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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유 Feb 08. 2022

내 손에는 점이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고찰_변화 속의 본질


내 손에는 점이 있다.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 왼쪽에 점이 있는데 처음 그 점을 발견했던 꼬맹이 시절로부터 20년가량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그 점은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 왼쪽에 잘 안착해있다.

처음 이 점을 발견했을 때 난 유치원에서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실수로 손가락에 묻은 줄 알고 문질러도 보고 비누로 씻어도 보고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서 점을 지우려고 시도하였다. 수많은 시도 끝에도 지워지지 않자 그제야 점이구나를 깨달았고 그 이후로 나와 동고동락을 함께했다. 조그마하던 점이 도대체 이렇게 큰 손 위에도 여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나의 기분을 묘하게 하기도 했다.  



어릴 때는 어른들의 말투를 보고 기계적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어른들은 왜 저렇게 딱딱하게 말하지? 어른들은 왜 저렇게 가식적이게 웃지? 왜 저렇게 어려운 단어를 쓰면서 말하지? 어른들은 왜 저렇게 딱딱하게 말하지? 와 같은 질문을 하며 난 어른이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20대에 들어서 갓 성인이 되었을 때도 그 물음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식사하세요.'와 같은 정중한 표현이 어려웠고 전화통화를 할 때에는 공적인 말투가 부담스럽기도 했었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생각했던 '난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가 실현하고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뭔가 그런 표현을 쓰고 그런 행동을 하면서 어른스러워지면 나의 개성을 잃고 획일화된 속된 말로 사회에 찌든 하나의 로봇 같은 어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졌었던 것 같다.

사회초년생에게 많이 나타난다는 '피터팬 증후군'과 같이 나도 내 20대 초반을 다른 20대만큼, 아니 어쩌면 조금 더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채로 살았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너무 좋아해서 티브이 앞에서 매일 본방 사수했었던 시트콤 드라마가 있다. 십오 년이 지난 어느 날 그 드라마를 다시 한꺼번에 몰아본 적이 있었다. 인생 초년생에서 사회초년생이 되어 처음으로 다시 보는 드라마. 그때보다 성장했고 사회에 대해 조금 더 유연한 시각과 능숙함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드라마의 이해능력도 생겼겠다, 과거와는 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드라마를 볼 것이라는 기대에 설레기까지 했다. 드라마를 한 회 씩 볼 때마다 과거 추억에 휩싸이기도 하고 그때 그 느낌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과거와는 다른 시각과 감정으로 볼 수 있을 거란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나의 관점과 해석, 그리고 그 상황에 대한 감정들은 예전 그대로였다. 십오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드라마를 봤을 때의 나이보다 드라마를 다시 보기까지의 시간이 더 길었다. 그동안 나는 성숙해졌다고 여겼고, 또 변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때의 어린 생각들, 어떻게 보면 천진난만하고 또 어떻게 보면 순진한 그 생각들과는 다른 생각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면에서 내가 느끼고 해석하는 관점은 과거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고, 그때 들었었던 사소한 생각까지도 그대로 복사한 듯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본질적인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나의 가치관, 나의 방향성, 나의 특징, 그리고 진심으로 원하는 것들과 같은 것들 말이다. 아무리 나이가 먹었다 해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더라도, 많은 억압과 자극들에 노출된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사회활동을 하며 사회적 가면을 쓴다고 한다. 일명 비즈니스용 가면. 사회활동뿐만 아니라 의식적으로 하는 모든 활동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있다 보면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릴 수도 있고, 가면을 쓴 모습이 자신의 모습인 줄 알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가면이라는 표현 대신 사회적 필름을 끼우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 필름은 덧댈 수도, 다시 뺄 수도 있어서 덧대고 빼내며 내 본연의 색 위에 필름의 색들이 합쳐져 새로운 색으로 비치는 그런 현상이라고. 많이 덧대면 덧댈수록 다른 신비한 색이 보이겠지만 점점 처음 나의 색과는 멀어진다고. 그러다가 결국은 검은색으로 변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 검은색이 자신의 색은 아닐 테지만, 필름을 계속해서 덧대기만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가면을 쓴 모습이 자신의 모습인 줄 아는 것처럼 말이다.



정보화 세상에 들어서고 급속도로 발전하며 변화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생활양식도, 생활 패턴도, 외면도, 참 많은 것들이 변하지만 사실 인생에서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 본연의 색을 다른 색으로 덮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채화물감처럼 한 번 떨어뜨리면 지울 수 없고 섞여버린 색 그대로 스며들어 변해버린다고 말이다. 하지만 색을 덮는 건 수채화 물감이 아닌 그저 필름처럼 뺄 수 있는 것이었다. 화장을 아무리 두껍게 해도, 옷을 화려하게 입어도 그런 건 지우고 벗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 성인이 된다는 것은 성숙해져야 하는 것이 맞다. 조금 더 부드럽게, 조금 더 편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사회적 나의 모습을 변화시킨다고 내 빛깔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지 필름을 빼낼 수도, 덧댈 수도 있는 것이기에 자신의 색이 변화했다고, 어두워졌다고 절망하고 당황하지 않고 조심히 자신이 끼워 놓았던 필름을 하나씩 걷어내다 보면 어느새 다시 자신의 본연의 빛깔을 언제든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내 손에는 점이 있고 여전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 내 손이 커지던, 주름이 생기던 함께 있을 것이다. 많은 것이 변하더라도, 큰 외부의 파도 속에 사라지고 변해버릴 것이라고 생각되더라도 분명히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들은 존재한다. 사라져 보인다면 그것은 진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자취를 감춘 것이라고,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고 믿으면 된다. 나는 내 손의 점과 함께 그렇게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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