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1번 국도 렌터카여행
아이슬란드에선 열흘동안 1번 국도를 따라 섬 전체를 한 바퀴 도는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 책에서 처음 아이슬란드에 대해 읽었을 때 ‘세상에 이런 근사한 나라도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화산, 빙하, 바다와 고래 등 우리가 신비롭게 생각하는 모든 것이 거기에 있었다. 신비로운 곳을 탐험하는 덴 용기가 필요하듯이 이곳엔 무시무시한 물가를 감행할 용기가 필요했다. 차가운 텐트에서 잘 일이 많겠구나를 각오하며 도착한 아이슬란드의 수도인 레이카빅은 밤 11시인데도 아침인 것처럼 환했다. 말로만 듣던 백야였다.
대낮같은 밤 덕분에 쉽게 찾아온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화장실에서 온수를 트니 냄새가 났다. ‘에고, 화장실 청소 잘 안 하나 봐.’ 생각했는데, 어디서 맡아본 냄새였다. 유황온천에 가면 나는 냄새다. 아이슬란드에선 온수를 틀면 온천수가 나오고 수돗물은 그냥 마시는 게 당연한 청정 그 자체였다. 도시에 게스트하우스의 수돗물이 이렇다면 우리가 여행 다닐 곳은 과연 어떨지. 수돗물이 날 설레게 했다.
백야라 이미 밝지만 시간상 아침이 되자마자 렌터카를 빌렸다. ‘이곳 도로들은 혼잡하지 않으니까 조금만 연습하면 다닐 수 있겠지.’ 하고 생전 운전해보지도 않은 스틱 차를 빌렸다.
운전 경력이 길어도 스틱 차는 만만하지 않았다. 난 아예 운전할 생각도 못 하고 운전엔 자신 있다는 남편도 스틱차는 운전해 보질 않아서 렌터카 사무실 앞에서 출발하는 것부터 애를 먹었다. 렌터카 회사 직원의 걱정스런 눈초리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은데 차가 말을 안 들었다. 겨우겨우 근처 커다란 쇼핑센터에 도착해서 준이와 내가 장 보는 사이에 남편은 주차장에서 운전연습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슬란드의 도로는 붐비는 곳이 없었다. 길 이름이 어렵긴 했지만 외줄기라 복잡하지 않았고 '휴게소, 도시가 시작되는 곳과 끝나는 곳, 순록 나오는 곳' 등등 표지판이 많아서 표지판과 대화도 가능할 정도였다.
산뜻한 색감과 심플한 디자인의 도시를 벗어나 인적 없는 도로를 달리다 보면 바다도 하늘도, 길도 모두 회색이었다. 회색빛은 이곳을 더욱 추워 보이게 만들었다. 안개마저도 회색빛인 무채색으로 보였고 고래 등껍질 색의 바닷물에선 언제라도 고래가 점프하며 나올 것 같았다. 바닷가 화산지대엔 노르스름한 이끼가 카펫같이 푹신하게 덮여있었다.
여름인 지금도 이렇게 쌀쌀하고 을씨년스러운데 겨울엔 얼마나 추울까? 혹독한 겨울은 오로라라는 비장의 무기를 갖고 있지만 추위에 약한 나는 겨울에 이곳에 올 자신이 없었다. 필리핀에서 은퇴한 북유럽 아저씨들이 북국의 겨울을 피해 필리핀에서 몇 달을 지내다가 간다고 들었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출발부터 햇빛이 쨍한 남국이 그리웠다. 햇빛이 부족해서인지 호텔 아침 뷔페에선 비타민D가 나왔다.
아이슬란드의 추위가 품은 아름다움은 단연코 빙하다. 빙하를 보기위해 007영화도 찍었다던 글래시어 라군(Glacier Lagoon)을 유람선으로 둘러봤다. 쨍하는 햇빛에 푸른빛으로 반사되던 아르헨티나의 빙하와는 다른, 이곳 나름대로의 회색빛 빙하였다. 유람선에선 주근깨가 살짝 도드라지는 귀여운 가이드 아가씨가 빙하 덩어리를 들고 와서 상냥하게 설명해 주었다. 가장 열심히 설명을 들은 우리 가족은 남은 빙하 덩어리를 얻어와 캠핑장에서 위스키와 콜라에 넣어 마셨다.
사실, 맛은 얼음과 비슷하지만 기분만은 최고였다. 이에 질세라 준이는 2만년 콜라 온더록스였다.
