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위안부의 시작은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거의 함께 한다. 1945년 유엔과 미군이 일제를 대신하여 한반도에 들어왔을 때부터였다. 박정석의 논문 ‘한국 전쟁기 포로수용소 주변의 이방인 양공주 – 거제도와 한산도 지역 주민들의 기억을 중심으로 ( 한국 민족 문학, 2024년)’에는 거제 한산면 용초 출신 1925년생 김ㅇ환 할아버지의 다음과 같은 구술이 나온다.
미군들이 들이닥친 첫날부터 색시들이 있나 싶어서 가정집에 들어와 찾는 거야. 아마 ‘양공주인가(이고 싶은가)’ 하고 손짓 발짓해 가며 물어보는데 섬 촌 아낙네들이 말이 통해야 ‘난 아닙니다’ 하고 답하제. 도통 말이 안 통하니 겁을 먹는기라. 생전 못 보던 코 크고 키 크고 털난 사람들이 들이닥쳐 뭐라고 왈왈왈 하는데 촌여자들이 겁을 안내? 그래서 여자들마다 방문을 잠그고 도망 다녔는데, 그때 이 마을에 해녀들이 열대여섯 명 일을 하고 있었거든. 해녀들은 모두 파마를 하고 있었어. 미군들은 해녀들을 보고 동네 일반여자들과 머리 형태가 다르니까 양공주인 줄 알았나봐. 자꾸 해녀들에게 달려드는 거야. 여자들 앞에서 미군들이 자기 아랫도리를 만지면서 ‘씨비 씨비’ 하는 거야.”
이때는 미군이 1952년 6월에 한산도 용초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할아버지는 말에 따르는 그때 마을 사람들은 급히 여자들은 마을 바깥으로 도피시켰다. 마을 여자들은 낮이면 집에서 밥을 짓고 집안일을 하다가 해가 떨어지면 이웃 섬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외부에서 몸을 파는 여인들을 데려오기로 결정하였다. 실제로 용초면에서는 몸 파는 아가씨들이 들어왔고 마을 여자들은 안전해졌다.
이러한 상황은 소설가 안정효가 1990년에 발표한 유명한 소설 ‘은마는 오지 않는다’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주인공인 과부 언례는 마을 물레 방앗간에서 미군에게 성폭행당한다. 그리고 혼혈아를 낳게 되어 결국 부양하기 위해 양공주가 된다는 내용이다. 미군이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가난한 여성들이 성폭행의 위험에 처하고 이를 막기 위해 성매매 여성이 따로 생긴 것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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