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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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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Jun 17. 2024

모든 걸 이겨내는 불굴의 의지란 허상이다.

정리 안 된 방을 보고

이번 주말엔 열심히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을 봤다. 엔딩을 보니 시계가 열한 시 반이었다. 여운을 느끼며 주위를 돌아보니 정리 안 된 방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주말에 사다 놓고 아직 책장에 꽂지 않은 책들, 이것저것 쌓아는 놓는데 정리는 하지 않아 엉망이 된 공부 책상. 더럽고 얼룩이 묻어 있는 내 컴퓨터 책상과 데스크 패드. 나중에 해야지, 나중에 해야지 하며 미뤄놨던 일들이 한눈에 들어오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내 한심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나는 이 일들을 절대 하지 않을 걸 알면서 왜 바로 하지 않고 미뤘을까.


짧지 않은 상담을 받고 꽤 오래 정신과를 다니며 전문가들의 말을 들은 결과 나는 '의지'란 허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의지력이 좋고 끈기가 있는 사람은 사실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 유혹당하지 않을 환경을 잘 만들어 놓는 똑똑한 사람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의지를 다지고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유혹당할만한 환경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자꾸 휴대폰이 하고 싶다면 휴대폰을 놓고 오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싶다면 운동 장소를 가깝게 하고 그 과정에서 생길 마찰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고, 주변인들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내 삶에서는 이 지식을 실천하지 않고 있다. 환경을 만들지 않고 내 얄팍한 의지를 믿으며, 오늘 실패하더라도 '내일의 나는 다를 거야'라며 똑같은 실패를 반복한다. 그러고선 실패하면 환경을 조성하지 않은 나의 우둔함을 탓하는 게 아니라, 약한 나의 의지를 탓하고 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사실 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은 사실 똑똑하게 환경을 조성하는 사람이다'는 명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지식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앎이라 할 수 없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될까.


어쩌면 나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불굴의 의지'를 동경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소년만화를 좋아한다. 현실적인 인간보다 무턱대고 도전하는 열혈파가 좋다.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옳으니까 불가능에 도전하는 캐릭터들이 좋고, 전략을 세우기보다는 무작정 때려 박고 보는 캐릭터들이 좋다. 강한 적 앞에서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어떻게든 근성으로 일어나서 상대를 놀라게 하고 극적인 역전을 해내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나는 그런 캐릭터들의 재능이나 혈통, 전투 스킬 등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냥 절대 포기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그 모습이 너무 좋다.


내심 이런 불굴의 의지를 동경하기에, 의지란 허상이라고 머리로 생각하면서도 나 자신에게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의지로 모든 유혹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나'를 강요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라면, 나라면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함께 가지고서. 하지만 그러면서도 몇 번을 쓰러져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일어나는 주인공의 면모는 닮지 못했다. 나는 나를 믿지도 못하고, 한번 쓰러진 다음 일어날 용기도 없다. 그저 쓰러지면 나를 자책하면서 나는 역시 이렇제... 하며 포기할 뿐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한다.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강한 의지를 가진 캐릭터들은 작가의 보정을 받은 캐릭터일 뿐이다. 분명 나도 어려운 일, 해결하기 위해 의지가 필요한 일들을 겪을 것이다. 때로는 불가능한 일에 도전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방법은 무작정 도전하고 부딪히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전략적인 방법이어야 한다. 성공 가능성이 있는 도전은 도전 자체로도 가치가 있지만, 무작정 뛰어드는 도전은 도전이 아니라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이다.


'불굴의 의지'는 인내심과 정신력을 수련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혹을 원천 제거하는 환경에서 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실패하는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원래 의지만으로는 아무것도 안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다시 일어날 환경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일까지 모든 일을 미루고, 단 한 번도 제대로 노력을 하지 않은 건 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그럴만한 환경을 조성하지 않아서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까 나를 더 이상 가혹한 상황에 내밀어서는 안 된다. 내 의지가 약해서 못했다는 자책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의지란 분명 실존하지만, 모든 걸 이겨내는 불굴의 의지는 허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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