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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kim Apr 22. 2020

스물 일곱번째 산맥

28. 여행사에 취직했습니다.

여행사


나는 여행사에 취직을 했다. 그러니까 독립을 하고서 3개월 후의 일이다. 글을 처음부터 읽어온 사람은 알겠지만 내가 가장 일해보고 싶었던 사무직은 여행업이었다. 난 계획 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업무를 할 때에 있어서는 나름 꼼꼼한 편이라 (평소엔 덜렁대지만) 그쪽 일이 잘 맞을 것 같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취해있었다. 3개월간의 백수생활은 여유롭기도 했으나 집에서 모아놓은 돈을 야금야금 까먹는 것도 싫었고 하루 온종일이 지루했다. 그래서 취업 사이트를 뒤적거린 결과 집에서 5분거리에 있는 여행사에서 직원을 *급구*하고 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바로 이력서를 넣었고 즉시 면접을 보러오라는 전화를 받았으며 당연히 합격이었다!


이 여행사에서 사람을 급구하는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인수인계를 해줘야 할 사람은 비자 관련으로 예고없이 떠나갔고,옆자리의 내 사수는 곧 수술을 하러 떠날 예정이었으며, 또 다른 실장은 한달간의 휴가로 인해 정원 6명의 회사에 세명밖에 없던 상황. 호주는 2월부터가 성수기의 시작이라 여행객들이 많이 쏠리는데 내가 입사한 달은 12월. 대략 난감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비수기인 12월에 나는 빡세고 빡세게 가르침을 받았고 남들보다 대략 네배는 빨리 업무를 익혔다.




오퍼레이터 



그렇게 여행사 오피로서 빠르게 자리잡고 있던 나에게 두달도 채 안되서는 다시금 시련이 닥친다. 회계 담당의 비비안과 휴가를 다녀온 실장이 한판 붙은 것. 다른 실장님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비비안은 결국 짤리게 되고 소장님은 어리벙벙한 나에게 회계업무라는 것을 제안하게 되는데.. 그렇게 나의 직장생활이 순조롭게 망해가는 중이었다.


소장님은 진정 회계업무를 나에게 맡길 작정인 것 같았고, 나는 따로 내가 맡은 업무가 있었기에 초보 오피가 이 둘을 소화하기란 아주 몹시 벅찼다. 직장에 들어온지 두달도 안된 나는 당시 예쓰맨이었고 뭐든 잘 할 수있다고 '예쓰!'만 외치다 회계업무와, 스트레스성 위경련을 얻게된다. 그렇게 한달쯤을 일했을까. 어느날 사장님이 한국에서 돌아왔다.(사장님은 출장으로 인해 시드니에 있는 시간이 현저히 적다.) 사장님이 회계 할 사람을 구해 왔다고 한다. 만세! 만만세! 드디어 해방이었다!




케빈



그 '회계 할 사람'은 다름아닌 사장님의 조카, 케빈. 케빈은 나보다 어린 호주 이민자인데, 입사 전에도 두어번 회사에 놀러온 적 있었다. 키도 크고 허우대도 멀쩡해보이는 그는, 뭐랄까. 흠 이 친구를 뭐라 해야할까. 언뜻 보면 정도 많고 마음도 여린것 같다가도 어떤 날 보면 냉정하고 아주 차가워보이는 핵인싸 남정네. 선을 마구잡이로 넘는 것 같다가도 잘보면 그 선 안쪽에서만 깔짝깔짝대는 미워할 수 없는 친구. 아직도 나는 그를 잘 모르겠다.


케빈은 일년을 버티고 퇴사 했다. 그가 이 회사에 영원한 붙박이 일 줄 알았던 나는 다소 충격이었다. 사장님의 조카고 또 나름대로 애정이 있어보였는데, 어느날 회식자리 후 케빈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도 무척 고생스러웠던 것 같다. 밤낮없이 돈달라고 연락해대는 거래처들, 회사가 왜 이모양이냐는 사장님의 압박, 모든걸 맡고있에도 불구하고 본인 마음대로 굴릴 수 없는 회사. 이 괴리에서 그는 스트레스성 탈모가 진행중이라 했다. 그렇게 케빈과 작별인사를 했고 그는 짧디 짧은 회사 생활을 뒤로하고서는 훨훨 날아갔다.


종종 그와 이야기하던 것들이 생각 난다. 케빈의 와이프 클레어는 유학생으로 호주에 왔다가 케빈에게 코가 꾀인 친구인데, 그녀의 아버지는 판사. 부유한 집 딸래미와의 결혼생활은 남들 보기엔 좋아보이겠지만 실상은 빛좋은 개살구랬다. 결혼을 허락받으러 간 날 클레어의 부모님은 케빈을 따로 불러 너는 전문직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니 남들보다 두배, 세배로 노력해야한다고 이야기 했다한다. (그리 말하는 그집 아들은 4수생으로 현재 백수이다.) 한국 여행을 하러가면 10일 중 8일은 클레어 부모님의 집에 있어야한다고, 케빈도 한국에 왔으니 본인의 부모님을 뵈러 간다고 말하는 날엔 아들 뺏기는 기분이라며(친아들 따로 있잖아요) 마음 상해하는 등, 아무튼 이해할 수 없는 종자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케빈이 사라진 회사는 적막하고 삭막했고 절간같았다. 그의 존재감이 생각보다 꽤 컸구나 싶었다. 그가 떠나서 아쉽긴 했지만 케빈은 또 그의 삶을 씩씩하게 잘 살아가리라. 빠졌던 머리가 풍풍 다시 돋아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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