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너무나, 식상하고 아득하게마저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전 세계 사람들을 겁박하던 그 작디작은 코로나 바이러스때문에 모든 가족을 집에 꽁꽁 동여매던 때가 있었다.
그 때에, 입학식도 하지 못한 8살 아이와 어린이집에 이름만 올려놓고 제대로 등원을 하지 못하던 4살 아이 둘을 가정보육을 하던 나는 오랜 기간 제대로 된 일상 생활을 하지 못해 마음 여기 저기에 우울, 분노, 화라는 우물들이 움푹 움푹 파이고 있었다. 물론, 나보다 훨씬 열악하고 근본적인 삶의 역경에 맞닥뜨리는 누군가에게 내 작은 우물들은 작은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 내 내면에 자라고 있던 그 어두운 그늘은 어느새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에.. 문제는 작지만 크기도 했다.
그런 그늘을 딛고 다시 웃을 수 있게 된 것은, 서서히 회복된 일상과 다름아닌 책이었다. 아니, 사실 책친구들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책을 펼치는 순간 나는 내가 아닐 수 있었다. 그 안에서 나의 그늘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책 친구들과 그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나는 내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그늘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다시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생각한다.
그렇게 책으로 소통해온 시간들이.. 어느새 3년째. 읽은 책만큼 우리의 시간과 감정들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리고, 그 책친구들과 1박 2일 여행을 감행했다. 매달, 아니 더 자주 온라인으로 만나면서도 한번도 만나지는 못했던 제주도 책친구와 울산 책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 그러니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1박이라는 시간은 너무도 짧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매순간 최선을 다해 이야기 나누고 울고 웃었다.
책방에서 2시간이나 책이야기를 나누고도, 끊임없이 작가, 책친구, 책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못했던 내밀한 이야기까지 나눈 시간들.
우리가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그려나갈 시간들이 다른 인연에 비해 조금은 더 평화로울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에겐 책과 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 사이엔 적당한 거리가 있기에, 서로의 생활을 지켜주면서 때로는 애틋하고 때로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동네에서 매일 같이 만나 편안한 모습으로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지금과 같은 관계는 지켜지지 힘들지 않았을까. 친숙함과 편안함이란 때로 무례를 범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책. 책이 있기에 우리는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삶을 이리 저리 곱씹을 수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책방에서 발견한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와 그에 대응되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책을 두고 인간은 선한가 책한가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관계는 흔하지 않다. 우리가 나누었던 문학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이고 쌓여,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사실은 삶에 대한 이야기...), 더 개인적인 이야기도 꺼낼 수 있게 되었을 것이고 말이다.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 자체로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것은 너무나 큰 행복이고 감사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 엄마, 누구 아내, 어떤 직위를 입고 있는 내가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상대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그저 양육이나 교육, 시댁, 연예인, 재테크 이야기 혹은 일 이야기에 함몰되기 일쑤이지 않은가. 그런 대화에는 '나'가 없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욕망,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 누군가에게 감정을 쏟아내 버리고 싶은 마음 등이 대부분이기에, 그런 대화 이후에는 헛헛함과 허무함만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책친구들과의 대화는 그렇지 않다. 나도 몰랐던 내 내면, 알고는 있었지만 어떻게 할바를 몰랐던 내 모습과 욕망 등을 자연스럽게 꺼내보이고 서로 그것을 다독이게 된다. 모두가, 책을 읽고 사유해본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앞으로도, 또 그런 시간이 우리를 찾아오리라.
그런 행운을 또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우리의 첫번째 여행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