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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작가 Jan 05. 2022

나에게 찾아온 이름

heritage & reward

  이름을 지어주는 일,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일과 같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 「꽃」처럼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그는 나에게, 나는 그에게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기의 태명을 짓는 일은 우리 부부에게 심사숙고한 일이 되어 버렸다. 기억하기 쉬우면서 어감도 좋고 의미도 있는 그런 이름 없을까 하다가 성경 말씀을 찾아보게 되었고,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127:3)" 말씀에서 힌트를 얻었다. 영어로는 "Lo, children are an heritage of the LORD: and the fruit of the womb is his reward"라고 나와 있었는데,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유산(heritage)이고, 상급(reward)이란 뜻이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heritage reward 합쳐 '' 부르기로 했다. 성별을 알기도 전이었고, 언뜻 강아지 이름 같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나에겐 의미 그대로 우리 아기가 주님이 주신 유산이자 상급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리는 쑥쑥 자랐다. 분명 1센티도  되는 점이었는데, 1센티가 넘어가고 그러다 10센티가 넘어가면서 점점 사람의 형체를 갖춰가고 있었다. 초음파를  때마다 실로 경이로웠다.


2021.9.18. 임신 12주 차 때 우리 해리♥

  

  초음파를 보내자 꼬물거리다가  손을 눈에 대더니 미동이 없어졌는데, 자고 있는 거라고 했다. 주요 계통이 거의 발달해 필요한 기관이  생겼고, 얼굴은 명확히   없었으나 얼굴 생김새나 솜털도 또렷해지는 시기라고 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섬세하게 우리 리를 지어가고 계시는구나. 태내 기억은 없지만 나도 이렇게 하나하나 지어져 세상에 나왔겠지. 모든 인류가 이렇게 태어난다고 생각하니,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모태에   있다가 나온 모든 사람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heritage & reward


  심리 치유 전문가인 최성애·조벽 교수의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를 보면, 물질적인 풍요를 떠나 부모와 아이의 애착관계가 아이의 전 생애에 걸쳐 얼마나 중요한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말해준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와 좋은 애착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먼저 부모 자신의 애착 형태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


  나는 비록 엄마가 암으로 일찍 돌아가셨지만, 아빠가 엄마의 빈자리까지 채워주려고 노력했고 실제 그런 추억들이 많다. 아빠가 출근할 때면 아파트 10층에서 종이비행기에 갖고 싶은 물건을 적어 날리곤 했는데, 아빠는 그걸 기억하곤 늘 사 오셨다. 열쇠 달린 비밀 일기장, H.O.T. 앨범 등 소소한 것들이지만, 나의 필요를 채워주려고 노력했던 것을 기억한다. 로맨티스트였던 아빠는 이벤트도 자주 열어주셨다. 원두막에 수박이며 치킨이며 사다 놓고 나와 동생에게 깜짝 파티를 해주는가 하면, 크리스마스 땐 트리에 양말을 걸어두고 선물을 준비하기도 하셨다. 아빠가 재혼을 하시고 가계도 어려워지면서 그런 추억은 급격히 줄어들긴 했지만, 소리 없이 내리다 소복하게 쌓인 눈처럼 유년시절에 남아있는 추억들이 내가 피해의식에 갇히지 않고 정서적으로 금수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 같다.


  우리 리도  내가 가진 것은 없지만 정서적으로 부자가   있도록 키울 것이다.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에선 집안의 중심은 부부이고, 결국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금수저라고 한다. 금괴를 지닌 부모가 아니라 금슬이 좋은 부모를 만나야 아이가 정서적 금수저가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임산부가 된 것처럼 공감해주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는 남편을 만난 것도 참 감사하다. 소화가 안 되는 날 위해 소화 잘 되는 음식을 찾아서 먹이고, 집에만 있으면 답답해하는 날 퇴근 후에 데리고 나와 산책시켜주기도 하고, 매일 밤마다 배에 손을 대고 잠언을 읽어주는 남편. 사랑은 감정이기도 하지만, 의지이기도 해서 언젠가 감정이 식는다 할지라도 의지로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리야, 엄마랑 아빠가 우리 해리 벼락부자는 만들어주지 못해도 누구보다 빛나는 정서적 부자로 키워줄게. 사랑해우리에게 있어 유산이자 상급인 우리 아가, 엄마 아빠에게 찾아와 줘서 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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