저 떨어진다더니 실제로 머리가 무겁긴 무거운가 보다고 김은수 씨는 생각한다.

밖에서 덜그럭 소리만 나도 새가슴이 되는 김은수 씨는 무슨 일이 있나 해서 벌떡 일어나고 싶지만 원체 머리가 무거워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왼손으로 돌침대 바닥을 짚고, 오른쪽 어깨에 힘을 주고 바닥을 밀면서 일어나려고 하였으나, 다시 침대로 몸이 털썩 주저앉는다.

그러는 사이 밖에서는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사람이 왔으면 밖을 내다보든가, 이 집엔 사람이 안살어? 다 죽었단 말인가?"

가슴이 벌렁거리는 김은수 씨는 다시 한번 왼 손에 힘을 잔뜩 준다. 이번에는 오른손을 비틀어 침대 바닥을 짚고 이를 앙다문다. 다리가 있긴 한데 배가 열 달 애가 들어있는지 볼록한 김은수 씨는 옆으로 짚고 일어나기가 참으로 민망하다. 공벌레가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듯 잠시 시간이 멈춘 듯이 동그랗게 웅크리는 시간이 지나자 이제 김은수 씨는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김은수 씨가 일어나 앉기를 시도하는 사이 이상용 씨는 마당 안 텃밭 구석으로 가서 시원하게 오줌을 눈다. 집 안에 화장실이 있기는 하지만 이상용 씨는 밖에 나갔다 오면 항상 마당이나 뒤꼍에서 오줌을 눈다. 시원한 오줌 줄기가 호박잎을 맞추거나 호박꽃을 맞추고 나면 고것들이 잠시 흔들리는 데 그것이 뭔가 쾌감이 있다고 이상용 씨는 생각한다. 거기 그 자리에 청개구리라도 한 마리 앉아 있다가 깜짝 놀라서 뛰어 도망간다면 이건 로또에 당첨되어 보진 못했지만 그 기쁨과 비할만큼 기분 좋을 일이다. 노상방뇨를 하지 못하게 한 이후로도 이상용 씨는 내 집 앞, 내 텃밭에 내가 오줌 누는데 니놈들이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며 늘상 이 일을 엄숙하게 치른다.

바지춤을 추며 마당으로 돌아서는 사이 어느 센가 일어나 앉은 김은수 씨가 베란다 소파에 힘겹게 앉는 모습이 이상용 씨의 눈에 비친다. 이 모습에 조금 전 오줌을 눌 때의 쾌감은 사라지고, 다시 이상용 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걸 깨닫는다.

" 동네 놈들이 나를 재끼고 새로운 이장을 뽑으려고 작당을 하고 있당게"

베란다에 연결된 문을 밀며 이상용 씨가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김은수 씨에게 막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찰나,

김은수 씨의 전화벨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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