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살타
이 박물관 안에는 3구의 미라가 보전되어 있는데 우리가 본 미라는 5살에서 7살로 추정되는 아이의 미라로 유리관 안에 냉동 보관되어 소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이 아이들은 잉카제국 귀족의 자녀들로 약 500년 전에 고도 6,730미터의 산꼭대기에서 신에게 바쳐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린아이들은 신과 가장 가까운 장소에서 얼어 죽어 입은 옷까지 생생한 모습의 미라로 남았다.
슬슬 한국으로 돌아간 후를 생각하게 되었다.
‘출발은 좋았다마는 아이를 기르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이 세파를 헤치며 먹고살까?’
자려고 누우면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난 좋은 엄마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원래 내 목표는 정말 너그러운 엄마였다. 크게 잘 못된 방향만 아니면 아이를 이해해 주고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한국에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고 생각했었지만, 여행하면서 보내는 시간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와 붙어 다니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잔소리도 늘어났다.
준이에게는 불평하지 말라고 하면서 나는 잔소리의 형태로 아이한테 계속 불평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부모로서의 권위와 잔소리는 다를 텐데.
좋은 부모는 인내심을 갖고 아이를 기다려 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준이가 아기였을 때는 신발 신는 것도 기다려주고 밥알을 줄줄 흘리며 먹어도 혼자서 잘 먹는다고 기특해했었다. 혹시 그런 육아의 초심을 다 잊어버린 건 아닌지. 이제 겨우 열한 살인 준이한테 30년이나 더 산 내 기준에 맞추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 대한 불평이 고이면 잠깐 숨을 고르고 기대치를 낮추어 보는 연습이 필요했다.
내 조급한 마음을 준이가 따라오지 않을 때, 준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고개를 내밀 때, 마음에 브레이크를 거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 지금도 브레이크를 밟는 연습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