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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행 Mar 16. 2023

미국에선 가족의 재발견

미국 애틀랜타, 뉴욕, 워싱턴 


워싱턴 주택가에 아담한 2층 집, 

뻔뻔하게도 우리 가족 3인은 이곳에 2주간이나 눌어붙어 있었다. 

이곳은 시집와서 몇 번 뵌 적도 없는 시외삼촌댁이었다.  뉴욕에서 '자주 보지 못 해도 피는 물보다 진하지 않을까?(진했을 것으로 믿는다.)'라는 생각으로 워싱턴에 살고 계신 외삼촌께 전화를 걸었더니 반갑게도 어서 오라고 하셨다. 

 외숙모께서 워싱턴역에 차로 마중을 나오셨다. 미국은 도시로 돌아다녀서 옷도 좀 차려입었겠다, 여행의 무용담도 가득 있어서 내 맘속엔 자부심이 흘러넘치고 있었으나 외숙모님의 얼굴엔 측은해하는 표정이 숨겨지질 않았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얼굴은 까맣게 탄 모습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처음 와 본 집이었지만 호텔과는 다른, 정착된 집이 주는 안도감이 있었다. 마치 집에 돌아온 것처럼  빨래부터 하고 밀린 잠을 잤다. 


 미국에 입성해서  여기 오기까지 거쳐온 애틀랜타와 뉴욕얘기를 간단하게 해 보자면, 

미국의 도시는 시티패스를 끊으면 대표적인 곳을 싸게 다닐 수가 있었다. 시티패스 위주로 다니면 정해진 곳들만 다녀서 우연히 발견되는 재밌는 곳을 놓칠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시티패스 위주로 돌아다녔다.


 애틀랜타는 코카콜라와 CNN 본사가 있고 올림픽까지 치렀던 큰 도시이지만 넓고 넓은 미국에서 맨 먼저 애틀랜타를 선택한 이유는 조지아 아쿠아리움 때문이었다. 조지아 아쿠아리움은 세상에서 가장 큰 수족관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수족관이란 의미는 물고기의 종류와 개체 수, 물의 양이 최대인 것을 뜻한다고 한다. 전시관이 여러 곳으로 갈라져 있기에 입구에선 크다는 걸 실감하지 못했었는데 일단 터치 풀의 규모부터 달랐다. 이곳에선 불가사리 정도가 아니라 조그만 상어들과 가오리들까지 만져 볼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장 큰 수족관엔 스쿨버스만 한 고래들과 하얀 벨루가가  우아하게 헤엄쳐 다니고 아이들은 수조 유리벽에 붙어 서서 빠져 들어갈 듯이 보고 있었다. 


수족관에서 나오자마자 놀이공원 입장하듯 들어선 곳은 바로 앞에 있는 코카콜라 월드였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시음대. 전 세계에서 판매되고 있는 코카콜라 제품을 마음껏 마셔볼 수 있었다. 제품 수도 많고 같은 콜라라도 지역별로 맛이 약간씩 달라서 준이 못지않게 어른인 남편과 나도 신이 났다.

이게 마케팅의 힘인가? 제국주의의 대표 상품, 건강의 적이란 콜라에 대한 반감이 확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선물용 작은 콜라까지 받아 나오면서 

‘그래도 준이야, 콜라, 너무 좋아하면 안 돼…’

 자신 없이 중얼거렸다. 신나게 같이 마셔놓고 내가 듣기에도 설득력 없는 소리였다.

  보태니컬 가든에서는 씨앗을 심어 나눠주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준이도 열심히 줄 서서 씨앗을 받았다. 자원봉사 아주머니가 영어로 설명하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 곧잘 대답하는 모습이 신통했다.

‘나 같으면 영어에 자신 없어서 그냥 지나갔을 텐데 얘는 전혀 주눅 들지 않네.’

 신기해하고 있는데 남편도 같은 말을 했다.

준이에게 영어로 물어보는데 괜찮냐고 물으니 '난 외국인이니까 못해도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소심한 부모 밑에서 어떻게 이런 대범한 아들이 나왔을까?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준이 말이 맞는다는 거다. 뻔뻔함과 영어실력은 서로 보완관계라서 영어가 안 되는 부분은 뻔뻔함으로 보충하면 의사소통은 다 된다. 알면서도 어른인 우리는 영어 앞에서 자꾸 움츠러드는데 어린 나이에 외국인을 많이 보아서인지 준이는 당당했다.     

 애틀랜타에서는 호텔에 머물렀지만 뉴욕에서는 한인게스트하우스를 선택했다. 같은 한인민박인데도 남미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남미에서는 한국인이 드물어서 한국인을 만나면 무척 반가워했는데 이곳에선 부엌에서 만나도 아는 척을 안 했다. 그래도 LA에서 왔다는 아가씨는 ‘LA에 있다가 뉴욕에 오니 미국에 온 기분이 든다.’며 웃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록펠러센터, 자유의 여신상, 브로드웨이, 센트럴파크, 컵케잌, 햄버거 등등 뉴욕은 와보기도 전에 너무 익숙해서 익히 알고 있는 곳을 실재로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코스 같았다.

 이 중에서 빼먹으면 안 되는 코스, 명품아웃렛을 렌터카로 가는 김에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던 청년 둘과 함께 갔다. 캐나다에 어학연수 중인데 야구를 보러 미국에 왔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타임스퀘어 부근을 돌았는데  미국 일정이 야구관람과 명품아웃렛 밖에 없다는 이들을 위한 남편의 서비스였다. 휘황찬란한 야경을 보면서 '여자 친구가 생기면 이곳에 꼭 같이 올 거예요.'라고 감격에 겨워 외치던 그 청년들은 잘 지내는지... 지금은 아마도 30대 중반이 되었을 텐데... 궁금하다. 


 다시 워싱턴, 

 워싱턴에서의 시간은 가족을 재발견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삼촌으로부터 미국으로 이민 오신 이야기나 외가 쪽 선산으로 봉황이 날아갔다는 전설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길을 두고 뫼(산)로 가지 마라.’는 이야기를 외할아버지가 자주 하셨다던데 삼촌은 우리 어머니와 다르게 해석하셨다. 실용주의자이신 어머니는 ‘편한 길을 두고 애써 어려운 길로 가지 말라.’는 뜻으로 내게 이야기하셨는데 삼촌은 ‘정도(正道)를 두고 나쁜 길로 가지 말라.’로 해석하셨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에게 물어볼 순 없지만 두 분 다 맞는 것 같았다. 한국에 가면 어머니를 모시고 ‘외가의 전설을 찾아서’ 외가가 있는 김해로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용실, 도서관, 쇼핑센터 가기 등 미국의 일상체험과 워싱턴 관광으로 어영부영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우린 떠날 채비를 했다. 다음 예정지인 아이슬란드와 유럽에선 캠핑을 할 계획이라 텐트와 코펠 등을 사서 챙겼고 대견해하면서도 안쓰러워하는 삼촌 가족을 뒤로하고 우린 유럽으로 향했다. 


 미국에서 줄곧 생각했던 점은 ‘미국에서 살면 난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행복할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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