아이슬란드 캠핑생활 일주일 만에 집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꼈다. 비바람을 막아주고 보온이 된다는 것이 어디인가. 이곳에 집이 있는데도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캠핑카로 한살림 차려서 다녔다. TV까지 달린 캠핑카 옆에 식탁을 차리고 커텐까지 달려 있는 텐트를 하나 더 쳤다. 으리으리한 캠핑카들 사이에 우리의 4인용텐트가 앙증맞게 자리잡곤 했다.
여름을 따라 여행하니 두꺼운 옷도 없는데 아이슬란드는 여름이라지만 비도 많이 오고 저녁엔 꽤 추웠다. 잠바까지 다 입었는데도 추워서 매트 밑에다 신문지와 박스를 깔고 잤다. 자고 나면 한기가 가시지 않아서 아침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해야만 얼었던 몸이 풀렸다. 다행히 캠핑장 시설은 잘 돼 있고 샤워장엔 따뜻한 온천물이 나왔다.
그래도 우린 양반이었다고 자부해본다. 자전거 여행자들은 한명이 겨우 누울만한 납작한 텐트에서 잤다. 그들은 여행자라기보다는 순례자처럼 보였다. 자전거로 비바람을 뚫고 산길을 올라가는 사람들과 마주치면 우린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들었다. 호주 캠핑장에서 자전거 여행중인 독일인 할아버지들에게 우리가 존경한다고 말하니 ‘미친 것처럼 보이지?’라며 웃으셨다.
추위에 시달리는 캠핑의 날들이 이어지던 중에 고래투어로 유명한 후사빅에 도착했다. 거대한 고래들을 기대하며 고래투어 배를 탔지만 멸치만 하게 보이는 고래 몇 마리만 보고 말았다. 실망스러운데다 날은 계속 흐려서 사람을 우울하게 했다. 오늘은 도저히 안 되겠다. 호텔로 가자.
무서운 호텔가격에 캠핑을 고수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깨끗하고 저렴한 호텔을 찾았다.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간 여름방학을 이용해 기숙사를 멋지게 개조한 호텔 체인이었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운전이 피곤했는지 남편은 12시간 동안이나 자고 준이와 나는 영화를 보다가 산책을 다녀왔다.
다음날, 호텔에서 아침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애가 심술을 부리다 음식을 흘렸다. 그러자 부모들이 무섭게 혼내면서 나가 버렸다. 식사 도중이었던 것 같은데, 더구나 뷔페식당인데.
남편과 난 ‘서양 사람들도 애들을 엄하게 키우는구나.’라는 생각에 빠져있었는데 그 가족이 나간 뒤에 준이가 하는 말은, '엄마, 근데 그 애 내가 사고 싶었던 물개 인형 갖고 있더라.'였다.
사람은 자기가 관심 있는 것만 본다.
호텔에서 몸을 풀고 다시 캠핑을 이어가다 아이슬란드 북부 도시, 아큐레이리의 캠핑장에 도착했다.이곳 사람들의 덩치만큼 큰 캠핑카들 사이에 이방인인 우리의 조그만 텐트가 자리를 잡았다. 백야라 밖이 환하다지만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소음 속에서 카드놀이를 하다가 내일 일정이 있으니 잠을 청하려는데 이번엔 축구공이 우리 텐트를 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누군가 고의적으로 차는 축구공이 우리 텐트를 계속 툭툭 친다. 화가 난 남편이 밖으로 나가서 텐트 밖에 있는 축구공을 집어 들고,
“누구야? 누가 이걸 찼어?” 남편이 큰소리를 내자 이방인들에게 못된 짓을 하던 꼬마 녀석들이 모두 숨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한 아주머니가 오더니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주의를 주겠다고 했다. 다시 텐트로 들어온 아빠를 준이는 존경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다니다 보면 모두가 우리에게 친절한 것도 아니고 만나는 사람 전부와 친구가 될 수도 없다. 특히 낯선 곳에서 주눅 들기 쉬운 여행자에게 당당함은 꼭 갖춰야 할 덕목이었다.
