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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Oct 25. 2022

브런치가 휴면 작가를 꼬시는 법

150일 동안 휴면회원이 되면

올해 들어 내 브런치는 개점휴업 상태다. 좋게 말하면 바빠서 글을 쓸 시간이 모자라고, 나쁘게 말하면 나태하게 늘어져있느라 브런치 앱을 누를 겨를이 없다. 2월 초까지 열정적으로 글을 올린 다음 7월에 한 편을 쓴 것 외에는 아무런 글이 없다. 작가의 서랍에 임시 저장된 게시글을 보니 5월에 나갔던 교생실습 글이 있다. 당시에 실시간으로 쓴 글이라 벅찬 감정이 잔뜩 묻어나 있다. 이를 이어 완성해보려고 했지만, 그 여운이 다 지나가버린 지금의 내가 쓰기에는 많이 힘들어서 포기했다. 분명 그때의 나만이 완성할 수 있는 글이다. 귀찮다는 이유로 글을 완성하지 못해서 많이 아쉽다.


몇 달 동안 브런치 앱에서는 가끔 알림이 왔다. 어쩌다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해주신 독자들의 구독이나 라이킷 알림이 많았지만, 브런치도 계속해서 알림을 보내왔다. 다시 활동하라는 내용이었는데, 문구 하나하나가 깨나 마음에 들었다.

첫 알림은 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글은 책으로 탄생하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세요:)이다. 가장 마음에 들고 인상 깊은 문구다. 돌아와서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이 글을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걸거나 손으로 필사하기도 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멘트이고 글을 쓰는 행위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글도 잘 쓰려면 꾸준해야 한다. 세상에는 가끔 게으른 천재도 있기 마련이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천재라도 별이 되지는 못한다. 아주 잠깐 빛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수명이 다 된 전구나 되면 다행이다. 노력하는 천재만이 별이 된다. 천재가 아니면 아무리 노력해도 별은 될 수 없다. 대신에 노력하는 사람은 향은 될 수 있다. 


향불은 전구나 별에 비해서 무척 미약한 빛이지만, 향이 다 타도록 오래 빛을 유지한다. 꾸준한 노력은 미약한 빛이나마 금방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게 한다. 그게 수명이 다 된 전구와의 차이다. 마침내 자그마한 향불이 꺼지더라도 향은 여전히 특별하다. 빛을 내는 재능이 모자랐던 향은 '꾸준함'을 '재능'으로 거듭나게 한다. 향불이 꺼져도 향의 향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향기는 향이 다 탄 뒤에도 몇십 분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저마다의 독특한 시선(향기)을 뽐내면서 말이다.




두 번째 알림은 출간의 기회는 글에 집중하고 있을 때 꿈처럼, 마법처럼 찾아옵니다 ꈍᴗꈍ 작가님의 색깔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글쟁이의 꿈, 출판을 미끼로 삼았다. 


브런치는 다른 블로그와는 다르게 종이책 출간을 전제로 메뉴가 구성돼있다. 브런치 북은 말할 것도 없고, 매거진도 다른 개인 블로그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다. 이런 구성은 정제되지 않은 일상적인 게시물을 올리기 힘들게 만든다. 나는 일관된 주제를 갖고 쭉 이어지는 글이 아니거나 퇴고를 제대로 마치지 않은 글을 올리면 죄를 짓는 것만 같다. 이는 내가 브런치에 글을 자주 쓰지 않게 되는 이유가 됐지만, 열정적으로 글을 쓸 때는 잘 정제되고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려 나가는 좋은 글을 쓰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알림에서도 출간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미끼를 던져주며 다시 글을 쓰기를 유도한다. 브런치다운 알림이다.




90일이 지나면 작가님, 지난 글 발행 후 구독자가 N명 늘었어요. 그런데 돌연 작가님이 사라져버렸답니다 ㅠ_ㅠ 기다리고있는 독자들에게 작가님의 새 글 알림을 보내주시겠어요?라는 알림이 온다. N명은 실제 늘어난 구독자 수인데, 3월에는 2명이 늘었다고 왔고 10월에는 6명이 늘었다고 왔다. 


브런치에 다시 이 글을 쓴 이유는 이 알림 때문이다. 내 글을 읽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새롭게 나타났지만, 내가 돌연 사라져서 독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예뻤다. 내가 정말로 주간 단위로 작품을 연재하는 글쟁이가 된 기분이라 좋았다. 구독자가 늘었고 네가 이렇게 인기 있으니 돌아오라는 말과는 느낌이 다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내가 돌연 사라져 글이 올라오지 않기 때문에 느낄 독자들의 당혹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나를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내가 브런치에게 받은 것처럼 새 글 알림을 보내달라는 멘트도 감성적이었다. 정말로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브런치만은 내 글을 진심으로 기다리는 듯한 느낌에 힘을 얻어서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정해진 멘트는 90일까지만 있는 것 같다. 120일, 150일에는 작가님 글을 못 본 지 무려.. N일이 지났어요 ㅠ_ㅠ 작가님 글이 그립네요.. 오랜만에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글을 보여주시겠어요? ꈍᴗꈍ이 바뀌어 왔다. 반년이 지나고 1년이 지나면 새로운 알림이 날아올지, 아니면 그때쯤이면 브런치도 포기했을지 잘 모르겠다. 나는 더 버티지 않고 180일이 되기 전에 글을 한 편 썼기 때문에, 180일 알림은 안타깝게도 확인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브런치의 휴면 작가 알림을 쭉 살펴봤다. 브런치의 휴면 회원 알림은 다른 블로그와 크게 다른 점은 없었지만, 많이 공을 들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쟁이들을 위한 플랫폼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출간을 미끼로 휴면 회원을 유인하기도 하고, 실제 독자가 기다리는 것 같은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브런치가 목표로 하는 다양한 시선이 담긴 글을 계속 강조하는 부분도 좋았다.


사소하지만 알림 하나하나가 '책 출간'이라는 브런치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 준다고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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