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영공x리라영 Nov 06. 2023

나 때문에 그 사람이 잘린 건 아니야

본사가 원장을 자르고 나를 남기려고 한 이유 

 본사가 스파이를 보냈었다. 진짜 그때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명분이 확실하게 있었기 때문에 스파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었다. '원장이 바뀌는 일'이 있고 나서야 모두들 "아, 그래서 4일밖에 근무를 안 했구나." "아, 그래서 사람들이 저 사람을 본사하고 친한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거구나."라고 깨달았다. 스파이를 보냈다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직접 물어보고 대답을 들었다. 4평 남짓한 교실에서 학생들이 쓰는 책상을 돌려서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본사에서 온 팀장이 '학생들이 날 좋아한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어떻게 아냐고 물었더니, OOO이 말했다고 했다. 한 달 반정도 전에 잠깐 이 학원에서 근무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다른 지점에서 근무했던 사람인데, 그 지점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이 학원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원장은 본사에서 우리 학원을 닫는 게 아니라 키우기로 결정했고, 운영팀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보낸 거라고 했다. '웬일로 본사가 우리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일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심한 적은 없었다. 학원 분위기상 강사팀과 운영팀 교류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이름을 들을 때만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여기에 출근했다고 인사하고, 갑자기 떠난다고 인사할 때만 말을 나눴을 뿐이었다. 


 학기 첫날에 그 사람의 평판에 대해 들었다. 그날, 원래 운영팀에서 일하는 분이 퇴근하려고 인사차 교무실에 들렀다가 맥주를 사 와서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를 해줬다. 그중에 그 사람에 대해 들은 얘기가 원래 있던 곳에서 팀장으로 급속 승진했다는 거였다. 일한 지 2년밖에 안 됐는데 말이다. 나이를 알고 나니, 이번이 첫 직장일 수도 있고 아니면 두 번째 직장일 텐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원래학원 운영 팀에서 근무하는 분은 이 분과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본인이 힘들다고 토로하셨지만, 얘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뭐, 일단 문제 해결 능력은 뛰어나네.'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분은 겉으로는 '운영팀 지원'이었지만, 실제로는 이 학원에서 원장이 본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왜 이 학원에서 강사들은 오래 근무하지 못하고 일찍 그만두는지, 분위기는 어떠한지 파악하기 위한 스파이었고, 본인의 진짜 임무를 4일 만에 끝낸 뒤 다른 지점으로 발령 난 것이었다. 


 원장이 해고될 때 난 옆 방에서 원장으로 승진 제의를 받기는 했지만, 나 때문에 해고된 것은 아니다.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째, 본사가 정한 시간표를 임의로 변경해서 운영했다. 이게 제일 큰 이유다. 두 번째는 본사가 정한 '클래스 운영'을 지키지 않아서이다. 필수로 수업이 운영되어야 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 수업을 오픈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맡겠다고 원장한테 말했었는데도 말이다. 정말 이해 안 되는 코미디다. 세 번째는 내가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해서다. 그러니까 '나 때문에' 원장이 해고된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영향은 있었다. 표면적으로 원장에게는 '강사가 자주 그만두는 것 때문에 원장으로 계속 일하기는 힘들다'라고 말한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하지. 내가 여기 입사하기 전에 이 학원에서 1년 반동안 채용한 모든 사람들이 한 달도 안돼서 그만두었는데 그 '마의 한 달'을 처음 깬 게 나였다. 그 힘든 기간을 다 버텼는데, 그래도 못 있겠어서 나가는 정도면 얼마나 엉망진창인 곳인가. 심지어 내가 일하기 시작한 이후에 일을 시작한 다른 사람들도 다 그만두었다.  


 대표님이 원장을 그날 해고 한 것은 맞지만, 사실 진짜로 해고되지는 않았다. 해고 통보 한 것은 사실이지만, 며칠 뒤에 본사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그 원장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 본사로 전근했다. 이미 정말 무능한데 나아지려고 노력조차도 안 하는 사람인데도 이래 저래 살아가는 거 같다. 대단하다. 하지만 난 이렇게 못 살 것 같아서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왔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살면서 내 인생에서 절대 후회하지 않을, 아니 사실 내가 '하루라도 더 빨리 때려치울 걸'이라고 후회하는 일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난 하자가 있는 부품이 아니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