남편은 아마 본인도 귀찮고 싫었겠지만 아빠라서 텐트 밖으로 나갔을 거다. 아들은 그런 아빠를 보고 배웠을 것이다. 여행 준비가 거의 끝나고 출발일이 임박했을 때, 남편은 설레기도 하지만 가장으로서 잘 갔다 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책임은 나눠지면 되는 거지 뭘 그런 가부장적인 생각을 하느냐며 웃어넘겼는데 실제로 남편의 어깨가 가장 무거웠다. 가장 큰 배낭을 메고 돈도 다 갖고 다녔다. 에콰도르에선 아빠라서 안전장치 하나 없는 철사 도르래를 잡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기도 했다. 아들이 보고 있는데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아빠라서 용기를 내고, 귀찮고 힘든 일에도 나서야 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선 자식도 부모를 키운다고 할 수 있다. 여행을 통해서 남편은 더 멋진 아빠로 성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부모도, 아이도 성장하고 있었을 아이슬란드의 어느 아침, 캠핑장에서 일어나니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따뜻한 커피를 찾아 캠핑장 밖을 조금 걷다보니 동네 수영장이 보였다. 주민을 위한 시설이라 입장료도 싸고 사람도 거의 없었 바로 우리를 위한 시설이었다. 따뜻한 온천물로 채워진 수영장에 들어가니 얼었던 몸이 풀렸다. 관광지만 훑어보지 않고 도서관이나 수영장, 영화관 등 현지인들이 가는 곳에 가 볼 여유가 있는 것이 장기여행의 장점이다.
수영장에서 나와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여행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배 타고 새를 보는 투어를 발견했다. 투어 소개 페이지의 맨 하단에 조그만 글씨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다.' 는 문구를 본 순간, 바로 예약을 했다.
새를 보러 바다로 나갔는데 여기 새들은 아마존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아프리카처럼 흥미진진하지도 않았다. 나는 게 귀찮은지 배가 다가오면 조금 나는 척하다가 물속으로 쏙 들어가 배를 피하는 통통한 외모의 퍼핀 정도만 귀여웠다. 커다란 검은 새들이랑 독수리 비슷한 걸 보기도 했지만 유람선 뒤쪽에서 그물을 내리자 우리 가족의 눈길은 그물에 쏠려 멋진 여자 선장님이 설명하는 새 이야기는 들리지도 않았다.
선원들이 그물을 걷어 올렸다. 배 뒤쪽에 기다랗게 펼쳐놓은 테이블 위로 깨끗한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이 쏟아졌다. 아이슬란드에서 가리비와 조개가 우르르 쏟아지는 걸 볼 수 있다니 감개무량이었다.
기다란 테이블을 관광객들이 둘러싸자 맘대로 먹어도 된다면서 직원 아저씨 2명이 해산물을 손질해서 내밀었다. 차가운 얼음에 담가놓은 와인도 팔았다. 다른 관광객들은(이곳에도 동양인은 역시 우리뿐이었다.) 와인을 홀짝 거리면서 그리 당기지 않는지 두서너 조각을 먹고 물러나는데 초고추장이 없는 걸 통탄하면서 우리 가족은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평소에 해산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준이도 이곳의 달큰한 가리비 맛에 정신이 없었다. 직원이 잘 먹는 우리를 보자 반가워하면서 손질한 가리비 5개를 껍데기 위에 올려놓고 내밀었다. 입이 귀에 걸린 우린 땡큐를 연발하며 받아먹었다. 직원분이 이번엔 불가사리를 칼로 갈랐다. 불가사리도 먹느냐고 물으니 가끔씩 알이 있는데 그걸 먹는단다. 아쉽게도 이 날 잡은 불가사리엔 알이 없어서 맛을 못 봤다.
한참을 먹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편은 아예 직원에게 칼을 얻어 소라를 직접 잘라서 먹고 있었다. 그 맛있는 소라를 안 먹고 버리는 게 아까워서라고 했다. 불가사리 알을 먹는 이곳 직원들이 소라를 먹는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이 동네 이름은 Djupivogur다. 아이슬란드어는 자음끼리 충돌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읽기가 힘들어 동네 이름들을 대충 훑어 읽고 다녔는데 검색해보니 ‘듀피보규어’라고 읽나 보다. 아이슬란드 동부의 피오르드 지형이라고한다.
남편은 아이슬란드를 돌아보고 나니 신비한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 어느 정도 충족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빙하 바다 속에서 스킨스쿠버 등 격한 스포츠를 해보지 못해 아쉬움은 남지만 이제는 아담한 자연이 있는 한국이 그립다면서 우리나라 보성에 가서 하룻밤 묵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 아이슬란드는 동화적이고 신화적인 이미지를 남겼다. 집집마다 정원엔 난쟁이 인형이 있고 자려고 누운 텐트안에선 이상하고 다양한 새소리를 들었다. 이 지역 사람들이 일각고래를 보고 유니콘을 상상했다는 이야기가 이해되었다. 혹독하게 춥고 험한 지형이 많아서 사람들이 닿을 수 없었던 곳을 상상으로 채워 넣었던 것 같다. 따뜻한 집안에 모여앉아 상상 속의 이야기를 나누며 춥고 긴 겨울밤을 보냈을 아이슬란드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