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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Jan 20. 2022

게으름에 지지 않는 취향을 위하여

사실 멋 내는 것을 좋아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멋지게 입는 사람, 센스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젊은 날의 벌이는 옷을 사들이는 데 탕진했다. 그렇다고 고가의 옷을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옷이라면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들였다. 화려한 꽃무늬 거나 튀는 색과 패턴이 어지러운 디자인들이다. 꽃으로 가득 찰수록 옷장 문을 닫기가 힘들 정도였다. (20대에는 왜 이렇게 옷 욕심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일본 여배우 ‘아오이 유우’처럼 입어야 뭔가 나만의 세상을 가진 신비한 소녀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의 장바구니는 항상 가득 차 있었다. 보통은 보헤미안 스타일, 일본 스타일, 모리걸 스타일 등으로 불리는 빈티지하면서 꽃이 가득한 옷들이다. 여전히 '모리걸'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비슷한 스타일이 검색된다. 쇼핑계의 제야의 고수도 아니면서 오프라인에서 구매는 거의 하지 않았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거나 ‘손님은 이런 스타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듣는 것이 겁이 났기 때문이다.


 당시 나의 업무는 반도체 관련 재료를 영업하는 것으로 거래처에 미팅  일이 많았다. 꽃이 도배된  속에서 나온 소녀의 차림으로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회사에서 조금이라도 날씬해 보일  있는 옷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단정한 디자인에 무채색 위주로 골랐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나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취향과는 전혀 상관없었지만 제법  어울렸는지 바지 정장이 너무  어울린다는 칭찬까지 받았다.


옷에 대한 관심은 줄지는 않았지만 구입한 옷을 입고 나가지 않는 경우가 많게 되었다. 점점 취향은 사라지고 활동이 편하고 자주 입을 옷을 사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원피스. 골격이  나에게 제법  어울렸다. 참한 아가씨처럼 보이는 효과도 있는 듯했다. 지금까지도 가장 사랑하는 스타일은 사랑스러운 원피스다. 사랑은 소녀풍과 정장풍으로 갈리긴 했지만, 장롱에 처박아 두지 않고  활용했다.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언젠가는 꼭 원피스만 파는 옷가게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체비만이거나, 체형에 구애받지 않고 입을 수 있는 화려한 원피스가 가득한 옷집 말이다. 생각만 하고 있을 무렵에 원피스만 파는 쇼핑몰이 오픈한 걸 보고 조용히 접었지만 말이다.     


이십 대 중반을 넘어서며 나와 친구들은 일본 드라마에 빠져 살았는데 그중에 ‘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만화를 드라마로 만든 작품이 단연 화제였다. 주인공인 노다메는 원피스를 즐겨 입었는데, 엉뚱하고 사연 있는 그녀와는 달리 정말 사랑스러웠다. 드라마 중반쯤에 그녀에게 고백하는 남학생에게 누군가 그녀가 원피스만 입는 이유를 알려줬는데 나는 뭔가 들킨 것만 같아 멋쩍은 웃음만 나왔다.


그녀가 원피스를 입는 이유는 다름이 아닌, 게으름 때문이었다. 그녀의 집은 온통 쓰레기로   있고 정리를 하지도 못해서 ‘입고 벗기가 쉽고, 찾기도 쉽고, 관리가 쉬워 선택한 패션일 뿐이지 그녀가 여성스럽다거나, 사랑스러운 패션을 즐겨 입어서 원피스를 고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  또한 그녀와 다르지 않은 이유로 원피스를 즐겨 입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태와 게으름에 언제나 지고 있는 나와  내기 좋아하는 내가 타협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나 할까?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겠나. 최선의 선택이었고 나름 만족하니 그것으로 됐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뀐 지금 단정하게 입어야 할 이유가 없는 일상이라 옷장은 다시 화려한 꽃무늬로 채워지고 있다. 역시 단정한 것보다는 발랄하고 화려한 스타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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