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ㅇㅅㅇ Mar 11. 2020

귀국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세계일주 실패하다' 프롤로그

2019년 5월 10일, 나는 세계일주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같은 해 12월 26일에 출국했다.

2020년 1월 1일은 히말라야에서 맞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내 첫 여행지는 네팔로 결정 되었지만, 사실 처음 발딛은 국가는 중국이었다. 저가항공을 탄 탓에 쿤밍 공항에서 13시간을 경유하게 된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2019년 12월말, 중국에는 이미 코로나19가 전파되고 있을 시기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도. 그 누구도 그 병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나는 그 병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첫 1박부터가 공항 노숙이라는 사실에 다소 긴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해가 바뀌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뉴스가 나왔을 때도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2020년 1월, 나는 네팔과 인도를 거쳐 아프리카 대륙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와이파이도 잘 되지 않는 아프리카에서는 코로나의 '코'자도 듣기 어려웠다.


2020년 2월, 나는 유럽 대륙으로 올라갔다.

슬슬 코로나를 걱정하는 한국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겨울방학이었으므로 유럽으로 여행 온 대학생들이 많았다. 가끔 코로나 얘기를 꺼내는 동행들이 있었고 더러 이것 때문에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얘기도 오갔다.

그러나 내게는 단 한 번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이 커피라도 마시자',  '한국은 어떤 나라냐'며 서양인다운 친화력을 보이는 사람들 뿐이었으므로, 나는 아주 당당하게 유럽을 활보하고 다녔던 것이다.


2020년 2월 20일 전까지는 말이다.



2월 20일, 나는 동행과 함께 모스타르에서 사라예보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처음으로 우리는, 버스에서 '코로나'라고 외치며 연신 웃어대는 사람을 만났다. 화가 난 동행이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라고 얘기했지만 계속되는 그의 행동은 다분히 악의적인 것이었다.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유럽의 인종차별에 관해서는 익히 들었기에 한 번 쯤은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하루 동안, 사라예보에서 우리는 비슷한 일을 2~3번쯤 더 경험했다.

그렇게 내게 코로나라는 존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 날 밤 숙소에서 포털 사이트를 열었을 때,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매일 확진자 수가 백 단위로 늘고 있었고, 이탈리아도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었다. 주말을 기점으로 유럽 여행 카페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에어비엔비 집주인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숙박을 취소했어요'
'이탈리아 검역 절차가 강화된다는데 괜찮을까요?'
'여행 취소할까요'
'결국 여행 취소했어요'


연일 부정적인 글들이 수십개씩 올라오며 줄초상을 치르는 듯한 분위기였다.

반면에 남미 여행 카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소와 분위기가 같았다. 두 대륙의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름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당시 남미 대륙의 확진자 수는 0명이었다. 당연히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사실 내 행동이 직접적으로 제약 당한 적은 없다. 입국이나 숙박을 거부당한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 날 이후로 내 주변은 모든 게 변한 것만 같았다.

내게 '코로나!'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매일 만났고, 내 옆을 지나가며 코를 막는 사람들을 매 시간 만났고, 입국심사대에서는 유난히 질문이 많아졌다. 울상인 표정을 숨길 수 없어지는 순간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하면 정말 죄가 있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그러지 못했다.


결국 세르비아에서 나는 남미와 한국 중 어디로 도망갈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첫 선택은 남미였다.

귀국하는 날 새벽 풍경


그러나 이틀 뒤, 브라질에도 첫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고민 없이 항공권을 취소하고, 귀국행 티켓을 끊었다. 


전염병의 확산 속도는 생각보다 너무 빨랐고, 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유럽 대륙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지기까지는 체감상 단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다시 되돌아가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세계일주를 시작한지 62일 만이었다.




귀국을 결정하면서, 나는 신천지를 원망하지도, 정부의 대응에 어떤 평가를 내리지도 않았다.

그저 내 여행이 끝나버렸다는 사실에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무엇 '때문에' 실패했다는 분석은 제 3자에게나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귀국한 후에도 나는 오랫동안 덩그러니 놓여있기만 했다.

방을 치우고, 게임도 하고, 쇼핑도 했지만 말이다. 정신적으로는 멈춰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귀국한지 정확히 일주일이 된 지금, 이렇게 브런치 글을 쓰기 시작한다.


실패한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는 교과서적인 증명을 해보이려고가 아니다. 그저 나는 여행을 하며 일기를 써 왔고, 여행을 마치면 어떤 형식으로든 정리를 하리라는 다짐을 스스로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앉아서 생각해보니, 세계일주를 결심하고, 즐기고, 포기하게 되는 심리를 따라가는 것도 재밌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원래 쓰고 싶었던 프롤로그는 이것이었다. 세계일주를 완주했다면, 아마 꽤나 폼이 났을 거다:


- 공간에 대하여:

여행을 떠나며, 역설적이게도 나는 내 일상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보고, 느끼고, 공부한 것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풍부하게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새로운 공간은 내가 발딛고 있는 곳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 시간에 대하여:

배낭여행은 매 순간 새로운 것들로 넘쳐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 내가 길을 밟는 시간은 매일 5시간 남짓이었다. 나머지 19시간은 자유시간을 즐기거나, 이동을 하며 보냈다. 그럼에도 일기는 꽤나 길어졌고 종종 밀렸다. 얼마 뒤, 나는 한글 파일로 매일 3장씩 기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 시간을 아껴도 부족했던 것만 같은 일상과, 19시간을 놀고도 충만한 이 길 위에서, 시간은 정말 똑같이 흐르는 걸까? 시간은 허상이라는 어떤 물리학자들의 말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주 2회, 여행 일기를 정리해서 올릴 생각이다. 64일을 여행했으니 총 32주, 약 8달치 분량이 될 예정. 집에 오니 엄마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러게, 별 게 다 네 앞 길을 막는다." 그러나 잠깐이지만, 막힌 길은 걸어왔던 지난 길로 빛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