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도 산만하고 소란스러운 비 오는 날, 게다가 월요일, 주말의 피곤을 채 털어내지도 못한 채 아이들과 마주했다. 작은 분교에서의 수업은 1, 2학년 일곱 명이 함께하는 디지털 드로잉 수업이다. 시골의 작은 학교에는 규모와는 달리 최첨단 기기가 아이들 수만큼 구비되어있어 모두가 아이패드로 수업을 할 수 있다.
경직된 건 마음, 그리고 온몸의 근육, 특히나 안면근육이었다. 마스크로 꽁꽁 가렸지만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립스틱도 발랐다. 아이들에게도 살짝 얼굴은 보여줄 요량으로 말이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은 새로 온 선생님에겐 관심이 없었다. 요즘 아이들의 특징일 거야. 내가 그렇게 존재감 없는 인간이 아니기에 무반응에 당황하고 말았다. 사실 서로 질문을 하면서 친해질 계획이었는데 아이들은 나와 친해질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이 시간이 낯설어 어쩔 줄 몰라하는 눈치였다.
1학년 교실에서 시작된 수업, 이제 막 8살이 된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시를 기다리는 마알간 눈빛으로 조용히 있었다. 그러나 2학년 언니들은 조금 달랐다. 학교물을 1년은 먹었지 말이다. 분교는 아이들 수가 적어서 코로나와 상관없이 등교를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학교생활에 익숙해 보였다. 1학년 아이들에게 나나 담임선생님은 어른 선생님이라는 같은 묶음이라면 2학년 언니들에게는 외부에서 온 강사라는 이미지가 확실해 보였다. 내 말에 토를 달거나 마음대로 하거나 하는 빈도가 많아서 땀을 한 바가지는 흘린 것 같다. 그럼에도 보람 있고 즐거운 시간이다.
마음은 바람처럼 한순간에 방향을 틀어버리기도 한다.
함께 불던 곳에서 갑자기 손을 놓아버린다. 내가 놓은 것인지 그가 놓은 것인지 언제부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눈치챈 순간부터 이제 서로 다른 결이 되어 상처를 낼 뿐이다.
공상에 빠지기 좋아한 탓에 이렇다 할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언제나 뭐가 될까라고 궁리만 하고 지낸 지 사십 년 만에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누군가 나를 찾아준다는 기쁨에 취해있던 날, 함께 잔을 들어줄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낯선 표정과 말을 듣게 되었다. 잠깐 아주 잠깐,
'나는 왜 이런 기분이 든 것인가?'
내가 이 친구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지난 기억을 뒤적여본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겠지. 내 행복에 함께 취하기엔 너무 이성적이거나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이 앞서 서투른 표현이 먼저 나온 것은 아닌지 여러 번 곱씹어 본다. 생각이라는 녀석은 하면 할수록 더 망상에 빠지고 만다. 내가 원하던 답하고는 정 반대로 흘러가기 시작하면 불편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너스레나 조금은 모자란 여자처럼 아무 말이나 하게 된다.
그러다 어색하지 않을 시점에 집으로 돌아온다.(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이들과의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친구네 들렀다. 운전을 해서 가는 것은 처음인데 용기를 내서 들려보기로 했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친구이고 정도 많고 복도 많은 오래된 친구이다. 안 본 지 오래되어 보고 싶기도 했고, 오늘 수업의 기쁨이랄까 고충을 친구와 나누고 싶었다.
일상의 변화에 대해 수다를 떨고 싶어 찾아간 곳에서 나는 내가 가진 것이 활력인지 아니면 누군가 불어넣은 헛바람인지 의심이 들었다. 의심의 의심을 지나 이제 겨우 자신을 믿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나를 의심하게 될 줄이야.
"아! 점이라도 봐야 하나? 어디 용한 집 없니? 너는 잘 알 것 같아, "
"왜, 보면 뭐 달라져?"
