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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정 Sep 17. 2022

그의 나이가 되어보니

[마음치유 프로젝트 힐링칼럼 22]


  추석이 다가오면서 조금 일찍 성묘길을 나섰다. 아빠를 뵈러 가는 길에 산뜻하고 선선한 바람까지 함께하니 기분 좋은 드라이브를 가듯 이래저래 반갑고 들뜬 마음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고추장을 가득 실은 트럭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니 일명 ‘고추장 항아리 사건’의 옛 추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다섯 살 무렵 나는 아빠가 근무하시는 회사의 사원 아파트 1층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이웃들과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나 또래의 친구들도 꽤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1층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1층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쉽게 노출된다. 밖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그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베란다로 쪼르르 달려갔다. 까치발을 하고도 창문의 높이만큼 키가 닿지 않았던 나는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늘 엄마 아빠의 도움이 필요했다. 엄마나 아빠가 나를 들어 올려 창문 밖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후, 어른들과 친구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전하는 게 그 당시 나의 낙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잠시 집을 비우고 홀로 집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바깥에서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궁금증이 일어난 나는 얼른 창문 밖을 확인하고 싶었으나 혼자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높이에 막막했다. 그러다가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바로 커다랗고 뚱뚱한 항아리. 베란다에 고추장과 된장을 담아둔 항아리가 있었는데 그것을 밟고 올라가면 되겠다 싶었다. 그것이 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거란 걸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튼튼하게만 보였던 항아리의 뚜껑을 밟고 올라가려고 한 발을 올리고 다른 한 발을 떼는 순간 와장창 하고 항아리가 깨져버렸다. 순식간에 고추장이 줄줄 새어 나와 바닥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순간 얼마나 아찔하던지! 깨진 항아리 조각들은 어떻게 치울 것이며 엉망진창으로 흘러내린 고추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것보다는 이것을 본 엄마에게서 혼날 생각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어찌할 줄 모르고 그 자리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그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나는 죽었다’라고 공포에 떨고 있는 순간, 나타난 건 엄마가 아닌 아빠였다. 아빠를 보자마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러운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빠는 고추장 범벅이 되어버린 베란다를 보고선 괜찮다고 하며 나를 대피(?)시킨 뒤 깨진 항아리와 빨갛게 물든 베란다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와서 어느 정도 사태는 수습되어가고 있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엄마의 불호령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조마조마하게 쪼그라든 가슴을 겨우 움켜쥐고 있는데 엄마가 나타났다. 


  “어머나 이게 뭐야? 가만히 있는 항아리가 왜 깨진 거야 대체 누가 그런 거야?”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혼날 준비를 하며 눈을 질끈 감는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아빠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그랬어. 잘못 부딪혀서 깨졌어.” 

“아휴. 아까워라. 이게 뭐람.” 


범인은 나인데 아빠가 죄를 뒤집어썼음에도 그 순간 나는 모른 척 가만히 있었다. 내가 혼나는 것이 무서워 내 죄를 눈감아 버렸다. 아빠에 대한 미안함과 사실대로 알리지 못한 죄책감에 차마 고맙다는 말조차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아빠는 내게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일은 아빠와 나 둘만의 비밀을 남기고서 마무리되었다. 


그날 이후 큰 어려움에 닥친 내게 짠 하고 나타나 나를 구해준 슈퍼맨 아빠에 대한 고마움을 두고두고 잊지 못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집에서 고추장을 담글 때 군말 없이 엄마의 일손을 돕고 있다. 엄마를 속인 미안함도 한몫하면서.


  벌써 30년 전 일이 되어 버린 그 일을 아빠를 만나러 가기 전 다시 소환할 줄이야. 나를 위험에서 구제해준 슈퍼맨에 대한 예우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를 떠나보내고 마음속으로만 감사 인사를 전한 지 십수 년이 흘렀다. 그러고 보니 내가 벌써 그때의 아빠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그러한 상황을 마주한다면 나는 과연 아빠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 아이의 잘못을 꾸짖기보다는 아이가 놀라지 않게, 아이의 마음을 배려하여 조용히 눈감아 주었을까…. 


그 덕분에 내 잘못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내가 한 잘못을 묵인하고 다른 이의 잘못으로 둔갑시켜버린 죄의 무거움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 아닌 마음의 형벌로 충분히 깨우치게 되었으니까. 


  해를 거듭하면서 멋진 아빠에 대한 자부심이 더해간다. 곱씹을수록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평생의 추억을 남겨준 것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당신을 만나러 가며 고백합니다. 나는 벌써 다섯 살 어린 딸을 감싸주던 당신의 나이가 되었는데 아빠만큼 성숙한 어른이 되지는 못한 것 같아요. 그래도 예쁘게 봐주실 거죠?’ 


  하늘에서 흐뭇하게 웃고 있을 아빠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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