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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kim Mar 13. 2020

열한 번째 산맥

12. 누군가는 흥미로워할 수도 있지

설마설마했는데



방으로 들어와 한숨 자고서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역시나 나의 계획표를 자근자근 밟고 일어 선 그들은, 일정에 없던 싱가폴 크랩을 선택했다. 필리핀에서.. 싱가폴 크랩이라.. 하하. 그래 뭐, 대도 안했다. 역시나 맛은 없었다.


나는 자고 일어난 후로 어쩐지 배가 쿡쿡 거리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 받았다.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갔으나 얼마 먹지도 않고서 포크를 내려놓았다. 맛도 없었고 본격적으로 배가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날 저녁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보라카이 클럽 투어를 할 예정이었는데 계획충의 계획이 꼬이는 순간이었다.


고통은 한순간 밀려왔다. 급하게 방으로 들어가 누우니 그때부터는 복통으로 인해 허리조차 펼 수 조차 없었다. 끙끙 앓는 나를 걱정스레 보던 조디와 제나는 마트로 달려가 배아플 때 먹는다는 약을 종류별로 사 왔다. 어쩐지 미심쩍은 마음에 필리핀 약 뜯지도 못했고 그나마 안면이 있는 겔포스를 한봉 뜯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물약, 가루약은 입에도 못 댄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변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겔포스를 한입 물었다. 우욱. 역시 토악질이 나왔다.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대며 겔포스 미량을 입에 넣고서 헛구역질 하기를 오천 번, 코를 틀어막고 삼킨 후 웩웩거리기 이천 번 쯤 반복했지싶다.


지금 생각해보니 바다 아래에서 느낀 극도의 공포감과 스트레스로 인한 위경련이었을테다. 당연지사 가스 제거의 겔포스가 위경련에 들을 리 없다. 정신 사나우니까 썩 꺼지라는 나의 손짓에 망나니 둘은 클럽 투어를 하러 고 그때서부터  본격적으로 끙끙 앓기를 시전 했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위경련은 시간 내내 주구장창 아픈 병 아니다. 대략 5분간 3의 강도로 아다면, 그 후 1분은 10의 강도 위를 조지는 아픔이 찾아온다. 나는 멍하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있다가, 고통이 찾아올때면 으윽!!!!!!!!!!! 하고서 식은땀을 질질 흘렸다. 그렇게 뒹굴거리다 잠에들었다.




다음날 숙취에 쩔은 망나니들과 함께 조식 식당으로 내려갔다. 죽을 가져와 한입 먹는데 거의 이건 뭐 소금국이었다. 조금 괜찮아졌던 위가 죽을 넣으면 넣을수록 다시금 아파왔다. 반의 반의 반도 먹지 못하고 대에 몸을 뉘였다. 망나니 둘은 오늘 돌핀과 함께 제트스키를 타러 나간다며 같이 나가자고 징징댔다. 이 녀석들아 아파서 서있지도 못하겠단 말이다. 완강하게 거절한 나는 호텔 방에 누워 다시 또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바다도 무서워하는데 잘됐지 싶었다.



설마가 사람 잡을 줄이야!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상태가 훨씬 호전되어있더랬다. 나는 혼자 디몰 구경에 나섰다. 아쉽게도 보라카이 최고의 망고주스는 자중해야 했지만, 호주로 돌아와 혼자 먹을 바나나 칩과, 막 쓰다 버릴 선글라스도 나, 나를 위한 기념품으로 뽀얀 깃털이 나풀나풀 달린 드림캐쳐도 샀다. 호텔로 돌아와 굶주림에 쓰러질 무렵, 망나니들이 잔뜩 젖어서 돌아왔다.


나는 피자가 먹고 싶다고 했고 리는 빠르게 준비 후 해변 근처의 펍으로 내려갔다. 피자는, 피자 역시였다. 피자가 맛없기 힘든데 말이다. 토핑은 부족했고 딱딱했고 차가웠고 달았으며(대체 왜!) 아무튼간에 맛이 없었다. 고통의 두려움으로 인해 그냥 물 한잔을 들이켰다. 맛없는 피자 한 조각에 맥주조차 마시지 못한 나 자신이 통탄스러웠다.



다음날 보라카이 일정은 끝이났고 우리는 마닐라로 향했다. 돌핀과 작별인사를 하며 그때서야 우리는 알았다. 그의 이름은 돌핀이 아닌 도우펜이었음을. 삼일 내내 안녕 돌고래야!라고 말하는 우리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그는 우리의 발음을 정정해주지 않았을까..


우리는 마닐라 안에 있는 마카티라는 도시로 갔는데 마카티는, 휴양지였던 보라카이와는 정 반대로 번쩍번쩍한 호텔들과 비즈니스 건물들이 밤새 불그스름한 빛을 내는 아주 화려한 도시다. 숙소는 그린벨트라고 하는 거대 쇼핑몰 바로 앞의 호텔었고 그 곳에서 삼일을 묵었다.


마카티 역시 저녁 즈음 도착했금 출출해 근처 세븐일레븐으로 마실을 나갔다. 캄캄한 골목 저편으로는 엠뷸런스 소리가 아득히 들려왔고 거리에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위치상으로 2분도 채 안 되는 거리였는데 체감상 20분 같이 느껴졌다. 정말이지 너무 무서웠다. 남은 이틀은 무조건 일찍 들어오기로 다짐했다.


다음날에는 바로 앞의 그 거대 쇼핑몰 구경에 나섰다. 쇼핑몰 곳곳에 위치한 입구에는 무장 경찰들이 서 있었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몸 수색과 짐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했다. 이 모든 광경들 쫄보 셋의 공포심을 더욱더 극대화시켰다. 대체 왜 렇게 깐깐하게 입구 컷을 하는 데? 총..? 마약..?! 간이 손톱만 한 우리는 대충 훑본 후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하나를 사들고 저녁은 그냥 호텔에서 먹자 이야기했다. 호텔에서의 저녁식사는 필리핀에서 먹은 것 중 제일 맛있었다. 거의 흡입하다시피 먹고 흡족한 상태로 숙면을 취했다.

이 집 잘하네. 이 집 맛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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