"나 요즘 뭔가 되려나, 가만히 있어도 같이 일하자고 연락 오는 곳이 종종 있네? 기대하는데 또 실망할까 봐 무섭기도 하고 걱정되니까."
"우리 삼재인 거 알지? 나가는 삼재, 나가는 삼재가 가장 무섭다."
"그런 거야?"
"왜 이렇게 사람들이 뭐 하자는 건 줄 알아?"
"왜?"
"너를 흔들려고."
나를 흔들려고 이렇게들 갑작스레 함께 일하자고. 하지도 않을 거면서.. 지난날 바보같이 탈탈 털리던 날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가는 삼재라...'
김이 빠져버린 대화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 줄 소재로 나의 첫 전시회를 알렸다. 친구의 축하와 응원을 듣고 싶은 욕구에 나도 모르게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꺼냈다.
"나, 작지만 곧 전시회 해. 그래서 좀 바빴어."
"어, 그래? 나 아는 00 선생님도 갤러리에서 전시회 하시는데 그림 진짜 잘 그리 그리셔."
“......”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돌아와 아이의 여자 친구와 그녀의 엄마인 내 친구 이렇게 넷이 카페에 데이트를 다녀왔다. 잠만 오면 울고 불고 길이고 집이고 떼를 쓰는 여섯 살 형아를 보고 있자니 내 기분 따위는 잊힌 지 오래였다. 아이들이 원하는 디저트를 시켜주고서야 겨우 조용해졌다. 귀가 조용해지니 다시 마음이 시끄러워져 버렸다.
"우리 삼재래, 이렇게 일이 들어오고 갑자기 좋은 일있구 같이 손 내미는 사람들이 많은 건 다 나를 흔드는 거라고 하더라?"
"누가 그래? 사람은 믿는 대로 되는 거야. 그렇게 믿는 사람은 그렇게 되라지, 너는 그렇게 안 믿으면 되고."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서 웃음이 났다. 귀가 얇은 나는 그렇게 속이 시끄럽더니 이제야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결혼 후 알게 된 친구로 인생 2막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신뢰하는 이 친구와도 뜸했던 적이 있다. 주식에 빠져서 나만 보면 주식하라고 그렇게 들이대던 친구였다. 관심도 없는 데 나만 보면 주식 노래를 부르고 모든 주제는 '부'와 연결되어 즐겁던 만남이 경제 컨설팅이 되고 말던 시기였다. 그 친구를 잃을까 봐, 아니 잃었다고 느꼈던 나는 참담하기까지 했는데 이 친구가 어느 정도 주식에 자리를 잡자 다시 예전의 그녀로 돌아와 함께 걷고 있다. 예전처럼 위로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말을 해주며 가끔은 따끔한 충고도 해준다. 잠시 바람의 뱡향이 바뀌었다가 다시 같아진 것이다.
낮에 만난 그녀도 잠시 바람의 방향이 달라진 것이라고 , 서로의 삶의 방향과 속도가 같지는 아닐 테니까. 분명 돌고 돌아 좋은 날이 될 수도 있고 슬픈 날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시 만날 거라고 믿는다. 오늘은 그냥 그녀의 기분이 조금 낯선 곳을 향해 불고 있었던 것뿐 큰 의미는 두지 않기로 했다.
그녀의 관심사는 온통 고삼인 첫째, 우등생인 둘째, 공부에는 관심 없는 셋째까지 있는 워킹맘이다. 얼마 전 이사한 넓은 집과 운영하는 가게가 멀어 지쳐있다고 했다. 이제 여섯 살 난 아이 하나 키우며 꿈을 꾸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으니 나 또한 그녀의 일상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지 나는 그녀에게 얼마나 세상 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서로의 고민은 얼마나 작아 보일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각자의 세상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십 대의 우리들은 바람이 불어도 세상의 흔들림에도 여전히 서로를 믿고 다시 손을 잡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