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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Oct 22. 2024

아이가 태어났다.

희귀질환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2023년 2월 10일 오전 10시 23분


아이가 태어났다. 난 아이의 탄생에 기쁨을 느낄 찰나의 순간 조차 없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구급차를 탔고, 소생실에 가야만 했으며, 마음에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다.


마음에 준비를 하라는 소리를 들은 그날 밤,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그저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는 핸드폰만 손에 쥐고 혹시나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올까봐 두려움에 떨며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아이가 다행히 고비를 넘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 순간도 아주 잠깐이었다. 아이가 움직임이 정상 아이와는 너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다시 나는 좌절했다. 겨우 살게 되었구나 싶었는데 왜 대체 나에게만 이런일이 생기는 거지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거지 하루하루가 지옥같았다.


아이의 소식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나는 할 수 있는 걸 해야만 했다. 제왕절개 수술 회복도 필요했고 아이에게 무엇이라도 해줘야 하니 잘 나오지도 않는 모유를 먹이겠다고 병원 내에 수유실에 내려가 유축기로 모유를 짜내고 또 짜냈다.


처음 수유실에 내려간 날 모유 유축을 하고 내 방에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와 엄마가 아기를 달래며 품에 안고 수유를 하는 모습까지 모든게 나에겐 지옥이었고,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아이가 모유를 먹고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나는 모든걸 감당하고 감내하며 혼자 매 시간 맞춰서 유축기로 모유를 짜내고 또 짜낸 후 남편 손을 빌려 모유를 아이에게 전달했다.


나는 정말 아이가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나쁜생각을 많이 했다. 모성애라는 건 나에게는 없는 거구나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도 그럴것이 코로나로 인해 나는 첫 1달간은 직접 아이를 볼 수 조차 없었다. 1달이 지나고 더 큰 병원으로 아이를 옮기기로 결정한 후에야 처음 아이를 직접볼 수 있었고, 전원간 병원에서는 면회는 허락되었지만 아이를 만져볼 수도 안아볼 수도 없었다. 짧은 15분간의 면회시간에 나는 그저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아이는 5개월 간 중환자실에 있었고, ryr1 유전자로 인한 선천성 근병증이라는 질환명과 함께 4번의 전신마취 수술을 하고 일반병실로 올라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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