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계획까지
거창한 글은 아니다. 오히려 초라한 변명글에 가깝다.
2020년 2월 28일, 세계일주를 중도포기한 후 만 열 달이 지났다. 한국에 돌아온 후 나는:
5월에 작은 공모전에서 1차 합격을 했고, 7-8월에는 게임회사에서 시나리오를 썼으며, 12월에는 큰 학원에서 강의도 했다. 두 학기 내내 대학은 재학 상태였고, 과외도 3개 정도 계속했다. 6월에는 자취를 시작했고, 9월에는 고3들 자기소개서를 봐줘야 했고, 11월에는 운전면허를 땄다. 틈틈이 연애도 했다. 책도 12권은 읽었다.
그다지 바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꽤 한 게 많다. 벌써 해가 바뀌려 하고, 난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본격적인 백수생활 시작이랄까. 이제 내 앞에 여러 가지 선택지들이 놓여있다. 12월 말에 차분히 생각정리를 한 덕분에 큰 방향은 정해진 상태다. 내년에도 알아서 잘하리라. 믿는다.
올해 아쉬운게 하나 있다면 여행 에세이를 끝마치지 못한 것이다. 5월 중순 나는 연재를 중단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1) 실시간으로 글을 쓰고 연재하는 게 버거워서, 2) 에세이 형식이 버거워서. 나는 정말이지, 에세이란 형식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다. 왠지 있었던 사실만을 그대로 말해야 할 것 같고 미사여구가 섞인 말은 지양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평생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써와서 어쩌면 '느낀점을 들려주는'것보단 '사건을 보여주는' 글이 익숙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작가가 쓰면서 어색함을 느낀다는 건 안좋은 징조였고, 기어코 5월을 끝으로 글을 더 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불과 2주 전, 고3들 논술시즌이 끝나 집에서 쉬고 있을 때. 불현듯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완의 여행, 그 끝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은 내가 에세이를 마치는 순간이겠구나.
정말 불현듯. 생각보다는 '직감'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에세이의 형태로 끝마칠 자신은 없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자전적 소설'로 재탄생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어쨌건 소실된 기억들은 추리해서 메꾸는 것일테니, 어떤 면에서는 가짜와 다름없지 않은가? 그렇게 나는 한글 파일을 열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거진 다 썼을 때 브런치 연재를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그런데 신기하게도 2일 전부터 갑자기 '세계일주 실패하다' 브런치북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 누군가에게는 감화를 줄 수 있는 이야기야'라는 생각과 함께, 그저 감사했다. 미숙한 글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결론은, 완결까지 계속 쓸거라는 얘기다. 매일 쓰는 중이다. 계획대로 원고를 거진 완성한 다음에 연재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그때는 세이브 원고가 있으니 매일 연재로, 스트레이트로 달려야지. 정확히 언제부터가 될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언젠가는 완결을 낼 거라는 거.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도, 막상 써놓고 나니 에세이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차이가 없었다. 그냥 나의 심리적 위안을 위해 자전적 소설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래서 내 첫번째 내년 계획은 이 기록을 완성하는 것이다:
19년 12월 여동생과 떠나, 코로나로 20년 02월 귀국한 미완의 세계일주. 본인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만 에세이라고 불러도 괜찮은, 어쨌건 여행기록.
P.S.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