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아르헨티나 칼라파테에서 국경을 넘어 간 토레스 델 파이네는 칠레 남부의 국립공원이다. 1,200만 년 전에 형성된 3개의 커다란 화강암 바위 봉우리가 압권이고 산과 빙하, 호수를 갖추고 있다.
토레스로 가기 전에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했다. 선명한 색으로 칠해진 양철 판으로 되어 있는 집들이 특이했다.
버스 매표소에서 만난 한국 아가씨와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코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우리가 계획한 코스가 인터넷에서 남미 여행으로 유명한 ‘그분’이 말해준 코스와 다르다고 큰일 날 것처럼 말했다. 당시에 대부분의 한국 여행객들이 바람의 방향까지 고려했다는 ‘그분’의 추천 코스 그대로 트레킹을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토레스라는 3개의 봉우리인데, 인터넷에서 추천된 코스에서는 토레스가 맨 마지막 코스라서 중도에 포기하고 못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린 현지인인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충고를 따라 보통 한국 여행객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토레스에 올랐다. 덕분에 하도 힘들어 중간에 일정을 축소했어도 토레스는 챙겨 볼 수 있었고 반대쪽에서 오는 한국인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강풍에 섞인 자잘한 돌들이 얼굴을 치며 지나갔고 길은 가파르고 좁았다. 험한 길을 오르느라 준이는 울상이 되었고 내 발걸음도 힘겹게 디뎌졌다. 도대체 뭐가 있길래 이런 희로애락을 다 겪어야 하느냐며 정상까지 올라갔더니, 아~ 거대하고 미끈한 바위산 세 개가 늠름하게 서 있었다.
바위산 앞엔 만년설이 녹아내린 호수가 있는데 빙하가 녹은 호수는 불투명한 에메랄드빛으로 속내를 비치지 않는 과묵한 신비로움을 가졌다.
절경이다. 이제껏 한 고생이 한 번에 날아갔다. 여기까지 와서 이걸 놓친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감동을 안고 서로 격려하면서 내려오는 길은 또 고생길의 반복이었다. 첫날의 캠핑지로 다시 돌아오는데 젊은 사람들은 8시간이면 된다는 걸 우린 12시간이나 걸렸다.
토레스를 본 다음날은 호수를 따라 계속 걸었다. 필요한 짐만 챙겨 왔는데도 오래 걷다 보니 어깨가 많이 아팠다. 배낭끈이 어깨를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전진이다. 어깨가 아프다고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을 놓칠 순 없었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배운 노래를 불러가면서 호수가를 따라 이동하는데 물만 보면 들어가고 싶어 하는 준이가 호수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추워서 말리고 싶지만 한편으론 얼마나 차가울까 궁금하기도 해서 살짝 들어가 보라고 했다. 추위를 모르는 준이는 빙하가 녹아내린 호수에 들어가 잠깐 동안(5분 정도?) 수영을 했다. 엄청나게 차가워서 금방 나오긴 했지만 강철 같은 체력의 서양 청년들도 신기하게 쳐다보면서 지나갔다.
산과 호수의 풍경을 고되게 즐기며 걷다가 도착한 캠프 사이트에선 추위도 잊고 곯아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텐트 밖에 들쥐들이 과자랑 물병을 다 뜯어 놨다. 한동안 멍하니 서있다 아침밥을 대충 챙겨 먹었다. 인스턴트 파스타를 끓이고 있지만 가장 먹고 싶은 건 고춧가루 뿌린 콩나물국이었다.
나중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친구들은 이곳에 닭까지 싸가지고 와서 백숙을 해 먹었다고 하니 대단한 한국인들이다. 생닭을 지고 이 길을 걸어왔다니 그야말로 위대(胃大)한 인물들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중에 캠프 이딸리아노로 올라갔는데 비가 멈출 기세를 안 보였다. 식수도 없어 근처 계곡에서 떠와 겨우 끼니를 때우고 조그만 산장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나이 많은 서양인들이 들어와서 무조건 우리 보고 비키라고 했다. 이 무례한 서양인 할아버지가 대뜸 하는 말이 ‘너 어디서 왔냐?’다. 자신들에게 양보를 않는 동양인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가 그들에게 무척 중요한 문제인가 보다. 우리나라 같으면 ‘너 몇 살이야?’랑 같은 의미일까? 우리나라에선 나이가 폭력이라고 느낄 때가 있었는데 여기선 국적이 폭력이었다. 기죽은 태도를 기대하는 이들에게 남편이 ‘너는 어디서 왔는데?’라고 물으니 그도 대답을 안 했다.
쏟아붓는 비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어색한 침묵 속에서 다들 비만 바라보고 있었다.
토레스 트레킹에서 빗속을 걷다 일정을 축소하고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왔다. 고생은 많이 했지만 이런 고생이 토레스의 아름다움을 상쇄시키진 못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직원이 큰일이 났다는 손짓을 해가며 무슨 이야기를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구입한 영어-스페인어 포켓 사전을 찾아가며 의사소통을 했더니 지진이 났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큰 지진인 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일어난 지진은 피해가 커서 해외 뉴스에 연일 나왔다. 인터넷이 너무 느린 탓에 블로그에 ‘우리 칠레로 들어가요’만 남겨놓아서 한국에서 가족들은 걱정으로 속을 끓이고 있었다. 우리와 연락이 안 돼서 사돈들끼리 전화를 했었나 보다. 우린 지진이 난 줄도 모르고 칠레 남부에서 산행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