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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작가 Mar 07. 2023

아픈 몸을 살다

2016년, 마침내 쓰러지다

세월호 사건이 있은지 2년이 지난 2016년 6월이었다. <침묵의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인사동 쌈지길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6월 24일부터 한 달간 전시를 했는데 일주일도 채 지나기 전에 난 쓰러지고 말았다. 




내가 쓰러지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더 이전의 과거로 거슬러 가야 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 때마침 의붓아버지 재활치료를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그 참사 현장을 보게 되었다. 배가 침몰하는 과정을 속수무책 지켜봐야만 했던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살기 좋은 대한민국에서 배가 가라앉는 그 긴 시간 동안 누구도 아이들을 구출해내지 못했던 그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결국 배는 가라앉았고 학생들은 바다 깊은 곳으로 잠겨 버렸다. 누구의 책임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들은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고 국가는 흔들렸으며 거짓 뉴스와 책임 전가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당시 나는 석사과정을 수료한 상태로 뉴-라이프 병원에서 의붓아버지를 돌보고 있었다. 간병사처럼 재활병원에서 먹고 자면서 그곳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곳은 교통사고나 질환으로 수족이 마비되고 의식이 없는 환자들이 재활하는 곳이다. 그 상황에서 마주하게 된 세월호 사건은 나의 의식을 송두리째 마비시켜 버렸다.   

   

이후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사람들의 의식 문제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은 혼자만의 세계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이때부터 나의 시선은 사회를 향하게 되었다. 슬프다 못해 너무 큰 분노는 오히려 무력감을 자아냈다.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Shearwater의 Rooks와 This One’s For You를 들으며 몰래 눈물을 훔치던 기억이 난다. 낮에는 틈만 나면 환자들의 초점 흐린 눈동자를 그렸다.     

       

당시의 기억을 소환해 본다.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


"어느날 한 소녀를 그리려다 그 소녀의 응시만이 살아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느낌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 무렵  소모하던 인간의 해골과, 응시를 제외한 소녀의 모든 것이 도대체 다를 게 무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순간 응시, 곧 인간의 의식만이 살아 있는 모든 것으로 다가왔다." 

-미술로 보는 20세기- 이주헌, p.222



'의식으로서의 인간'....의식...인간......





                                                        그림자가 악수를 청할 때

                                                        기꺼이 두 손으로 맞으라


                                                        벌거벗은 혼령들은 일제히

                                                        춤을 추며 제 집으로 간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의 행렬


                                                       껍질이 벗겨진 땅의 신음은

                                                       붉은빛 노을에 잠이들 모양이다


                                                       내 그림자가 악수를 청하면

                                                       기꺼이 그 손을 잡으라


                                                       나는 죽은 이보다 가벼워졌다


                                                              -이랑 2014-





2015년 슬픔과 분노와 상실감을 안은채 용인으로 올라갔다. 빌라의 반지하에 작업실을 얻고 그곳에서 세월호를 그리기 시작했다. 월세와 굶지 않을 정도의 비용을 벌기 위해 하루 5시간만 알바를 했다. 그곳은 창고형 옷매장이었다. 시간을 벌기 위해 최소한의 돈을 벌기로 한 것이다.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그림만 그렸다. 그럭저럭 생활 유지는 되었으나 겨울이 문제였다. 그 해 겨울은 정말 춥고 시렸다. 기름 넣을 돈이 없어 전기장판에 의지하여 잠을 자야 했고 그림 그리느라 몸이 얼어 경직된 상태로 장시간 노출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난 바다에 잠겨 있었다. 꿈에 나타난 알 수 없는 바다의 내면과 자신의 얼굴을 감싸 안은 남자, 그리고 축축하게 젖는 나날이 많았다. 어떤 날엔 기뻤다가 어떤 날엔 슬펐다가 어떤 날엔 화가 났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내 기분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난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그날 그 시간에 가 있었다. 오랫동안 아이들 심리치료를 했었고 타인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는 내가 세월호를 마치 나의 사건처럼 겪는다는 건 사실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느꼈던 알 수 없는 기분과 감각들은 고스란히 화폭에 옮겨졌다. 


용인에서 그렇게 1년 남짓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전시를 준비했다. 처음에는 장애인에게 기부금을 주기 위해 기획되었다가 무산되는 바람에 급하게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다. 1층에서 3층까지 2년 동안 환자들을 드로잉 했던 작품과 용인에서 그렸던 작품들을 모두 걸었다. 



■ 네오룩_www.NEOLOOK.com    



디피하는 날 몸살을 앓았다. 무사히 작품을 모두 걸었지만 열이 나고 몸살기가 있어 병원에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몸살약을 먹었고 다음날엔 링겔을 맞았다. 약을 먹어도 계속 열이 나니까 의사 선생님이 큰 병원으로 가보라 권유하신다. 매일 전시장을 나가야 했기 때문에 큰 병원 갈 여유는 없었다. 며칠 뒤 새벽에 갑자기 무릎 아래로 다리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당김 증상과 함께 쥐가 났다. 복숭아뼈 위에서 부터 무릎 아래까지 힘줄이 심하게 당기면서 아팠다. 통증을 참지 못해서 새벽에 병원 문도 열기 전에 한의원으로 쫓아갔다. 병원 문이 열리자마자 진료를 받고 침을 맞았지만 통증은 가시질 않았다. 열은 계속 나고 몸은 아팠다. 다리에 마비가 오면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고열에 난 쓰러지고 말았다.    


차로 3시간 넘게 달려 대구 카톨릭 대학병원에 응급으로 입원을 했다. 전시를 시작한 지 5일 만의 일이었다. 담당의사는 열이 40도 이상 오른 나에게 온갖 처방을 했지만 원인을 몰랐다. 마침 남동생이 아는 이승철 내과 의사를 통해 카톨릭에 연락을 취했고 류마티스 내과 의사들이 모두 총동원되었다. 그날 의사들에게 비상이 내려진 것이다. 이승철 의사는 카톨릭 의사들의 대선배였다는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내가 화가라는 사실과 꼭 살려야 한다는 그분의 지시로 의사들이 움직인 걸 알고는 꽤 부끄러웠다. 


고열이 내릴 즈음 의사는 내게 루푸스라는 진단을 내렸다. 옷가게 일하면서 먼지를 많이 마신 탓일까. 염증이 폐를 침범하여 폐섬유증이 진행되었다. 열은 내렸지만 폐가 다소 망가졌고 장기를 약하게 만들었다. 한 달가량 입원해 있는 동안 전시는 끝이 났다. 헬스장을 운영하는 남동생이 쌈지길에 가서 작품을 모두 철거해 왔다. 작품들이 좋다며 헬스장에 진열해 놨는데 그곳에 오는 회원들이 하나씩 구입하기 시작하여 몇 점 안 남기고 다 팔려버렸다. 입원해 있는 동안 통장에 천만 원이 넘는 돈이 들어왔다. 나쁜 일과 좋은 일이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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