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제나와 조디
마닐라에서는 거의 삼일 내내 호텔에서 놀았다. 낮에는 호텔 내의 수영장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해가 넘어갈 때쯤엔 루프탑에 올라가 끼니를 때우고, 저녁엔 근처 카지노에 가서 구경도 좀 하면서 말이다. 으리으리한 카지노 내부에 기가 죽은 우리들은 몇 가지 기계 앞에 서 보기도 했으나 얕은 주머니 사정 탓으로 금방 게임을 끝냈다. 호텔에서는 늦은 저녁까지 갖가지 술과 맛있는 안주거리를 제공했기에, 우리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매일 밤을 거나하게 취할 수 있었다. 또 어느 날 저녁엔 마카티에서 가장 맛있다는 피자를 추천받아 온 내가 조심스레 야식 배달을 제안했고 제나, 조디에게 계획의 중요성을 한번 더 일깨워줬더랬다.
이 셋 중 가장 나의 계획에 귀 기울여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조디. 조디를 나의 언어로 정의하자면 남자 김지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주변은 항상 깔끔한 상태이고, 늘 규칙적이었으며 완벽주의자였고 또 돈보다 명예를 중시하는 꽤나 괜찮은 인간이다. 그런 조디의 사적인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조디의 성은 장 씨다. 아니 장 씨였다. Jordan Jang. 조디의 유전자 중 절반은 장 씨 아저씨에게서 왔다. (친부라는 소리다.) 그의 성을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장 씨 아저씨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조디가 아주 어릴 적 사건이 터졌고 조디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과 먹여 살려야 할 친부모님을 등에 업고 이혼을 결심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른 후 어머니는 두 번째 아저씨를 만난다.
그 아저씨의 성은 신 씨였다. 고로 조디는 Jordan Sin이 되었다. 아니 그랬었다. 또 과거형인 이유는 그 아저씨 역시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몹시 지겨운 레퍼토리이나 사실이다.) 열 살 무렵 조디의 어머니는 신 씨 아저씨와 또 한번의 이혼을 결심하셨다. 그의 어머니는, 결혼이란 행위는 본인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실수라하시며 조디의 성을 윤 씨로 바꾸라 이르셨단다. (아주머니의 성이 윤 씨다.) 그리하여 지금의 조디는 Jordan Yoon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평소 어떠한 내색도 안 하는 조디는 술만 취하면 늘 아빠들의 이야기를 한다.
조디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못한 채, 여전히 깊게 벌어져있는 것 같다.
제나는 내가 시드니로 넘어와 처음 사귄 친구라 말할 수 있겠다. 제나는 나와 정 반대의 성격이다. 재잘재잘 말도 많고 애교도 많고 웃음도 많고, 사교성도 어찌나 좋은지. 제나와 처음 만난 날 나는 이 친구가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녀는 본인의 한국 이름과 내 이름이 같다며 나를 아주아주 좋아했다.
남동생만 둘이 있는 제나는 어렸을 적 가족들 전부와 함께 호주로 이민을 왔다. 그 후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기다리셨다는 듯 어머니 아버지는 동생 둘을 떠넘기시고서 한국으로 돌아가셨단다. 그 이 후 단 한 번도 호주 땅을 밟지 않으셨더랬다. 호주라면 치가 떨리신다나 뭐라나. (이해가 아예 안되는 건 아니다.)
아무튼 이제 막 성년이 된 제나는 방 하나짜리의 작은 집에서 미성년의 남동생 둘과 함께 살았다. 방 하나는 남동생 둘이서 썼고, 제나는 문도 없는 스터디 룸 (작은 창고 같은 공간)에 조그마한 침대 하나를 놓고 생활했다. 그래도 제나는 본인의 상황을 불평불만하지 않았다. 본인보다 힘들 법한 사람들과 비교하며 그래도 쟤보다는 내가 낫지 하는 법이 없었고, 누군가의 상황을 으레 짐작하며 나보단 네가 살기 편하지 하며 괜한 상처를 주는 행동 역시 하지 않았다.
몇 년간을 별다른 직업 없이 계속해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제나는 '뭐 어쩌겠어' 하고선 웃었다. 그렇게 웃으면서도 끊임없이 노력했지싶다. 매일같이 이력서를 넣고, 하루하루 할 수 있는 한 최대치의 에너지를 쏟아부었을 것이다.
그 노력의 결과, 그녀는 지금 꽤 괜찮은 주택에서 동생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고
무려 학교 선생님, 정직원 3년 차의 고소득 안정적 직업의 소유자다.
아무튼 이 깜찍한 둘과 나 김지윤은 시드니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마닐라 공항으로 향했다. 밤 비행기였으므로 잘 잘 수 있겠지 라는 기대를 했으나 그것은 아주 쓸데없는 나의 망상이었을 뿐이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바싹 마른 필리핀 남자가 성큼 다가오더니 마치 우리만을 기다렸다는 듯 캐리어를 채갔다. 필리핀 공항의 특별 서비스인가봐, 하고 수군대는 호구 셋은 영문도 모른 채 남자의 꽁무니만 쭐레쭐레 쫓아갔다.
50m쯤 걸었을까. 남자는 이곳이 공항이라며 어벙한 얼굴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손에 짐을 떠넘겼고 우리는 오케이 땡큐!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는 옷자락을 잡혔다. 그는 돈을 요구했다. 여기까지 짐을 들어줬으니 서비스 피를 줘야 한다 했다. 오, 정말이지.. 마지막까지.. 아무튼 다시 또 돈을 뜯긴 우리는 필리핀항공 카운터로 가 체크인을 하려 했는데, 오버부킹이라는 청천벽력의 소식을 전해 듣게된다.
어쩌란 말인가. 당장 내일부터 일을 가야 했고(난 아니지만) 돈을 뜯긴 것부터 화가 나 있던 조디와 제나는 결국 폭발했다. 카운터를 탕탕 쳐대며 니들이 오버부킹을 해놓고서 왜 우리에게 책임 회피를 하냐고 윽박질렀다. 거진 삼십 분 언저리를 서 있었을까, 다행히도 직원은 어찌저찌 자리를 만들어냈다. 비행기는 탔으나 우리 셋은 전부 떨어져 앉게 되었으며 놀이기구처럼 흔들리는 기내에서 나는 잠 한숨 자지 못했더랬지. 열흘도 안 되는 짧은 여행이었으나 고 며칠 새 시드니에 대한 녹진한 그리움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