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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끼 May 03. 2023

비겁한 사람의 편지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이번주 월요일쯤? 아닌가 화요일이었나. 그걸 친구에게 직접 들은 것도 아니에요. 오랜만에 만난 다른 친구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장례식에 가봐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런데 장례식장이 전라도 쪽이라고 하더라구요. 일도 해야 하고 시간이 없어서 못 가겠구나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친구랑은 연락을 안 한지 꽤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게 1년 전이었을 걸요. 연극을 보러 갔다가 만났는데, 그때도 그냥 밖에서 인사만 하고 서로 갈 길 갔습니다. 저와 그 친구는 그냥 그 정도 사이였어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수요일 아침이었습니다. 문득 그 친구가 생각이 났어요. 저희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생각도 나고요. 할머니는 작년 겨울에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가 저를 참 예뻐하셨어서 장례식장에서 꽤 많이 울었어요. 여튼 그때 생각이 나면서 그 친구가 떠올랐어요. 그래, 얼마나 힘들까. 가보지는 못해도 연락이라도 해봐야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부조를 했습니다. 그렇게 많이도 안 했어요. 한 십 만원 정도. 직접 줄 수 없으니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카톡 송금하기 봉투에 부조금 봉투가 있더라구요. 이제 앞으로 장례식 사업에도 카카오에서 손을 뻗는 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돈을 보내고 위로의 카톡을 보냈습니다. 형식적이었죠. 노란 카톡 말풍선이 왜 그날따라 알록달록하게 보이는지.


그러자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해서는 서로 몇분간 나는 어떻게 지내니, 너는 어떻게 지내니 했습니다. 그러다가 저에게 대뜸 제 연락이 “큰 위로가 됐어. 고마워”라고 말하잖아요. 쥐구멍에 숨고 싶더라구요. 저는 별 생각 없이 보낸 카톡이었는데.


그리고는 다음에 서울에 올라오면 술이나 한잔하자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형식상 하는 인사였을 수도, 진짜 만날 수도 있겠죠. 저는 지금도, 그 친구가 “큰 위로가 됐어. 고마워”라고 했던 말이 그냥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정말 위로가 될 줄 알았다면 더 진심으로 위로를 할 걸. 내가 먼저 전화를 할 걸. 아직도 조금 죄의식이 있습니다. 다음엔 제가 먼저 연락을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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