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아, 누나 1박 2일 짧은 여행을 다녀왔어.
취향 저격 맞춤형으로 걷고 말하고 먹고 웃고….
음 누나가 매우 좋아하는 대학 선배 부부가 있어요.
형부샘이 저시력이거든.
한결같이 언니샘을 마님처럼 보필하는 다정의 신.
그 선배집에서 하루 묵은 거야.
건강 전도사 부부라서 몸에 나쁜 것은 일절 먹지도 하지도 않는 모범답안 같은 양반들인데, 누나를 위해 글쎄 8시가 넘은 저녁에 치맥상을 마련해 주신 거 있지.
‘복 받으실 거예요.’
어디 그뿐이니?
혼자 걷고 싶어라 하는 내 맘을 헤아려 선배가 누나에게 장애물도 낭떠러지도 없는 명품길을 선사해 주신 거야.
흰 지팡이를 들고 살살 걷기 시작했어.
선배 부부는 앞서 가고, 난 내 속도로 굼벵이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걷는데, 키야 이것이 힐링 아니면 무엇이겠냐.
언니랑 형부 거의 구보 수준으로 걸어서 앞서 갔다가 다시 내게로 돌아와 몇 번을 괜찮냐고, 걸을만하냐고 마음을 써주니 무서울 것도 외로울 것도 없잖여.
그 기나긴 수변 공원 산책로가 비로소 내 것이 된 느낌.
언젠가 조그라미랑 걸었던 길과 완전 닮은 꼴로 옆 쪽으로는 자전거 도로가 펼쳐져 있다고 했어.
왜 이렇게 좋은 맹인용 명품길에 점자 블록 하나가 없을까?
이 나라 정말 어마무시한 세금을 골프 치시느라 해외 관광 명소 찍으시느라 펑 펑 써대기도 잘하시더구먼 맹인들이 혼자 걸을 수 있는 길 하나 조성할 생각을 안 해주는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자니, 어떤 남자분의 인자한 목소리가 들렸어.
“파이팅입니다.”
‘목소리로는 딱 목사님 각이 신 걸요.’
웃음이 절로 나더라고.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하고 계속 걸었지.
새소리도 들리고, 지나가는 사람들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리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도 뛰는 사람도 많더라.
그냥 나 홀로 걷기 누나 소원이었잖니.
누구에게 딸려 가지 않아도 되니 몸 편하고, 구구절절 대꾸하지 않아도 좋고.
그야말로 고요를 걷는 시간.
우리 강산이 떠난 후로는 처음 누려봤네.
맹인이 맹인 사정 안다고, 언니는 그런 내 마음을 100% 이해했어.
약 20000보, 다리가 욱신거리는 느낌이 퍽 좋더라고.
“스시 한 접시만큼 불태우셨네요.”
‘얄미워.’
우리 강산이랑은 언제든 어디든 내 마음대로 걷고 또 걸었었는데….
1박 2일 동안 언니 부부는 값없이 치킨도 맥주도 해초비빔밥도 치즈케이크도, 무엇보다 나 홀로 산책과 따뜻한 잠자리를 줬어.
이 은혜를 어찌 갚을꼬.
갈 때는 언니 허리라도 만져 주고 와야겠다 싶었는데, 안마는커녕 그거 걷는 것도 버벅거렸다는….
아무튼 못 말리는 저질 체력이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