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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행 Apr 06. 2023

한 달간의 런던살이

영국 런던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라고 했더니

아이슬란드에서 백야를 체험하고 온 준이가 영국도 백야냐고 물었다.     


 짧은 여행이라면 이 한 몸 불태워 돌아다니겠지만 여행 기간이 길어지면 관광도 출퇴근하듯이 하게 되고 매일 돌아다니는 일의 반복에 지쳐 어느 곳에서라도 잠시 정착하고 싶어 진다. 

 한숨 돌리고 정착할 곳으로 영국 런던을 선택했다. 한 달 동안 겸사겸사 준이에게 영어공부도 시키면서 또래 친구들을 만날 기회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한 달간 머물렀던 런던 집

 


 아이에겐 또래 친구가 필요하다는 일념으로 물색한 영어학교에서 예약이 다 차서 2주 후에나 다닐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기다리는 동안에 민박집 사장님이 추천해 주신 학원에 준이를 보냈다. 레벨테스트를 거쳐 주 단위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이 학원은 한 반에 13명이 정원이다. 정원이 많아도 선생님의 계속 반복되는 질문에 학생들은 완성된 문장으로 대답을 해야 하는 알찬 수업이 진행되었다. 반복을 통해서 말문을 터주기 때문에 질문받고 대답하느라 수업을 듣고 나면 정신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주로 동유럽 학생들이 많았는데 준이는 이곳에서 가장 어린 학생으로 십 대 후반, 이십 대 형들과 한 반에서 수업을 들었다. 창밖에서 지켜보니 어른들도 힘든 수업이었다. (미안하다 준이야, 너 수업받는 동안 엄마랑 아빠는 홍차 마시고 쇼핑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체인 사업을 진지하게 검토했을 정도로 이 학원의 격한 수업방식이 맘에 들었지만  또래 친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나머지 2주 동안은 준이를 예약해 놓은 영어학교로 보냈다. 

어린이 영어 학교 수업 첫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부모들의 모습이 다국적이어서 살짝 놀랐다. 

문 앞까지만 배웅하고 안엔 들어가 보질 못했는데 준이 말에 의하면, 교실에 커다란 테이블이 2개 있는데 수업 첫날엔 자연스럽게 아시아인들끼리, 서양 아이들끼리 갈라 앉았다고 했다. 아이들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유유상종인가 보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앉게 되는 데는 게임이야기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 달간 체류할 곳으로 1층에 더블침대가 있는 방을 얻었는데 화장실과 부엌은 공용이었다. 주로 어학연수생이나 유학생들이 세 들어 있었는데 화장실이 하나뿐이라 아침 시간 경쟁이 치열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준이를 학원에 데려다줄 때마다 안내방송에서 나오는 영국식 억양을 흉내 내며 이곳 사람들의 일상을 구경했다. 출근하고 학교 가고 가게 문 열고, 도시의 아침은 비슷했다. 

 우리 부부는 도시를 떠돌다가 준이 수업이 끝나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돌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해 먹었다. 식사 후엔 간단한 숙제나 게임을 하고 가끔은 다른 방 친구들과 맥주 한잔씩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가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들어와 우릴 보더니 한국에 있는 부모님 생각난다고 맥주 마시자고 했고('내 나이가 아직 대학생 딸이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속으로는 항변했으나 겉으론 유쾌하게 맥주잔을 부딪혔다.) 어떤 날은 대학생 친구들의 진로 고민을 들어주기도 했고, 나름 어른인지라 화장실 다툼을 중재하기도 했다.

 일요일 오전이면 준이는 늦잠을 자고 남편과 나는 동네에 있는 작은 세탁방에 갔다. 코인세탁기에 빨래를 넣어놓고 기다리는 동안 맞은편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일요일 아침 일상의 여유로움이 마치 영화를 보듯이 지금도 느껴진다. 여행의 추억에서 아름다운 곳, 유명한 곳에 갔을 땐 그 장소가 주인공이지만 이런 일상의 기억엔 바로 우리 자신이 주인공이 된다.


 늘 시간만은 여유로웠던 ‘런던살이’였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이곳저곳 챙겨 보느라 바쁜 관광객도 아니고 출근하는 직장인도 아닌 그냥 체류자들이었다. 뭐라도 할 수 있었고 또 아무것도 안 해도 되었다. 

한 달 동안 우리 가족은 런던이란 배경에서 그저 가족의 일상을 꾸렸다. 

여행일지에는 '고민하지 말고 지금을 누리자.'라고 쓰여있는데 기억이 희미해진 지금은 그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떠오르질 않는다.


말로만 듣던 피카딜리 서커스.  우린 런던에 대해 어디서  그렇게 많이 들었을까?    자세히는  몰라도 익숙한 이름들이 많았다. 


 

해리포터가 마법학교로 출발했던 기차역인 워털루역.     해리포터는 여기서 마법학교로 갔지만 우리는 기차 타고 한인마트에 김치 사러 갔었다.  




옥스퍼드 거리 어느 상점 앞에서.   직접 캠핑을 시연하는 모델들
갑자기 거리에 나타나 샴페인을 나눠주던 사람들. 알고 보니 샴페인 회사 홍보 모델들이었다.

                   

감동적이었던 뮤지컬 빌리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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