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과 나는 친구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이'에 한해서만 친구이지만. 그래서 손흥민을 볼 때면 항상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내가 살아온 길이 손흥민이 살아온 길에 비해 초라한 것 같아서.
손흥민이 독일로 축구 유학을 갔을 때 나는 한국에서 수능 공부를 하고 있었다. 손흥민이 레버쿠젠으로 이적했을 때 나는 군대에 있었고,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프리미어리그를 폭격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잔뜩 긴장하며 사회에 첫 발을 디뎠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책(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손흥민의 타임라인과 내 인생의 타임라인을 비교하였고, 그로 인해 '질투'라는 감정이 끊임없이 생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교는 스스로만 비참해질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손흥민보다 내가 더 농도 짙은 삶을 살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그가 어떤 삶을 살았길래 세계적인 축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그의 삶을 통해 내가 배울 수 있는 점이 무엇인지 답을 찾기 위해 겸손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의외로 답은 손흥민에게만 있지 않았다.
손흥민 선수는 자신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손흥민 에세이와 손웅정 에세이를 모두 읽어본 독자로서 이 말에 100% 동의한다. 심지어 이 책(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은 손흥민의 책이 아니라 손웅정 씨의 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아버지가 손흥민에게 끼친 영향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손흥민 선수가 월드클래스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의 9할은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손흥민이 축구 선수로서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고, 부모로서 심리적인 안전감을 제공해 준 것은 손흥민으로 하여금 힘든 유학 생활을 버티게 해 준 원동력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에피소드가 책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항상 이카루스 이야기를 들려주며 골에 대한 감흥과 기쁨에 취해 자만과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마인드를 잡아주고, 성공은 언제나 선불이라며 기본자세와 태도를 잃지 않도록 교정해 주는 아버지를 보면 실로 손흥민을 위해 자신의 삶을 갈아 넣었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그런 아버지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손흥민의 마음이 책에서 '당신'이라는 호칭을 통해 품의 있게 드러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손흥민 선수를 보면서 본받고 싶었던 점은 '멘탈리티'와 '가치관'이었다. 손흥민 선수의 멘탈리티는 '그릿' 그 자체다. 가난한 형편과 힘겨운 상황 그리고 온갖 차별과 편견이 도사린 타국 생활 속에서도 손흥민은 멘탈을 잃지 않고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그는 뛰어난 정신력과 강한 의지로 혹독한 훈련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축구 선수들의 꿈인 국가대표에 발탁되고, 프리미어리그 입성해도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언제나 90분을 뛸 몸 상태를 유지하고 준비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축구를 위해 누릴 수 있는 즐거움들을 내려놓고, 인내와 끈기로 훈련에 매진하는 모습은 그가 왜 프로인지, 왜 월드클래스인지를 몸소 증명한다.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나는 손흥민처럼 끈기 있는 태도와 인내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오래 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항상 금방 포기하거나 도망치기 일쑤였다. 아마도 실패를 마주하는 게 싫어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자기합리화를 하기 바빴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손흥민 선수의 멘탈리티, 역경을 이겨내는 강인함과 어떠한 상황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은 내게 큰 도전을 주었다.
지금 감사하고 즐겨야 한다.
그것이 나의 행복 철학이다.
p209
손흥민 선수의 가치관도 인상적이었다. '행복 축구'. 손흥민 선수의 삶의 가치는 '행복'이다. 물론 이 가치관 역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수용하고 자기 삶에서 실천하려는 모습이 남달라 보였다.
(그러고 싶진 않지만 사회 구조에 물들어버려) 삶의 가치를 성장, 발전, 승리, 성취에 포커싱하여 살아가는 나에게 손흥민 선수의 가치관은 내 삶의 방향성을 다시 한번 흔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승리지상주의로 도배된 축구를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엘리트 축구 시스템에서 교육받지 않았기 때문에, 행복한 축구를 전수하고자 했던 아버지의 교육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손흥민 선수가 행복한 축구에 진심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는 행복한 축구를 하기 원했고, 축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 마음만큼은 나도 마찬가지다.
끝으로,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문장, 아니 가장 아름다웠던 문장이 하나 있다. 그것은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성취라고 생각한다'라는 문장이다. 손흥민 선수는 행복을 위해 무언가를 성취하려고만 했던 나에게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고, 진실된 성취는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었다.
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가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이 내가 공부를 하며 생각한 것들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또래로서 나는 한참 부족하고 멀었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건 이 책이 시사하는 바가 아니다. 나도 내가 속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프로가 되고 싶고, 가능하다면 월드클래스(?)가 되고 싶다. 그래서 그렇게 일궈낸 나의 성취를 나의 행복이 아닌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데 남김없이 사용하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월드클래스일 테니까.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성취라고 생각한다.
p133
[서평]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 / 손흥민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