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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ul 11. 2024

갑질을 해도 엄마였으면 좋겠네

평생 돈 버는 기계로 살았으면 이제 좀 행복해도 되는 거 아닌가?

고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 30년이 다 되도록 밤낮없이 안마했잖아.

아직 50도 안 됐는데, 이명에 관절염에 우울증에….

지금은 일 하기도 힘들다는구나.

응, 누나 맹학교 동창 친구 얘기야.

나처럼 전맹 여자 사람이고, 딸이 하나 있어.

강산이는 안내견 노릇하느라 결혼할 축복까지 박탈당해서….

누나 푸념이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네.

1980~90년대 안마사들 보통 24시간 일터에서 대기하며 일하는 시스템이었거든.

친구는 딸아이를 키우면서도 가계 경제를 책임지느라 아이와 부대끼며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었어.

아빠는 아빠대로 딸아이를 정성으로 키웠다지만….

현재는 세 식구 다 뿔뿔이 흩어져 살아.

 누나는 평생 돈만 벌다가 몸도 맘도 지쳐버린 친구가 안쓰럽기만 하구나.

지하에 있는 업소에서 일할 때는 햇빛 한 조각도 맘껏 누리지 못했었어.

술을 전혀 못하는 그녀가 언젠가 만나니 담배를 배워 피우더라고.

잊을만하면 전화로 연락하며 소식을 나누는 것이 전부였어.

아파서 입원했다고, 약 먹고 괜찮아졌다고, 일터를 옮겼다고, 남편과는 결국 이혼을 했다고….

20대로 자란 딸이 친구 전화를 안 받는다는 거야.

궤씸하더라.

엄마 전화가 불편하다고 하더래.

그러면서도 속상한 일 있을 때는 울면서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는 모양이야.

“밀도야 통화할 수 있어? 엄마로서”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어.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더라고.

오랜만에 딸아이가 연락을 해왔는데, 끊고 나니까 머리가 깨질 것 같고 심장이 콕콕 쑤시는 것처럼 아프더래.

“내가 죄가 많지.”

아이 어릴 때 같이 하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

세 식구 먹고살았고, 서울에 집도 마련했고, 딸이 성인이 되도록 가정 경제 책임지느라 평생 돈만 벌어 놓고도 이 바보가 미안해하고 있었어.

이제는 행복해도 아니 행복해야 공평하잖아.

딸아이가 친구 전화만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그냥 잘 지낸다는 연락만 해주면 좋겠다고, 아무리 자식이 갑질을 해도 엄마였으면 좋겠단다.

 맹학교 선후배들 보면 슬퍼질 때가 있어.

남편이 비장애인이든 아니든 거짓말처럼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

소송 끝에 겨우 이혼하고 부실한 눈으로 두 아이를 혼자 키우는 후배가 있고.

무릎이며 손목, 어깨 망가져 가며 기계처럼 돈 벌어도 누리지를 못하는 거야.

실명까지 숙명이라 여기며 험한 세월 견딘 사람은 그 말로가 행복해야 마땅한 거 아니냐고.

친구가 웃었으면 좋겠어.

지금 죽어도 별 미련 없다는 그녀에게 내일이 부디 손에 잡히는 기쁨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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