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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정 Jun 10. 2022

당신이 궁금해요

[마음치유 프로젝트 힐링칼럼 19]


  나는 평소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다. 우리가 같은 시공간에서 함께 존재한다고 하지만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자기만의 고유한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나만의 필터로 바라보는 세상, 즉 각자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저마다의 성장 환경이 다르고 삶의 궤적이 다르기에 똑같은 현상을 보고도 각자가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고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궁금하다. 


지금의 당신이 있기까지 어떠한 삶의 풍경들을 지나왔는지, 어떠한 생각을 했고 하고 있으며, 어떠한 마음으로 향하는지에 대해….


  그러하다 보니 심리학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배우기도 하고 다양한 삶의 이야기나 감정들을 담은 글이나 다큐를 보면서 여러 인생들을 들여다보고 사람의 마음을 엿보기도 한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질문이 이어지기도 하는데 그러면 대부분의 반응은 비슷하다. 잠깐 멈칫하거나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는다는 것. 그리고 얼마간의 뜸을 들인 뒤에야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예컨대 “어떨 때 가장 행복해? 살면서 언제 가장 슬펐어? 그 일을 겪을 때 어떤 감정이었니? 그 당시 어떠한 마음으로 극복했던 걸까?” 등등 삶의 면면에서 마주한 그들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한 질문들이다.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받는 표적이 되는 이는 바로 엄마다. 

집에서 어떤 책을 읽다가, 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궁금증이 생기면 쪼르르 달려가 몇 가지 질문을 늘어놓는다.


 “엄마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그러한 일이 닥쳤을 때 엄마 마음은 어땠어? 그때는 왜 그렇게 했던 거야?” 


 “몰라.”


 보통은 그렇게 그치는데 그것으로 성에 안 차는 날에는 “모르는 게 어딨어? 말해줘, 말 좀 해봐.”하고 재차 물어보고 또 물어보면 결국엔...


 “뭐 그런 걸 묻고 그래? 쓸데없는 것 좀 묻지 마. 이상한 소리 하지 마.” 


하고 성가시다는 듯 화를 낸다. 질문을 한 게 그렇게 잘못인가 싶을 만큼 느닷없이 정색하는 엄마의 반응이 의아했다. 나는 그저 엄마의 마음이 궁금해서 물은 것일 뿐인데 나의 질문을 쓸데없는 것으로, 나를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으로 치부한다는 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다시 엄마에게 질문을 했다. 여느 때와 같이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고 입을 닫고 있는 엄마에게 말했다. 


“나는 엄마에게 훌륭한 대답을 요구하는 것도, 멋진 대답을 듣고 싶어서도 아니야. 

단지 엄마의 마음이 궁금해서야.” 


그 말을 듣고 엄마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다가 살며시 누그러졌다. 딱히 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예상하는 바에 대해 수긍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내가 하는 질문 자체가 까다롭다거나 속내를 드러낸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만한 것이 아니다. 생각과 감정에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 오로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거나 느낀 그대로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모른다’는 말로 뭉뚱그리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내 질문이 결코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엄마도 엄마이고 싶기 때문에, 부모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날의 엄마의 눈빛과 표정을 보고서.


  사는 일이 바쁘고 삶에 치일 때, 그때를 견디고 이겨내기에도 급급할 때에는 내 감정을 논한다거나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 그때를 살아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니까. 그래서 그때의 내 마음이 어땠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거나 돌아볼 겨를이 없다. 본인도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고 지나왔고, 스스로에게 그러한 질문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이 질문들이 익숙하지 않다. 인생의 주요 지점에서 느꼈던 복잡 미묘한 감정들과 생각들을 짧은 몇 마디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으셨겠지.


  모든 부모가 내 자식에게만큼은 근사한 어른이고 싶지 않을까. 자신의 모자라고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 부모 마음이지 않은가. 자식 앞에서 정돈된 언어로 멋지게 표현하고 싶은데 갑작스럽게, 뜬금없이 닥쳐온 질문 앞에서 괜스레 작아지는 것이다. 유창하게 말도 하고 싶고 유려하게 표현도 해 주고 싶은데 그것을 담아내지 못하는 당신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토로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엄마가 모르는 것이 있다. 

말솜씨가 없어도, 표현이 서툴러도 엄마는 이미 나의 자랑이라는 것을, 내가 하는 질문들은 당신을 향한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자 당신을 더 잘 이해하고픈 내 마음의 표식이라는 것을. 


  그날 이후에도 엄마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세세히 들어보진 못했다. 아직까지 나의 질문이 낯설고 어색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삶의 조각들과 마음의 흔적들을 발견하기 위해 앞으로도 많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난 여전히 당신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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