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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Dec 19. 2020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기

2019 개정 누리과정, 사회, 교육 

2020년 3월 1일부로 새로운 교육 과정 (이하 개정 누리과정)이 시작되었다. '유아가 놀이를 통해 심신의 건강과 조화로운 발달을 이룬다.' 는 거대한 목적을 둔 새 교육 과정이다. 새로운 시대가 추구하는 인간상, 지식과 기능, 태도와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변경된 정책이다. 현장에 도입 된 지 1년 차.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임시보육, 휴원 기타 등등 다양한 문제를 제치고 바뀐 교육 과정이 무엇을 말하는 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 생각해보았다.


개정 누리과정의 목적은 '사람과 자연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소통하는 태도를 기른다.' 이다.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기술한 문장의 부적설성과 함의를 비판하고 싶지만 논점이 흐려지므로 넘어가겠다. 사람과 자연을 '존중'하고 '배려' 하며 '소통'하는 태도를 기른다. 존중이란 무엇인가? 한자로 쓰면 높다는 뜻과 귀중하다는 뜻이 들어간다. 존중받을 대상자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존중을 가르치기 이전에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가? 아이들을 돌보는 주체 (주로 엄마, 주로 선생님)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정말 아이들을 존중하고 있긴 한가? 


'평균치' 라는 말이 있다. 60년대에 태어난 사람의 평균치와 10년대에 태어난 어린이의 평균치는 확연히 다르다. 그 사이에 시대가 변화했고 교육 수준이 달라졌다. 고도 경제 발전과 IMF 시대에 태어난 8~90년대생이 부모가 되면서 무엇이 달라졌을까? 현 90년대생은 '평균'과 '보통'의 기준선이 개정된 시대에 태어나 결혼 적령기 - 다시 말해 재생산기에 돌입한 연령대이다. '성인이 되어 취직을 하고, 서른 즈음에는 결혼을 하고 작게나마 집을 마련할 수 있었던 시대'는 구시대의 환상이 되었다. 가정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가족이 해체하거나 심각한 위기 상황을 겪기도 하고, 우리 가족은 무사히 그 시기를 넘겼지만 친척이나 가까운 누군가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모습을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그 난리통을 겪고 난 뒤 모든 이들이 보통보다 더 나은 삶, 안정적인 삶을 바랐다. 이를 위해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선행 학습을 택했다. 1학년인데 3학년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늘어나니 너도 나도 없는 돈이라도 모아 학원에 다니고, 아예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과 힘겹게 따라가는 아이들이 늘었다. 성과주의의 이름 아래 '남'보다 잘나기 위한 학업 경쟁이 치열하게 이루어졌다. 


이런 시대를 거치고 성인이 된 어른들에게 사회가 말한다. "이번 교육 과정부터 '호기심과 탐구심을 가지고 상상력을 기르는 아이들'을 양성하기로 했어. 고시문과 해설서를 줄테니 공부 좀 해서 가르쳐봐." 호기심과 탐구심을 숨기지 않으면 '산만한 아이' '왕따' 당하던 시절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안전하고 바른 길' 길만 걸어왔을 젊은이들에게 사회가 '상상력과 창의력이 풍부한 아이를 길러내라'고 요구한다. 현장에선 상위 기관의 명령이니 어떻게든 지시를 따르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마냥 노는 것 같아 불안해하는 학부모들에게 '놀이 교육' 을 설파하며 그들의 불안을 달래려고 애쓴다. 교육의 당사자가 되는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어떻게 느끼는 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읽어내는 방법을 모르는 이들이 '사람과 자연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소통하는' 태도를 알고 있을까? 그런 방법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을까? 특정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은 그래도 '소통과 배려'를 잘 한다고 믿는걸까? 이미 '무한 경쟁'과 '사교육' 에 익숙해진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올바른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예측을 해본다. 우선 모든 사람들이 바뀐 교육 과정을 순종적으로 실행할 것이다. 사설 업체는 새 교육 과정을 낱글자 하나하나까지 분해해 새로운 학습지, 학습 도구 등을 만들어 낸다. 평균만 해선 안될 것을 아는 학부모들은 학원과 과외를 선택한다. 선행 학습을 받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차이는 더욱 더 벌어질 것이고 이들이 새로운 시대, 즉 성인이 되었을 때는 정규 코스+a를 배운 이와 그렇지 않은 사이에 가시적이고 현격한 차이가 벌어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한들 어떠한가. 누군가 대표하여 이 사태를 책임질 일이 없는데.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개인의 문제다. 문제 없이 굴러가는 가장 '보통'이고 '평범한' 사회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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