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단짝 친구
쏘소와 유니에 이어, 나의 소울 메이트 정미미. 우리는 열일곱의 봄에 만났다. 일찌감치 미술로 경로를 틀었던 나는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미술부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거진 10년 가까이를 같은 동네에서 같은 친구들과만 교제해왔던 나에게 집과 동떨어진 고등학교 진학은 설렘보다는 스트레스가 더 컸다.
미술부 교실은 학교 지하에 위치해있었는데, 아직도 나무 바닥을 긁는 문 소리와 틈틈이 들어오는 햇빛, 그 가운데를 떠다니던 먼지와 쿰쿰한 교실 내음이 기억난다. 드르륵, 미술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시야에 들어오는 건 낯선 얼굴의 아이들과 미술실 가운데 놓인 이젤. 이젤 앞에 앉아있던 새하얀 아이는 문 앞에 서서 눈만 굴리던 나에게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넸고 나는 안녕. 하고 웃으며 답했다. 그게 미미와 나의 첫 만남, 첫인사였다.
지금에 와서 고등학교 시절을 되짚어보고 있자니 참 이상도 하다. 고등학교 1학년, 같은 반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늘 붙어 다니던 친구들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들의 얼굴은 커녕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나의 기억 속 열 중 아홉은 정미미와의 날들이다. 그만큼 그녀와의 학교 생활이 즐거웠던 거겠지.
2학년때부터 문과 이과 예체능과가 갈렸다. 예체능을 공부하는 아이들은 학교가 끝남과 동시에 학원으로 직행해야 했기에 '미술, 음악, 체육 전공의 아이들을 한 반에 몰아넣어줄 테니 학급 물을 흐리지 말라'라는 학교 측의 의지가 돋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정미미의 얼굴을 보고선 깊은 안도감이 들었다. 중학교 친구인 덕배, 그녀 역시 그 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미미의 옆자리에 앉아 미미와 수업을 듣고, 미미와 짝을 하고, 미미와 밥을 먹고, 미미와 학원을 갔다.(심지어 학원도 달랐다.) 이제 와서 보니 나 거의 미미 껌딱지, 그것과 비슷하네.
학교가 끝나고 학원 가기 전 우리는 주로 '해피 투게더'라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크로와상 샌드위치를 먹었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일주일 내내 뭘 먹고 뭘 할지 계획표를 세우며 놀았다. 하루 종일을 떠들고 집에 와 잠들기 전까지 문자를 했고 아침에는 눈 뜨자마자 어디냐 물었다. 수능 전날엔 도서관에 간다고 나와서는 버스를 타고서 수다를 떨며 같은 노선을 뱅뱅 돌았다. 이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다른 아이들의 얼굴은 아무리 쥐어짜내도 기억이 흐릿한데 정미미와 뭘 먹었는지, 어딜 갔는지마저 여전히 생생하다.
그렇게 열심히 놀던 나는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수능을 망쳤고 어찌어찌 대학교에 진학했다. 스물, 스물하나의 미미와 난 물에 잠긴 듯 축축했다. 거진 10년 가까이를 대학교 하나 보고 달려왔는데 막상 진학하고 나니 현실의 벽 앞에서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도예과에 가고 싶었던 나는 엄마의 등쌀에 밀려 디자인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아날로그파 정미미 역시 내색은 안 했어도 컴퓨터로만 수업을 하는 디자인과에서 힘들었을 테다.
부식된 우울의 침전물마냥 살아가던 난 도망치듯 호주로 건너왔고, 얼마 안 있어 정미미는 워홀 명목으로 날 보러 왔다. 비록 한 달도 안돼서는 돌아갔지만. 호주에서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그런 그녀가 호주로 다시 발걸음을 해주다니. 유니와 그녀의 아들은 그의 유치원 일정으로 인해 미리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떠났고 정미미와 나는 브리즈번행 비행기를 탔다. 그곳에서의 이틀은 오월의 그 어느 날 보다 편안했다. 미미는 나에게 있어서 그런 사람이다.
언젠가 미미가 써주고 간 편지를 꺼내 읽고는 한다. 편지엔 그녀의 진심이 잔뜩 번져있다. 그 편지를 읽으면, 난 내 어깨 위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그냥 내 멋대로 살아도 될 것만 같다. 그러다가도 다시 한번 찬찬히 읽고 있자면 '내 맘대로 할 거야'라는 생각들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어버리는, '열심히 살아야겠다' 라는 마음이 스믈스믈 기어오르는 기이한 편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미미의 행복만큼은 0.1퍼센트의 질투 없이 진심을 다해 축하할 수 있다.
서른 초반의 우리는 스물 초반의 그때처럼 축축하다.
음지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와 미미는 무기력에 젖어있다.
정오가 되고 떠오를 햇볕 아래서 파삭파삭 마를 우리를 고대해본다.
괜찮다는 말을 조금 더 가볍게 던질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