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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행 Apr 07. 2023

파리에선 뭘 먹어도 맛있다
그런데 한국음식도 간절했다

 프랑스 파리, 벨기에

 한밤중에 도착한 파리, 한국 유학생들이 휴가기간 동안 빌려준 아파트로 올라가는데 엘리베이터가 갑갑하고 낡았다. 좁은 집 안엔 패션과 미술에 관한 책들과 살림살이가 빽빽하게 차있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고장 나는 양변기를 고쳐가면서 이 원룸형 아파트에서 일주일간 머물렀다.



 파리에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디저트 가게였다. 필리핀에서 만났던 진이가 추천한 곳인데 본고장의 마카롱과 장미 케이크를 맛볼 수 있었다. 사실, 파리에선 뭘 먹어도 맛있었다. (실제로 만났던 프랑스인들 중에선 한 번도 못 봤지만) 프랑스인들은 세 입 이후로는 미각이 둔해진다고 음식을 소량만 고집한다고 들었다. 맛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만 먹겠다는 고고함이 미각을 예리하게 키워 미식문화를 발전시킨 것 같다.

파리에서 마카롱과 장미케이크를 고르던 기쁨


 주변에서 누가 파리 여행을 간다고 하면 노천카페에서 우아하게 커피 마시라고 소소하게 커피 값을 챙겨주곤 했는데 막상 내가 파리에 오니 커피보다는 빵과 디저트, 치즈... 들러야 할 가게가 너무 많았다. 친구 진이가 추천해 준 곳 외에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가 추천해 준 리스트에 블로그, 등등 정보도 많았다. 지금 다시 파리에 간다면 삼시세끼 초콜릿만으로도 일주일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가방엔 뜨거운 차랑 고추장 튜브를 가득 넣고 다닐 것이다.)

 파리 시내를 걷다가 들른 백화점에선 한국에선 쉽게 보이지 않는 거위 간 푸아그라와 머스터드, 송로버섯을 샀다. 준이도 만화책을 통해서 알고 있는 세계 3대 진미가 푸아그라, 송로버섯, 캐비아라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인 기준에 의한 것임에도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내가 정했으면 냉면과 만두와 짜장면이 세계 3대 진미이고 준이가 정했다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가 선정되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동물의 권리에 관심이 높아진 요즘엔 음식에 대한 기준도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파리에서 돈이 허락하는 만큼의 미식을 누렸지만 위장 깊은 곳에서는 한국음식에 대한 간절함이 고여있었다. 우린 김치 안 먹어도 살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고 외국에 한국 음식을 싸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현지 음식 먹지, 뭘, 그렇게 번거롭게 싸가나.’ 했다.

한국 식당은 단체관광 코스에나 끼어있는 거라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여행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나면서 슬슬 한식에 대한 갈증이 일어났다. 

 한국에 있을 땐,  스파게티가 가장 맛있는 음식이고 김치 먹으라고 잔소리를 들어야 마지못해 깨작깨작 김치를 먹던 준이가 여행 6개월이 넘어가자 김치 하나면 밥을 두 그릇도 먹어치웠다. 


 우리나라 음식에 대한 또 하나의 깨우침은 국물이다. 전엔 우리 음식의 특징이 매운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속을 확 풀어주는 국물이었다. 특히 으슬으슬 추운 지역이라도 가면 얼큰하고 뜨끈한 국물 한 그릇이 절실했다. 한식집이 없어서 대신 간 일식집에서 가락국수국물을 먹겠다고 싸운 적도 있었다. 

 이때 가장 큰 위로는 라면이었다.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탕'을 먹을 수 있는 게 라면이라고 하더니 라면만큼 편하고 맛있는 것도 없었다. 시리아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는 독일인 학생을 만났었는데 고국을 기억할 물건으로 무얼 가져왔냐고 여러 나라 유학생에게 물은 적이 있다고 했다. 한국인 유학생의 대답은 '한국 라면 한 상자'였다고 한다. 


 파리를 거쳐 유럽에선 캠핑하면서 그럭저럭 한식도 해 먹었는데 중동에 와선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절정을 찍었다. 케밥도 한두 번이지, 처음엔 맛있다고 먹었지만 음식이 약간씩 입에 맞지 않았다. 뭔가 약간 느끼한 그 맛 때문이었다. 


그냥 김치찌개에 밥 비벼 먹고 싶었다.     

시리아의 고급호텔에서 먹었던 코리안 바비큐. 두툼한 스테이크에 긴 쌀밥, 고수가 섞인 야채샐러드가 매력적이었던.... 한식 맞는 거지요? 



‘사람들이 고국을 떠나서도 언제까지나 고국에 묶여 있는 이유.

사람을 고향과 이어주는 끈 중에서도 고향에서 뻗어 나온 가장 질긴 끈은 영혼에 닿아있다. 아니 위(胃)에 닿아 있다. 이렇게 되면 끈이 아니라 밧줄이요, 억센 동아줄이다.’      

일본 수필가인 요네하라 마리가 쓴 이 글에 나도 100% 공감했다. 한국에서 뻗어 나온 가장 질긴 끈이 도무지 우리를 놓아주질 않았기 때문이다. 외국에도 대도시엔 한국 식당이 있고 한인 민박집에 가면 한국식 아침밥도 먹을 수 있었다. 그래도 마치 갈증에 소금물을 들이켜는 것처럼 아무리 먹어도 한국 음식에 대한 갈증은 더해갔다.

“준이야, 한국 가면 뭐가 제일 먹고 싶어?” 

“곰탕집에 가서 곰탕 국물에 깍두기 국물을 쫙 부어서 후루룩~ (구체적이다!). 그리고 할머니가 해주신 매실액 넣은 간장 떡볶이도 먹고 싶어.”

“엄마는 갈비를 실컷 먹다가 몇 조각 남겨서 시원한 물냉면 먹을 때 같이 얹어서...

아~악, 우리 한국 가면 꼭 먹자.”

준이랑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을 세 보는데 40개까지 대다가 너무 길어서 그만둔 적도 있었다.


그렇게도 절절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한식에 대한 욕구가 싹 사라졌다. 

아마도 한국의 공기 안에 한국 음식의 향도 녹아 있나 보다.     



루브르박물관에 모나리자를 보기 위한 인파,  맨 앞쪽에 모나리자 그림이 있다.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있던 모네의 정원.  모네의 그림과 꼭 닮았다.


 렌터카로 벨기에 가는 길에 파리 외곽에서 본 쌍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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