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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달 May 11. 2023

감기와의 전쟁 속 마주한 장면.

아이가 아프면 마음이 아픈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요즘은 아이가 감기 증상을 보이면 한숨이 먼저 나온다. 또 소아과 전쟁을 치뤄야 하나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로 호흡기를 가리고 다니다 갑자기 봉인해제가 되었기 때문일까.

아무리 환절기라지만 너무 자주 아픈 아이를 보니 마음이 무겁다. 불과 2주전에 항생제를 먹고 겨우 나았는데, 다시 기침 가래가 들끓어 잠 못 이루는 아이를 보면 발걸음은 또 병원으로 향하게 된다. 그런 아이들이 우리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병원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누가 소아과가 폐과 위기라고 했던가. 동네 소아과에 가면 그런 뉴스가 무색하게도 대기 2시간은 기본. 똑닥 어플로 9시 오픈 땡!하고 광클을 해도 대기 60번인 걸 보면, 아픈 아이들이 유독 많은 봄을 지나고 있다. 어떤 분 말처럼, 뫼비우스의 감기라는 말이 이렇게 와닿는 봄이 있었던가.

이렇게 아픈 아이가 많다보니 소아과, 이비인후과는 늘 북새통을 이룬다. 우리 가족이 찾는 소아과는 간호조무사 선생님들도, 의사 선생님들도 항상 친절하고 꼼꼼하셔서 그분들의 직업의식에 감탄을 하게 된다. 하루에도 수십명이 몰려들어 접수하고 대기하고 열 재고 진료하고 처방을 내리는 그 반복적인 일과를 감당하는 분들. 하지만 그분들도 사람인데 왜 지치고 짜증이 나지 않을까. 아픈 사람들 앞에서 그저 본인의 소임을 묵묵히 해나갈 뿐 일것이다.


얼마전 아이가 아파서 또 소아과를 찾았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다니던 곳이라 간호조무사 선생님들과도 안면을 튼지 오래인 곳이다. 역시 그날도 대기가 2,3시간을 해야 한다고 한다. 접수를 하고 2시간 정도 지나서 아이를 데리고 온 병원은 여전히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북새통을 뚫는 날카로운 목소리.


"아니,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얼마를 더 기다리라는건데!"


한 할머니가 도무지 못참겠다는 듯, 역정을 내고 있었다. 그러고도 마뜩찮은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간호조무사 선생님 면전에 던지고 나가버리신다.


모두가 놀라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 담담한 얼굴로 던진 종이를 챙기고 흐트러진 멘탈도 가지런히 매만지고 있는 간호조무사 선생님.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할머니는 다시 돌아와 신경질을 내신다. 이번에는 할아버지와 아이도 함께였다. 옆에서 지켜보니, 할아버지가 할머니께 엄청나게 화를 내시고 할머니는 그 화를 다시 간호조무사 선생님께 풀고 있는 상황이다. 할아버지에게 안겨있는 아이는 유치원생 정도 되어보였고, 그저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이런 저런 말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달래고, 사과하는 간호사 언니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다 미안했다.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는 말이 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부장이 과장에게, 과장이 대리에게, 부모가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듯, 그 할머니 할아버지는 본인들이 더 윗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간호조무사 쌤들에게 부정적 감정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화로 가득한 그분들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사실 대기실에 있는 모든 부모와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대기실을 채운 감기 바이러스보다 그분들이 내뿜는 화 바이러스가 더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손주에게도 그 바이러스는 쉽게 전이되어 더 큰 영향을 미칠 거라는 것을.


누구나 한없이 길어지는 대기 상황은 지치고 짜증이 솟구친다. 하지만, 우리가 부모라면, 어른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감기 바이러스 앞에선 속수무책일지라도 부정적 감정 바이러스는 누구보다 우리 자신이 조절할 수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겠다고 다짐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다음에 병원을 찾으셨을 땐, 다른 누구가 아닌, 우리 아이를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손발의 고단함도 봐주시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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