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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공x리라영 Nov 13. 2023

 "너 티발 씨야?"

MBTI 최대 수혜자는 E 다.  

 "너 티발 씨야?"가 MBTI와 함께 유행하는 문장이다. '티'와 '씨'가 바뀌어야 맞는 문장인데 그냥 읽으면 너무 심한 말로 들리니까 두 글자를 바꿔놓은 거 같다. 창문 밖에 나뭇잎이 단풍 들어가는 걸 보고, "나무가 익어 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걸 듣고, "나무가 익는 게 아니라 단풍이 물드는 거 아닌가?"라고 말을 해도 "OO 씨, 혹시 T세요?"라는 말을 듣는 세상이다.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를 듣고 막 웃으면서도 동시에 20대 초반 아가들이 무서워서 말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MBTI 최대 수혜자는 나다. 정말이다. 그리고 MBTI는 정말 혜자다. 무려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눠서 설명해주고 있지 않는가. 성격이 어떻게 16가지밖에 되지 않냐면서 사람마다 다 성격이 다르니, MBTI를 믿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여태까지는 성격을 설명하고 묘사하는 말들은 형편없이 적었다. 고작 '집순이', '집돌이', '가스라이팅하다', 'ADHD 같다', '관종이다', '핵인싸', '아싸', '너드남' 등의 말 뿐이었다. 심지어 이것도 16개가 안되네. 혹시 이런 식으로 성격을 묘사하는 말들을 알면 댓글 부탁합니다. 

너드남의 정석

 '관종'이라고 손가락질받을까 봐 걱정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성격이 좋다고 한다. 다 MBTI 덕분이다. 물론 내 앞에서는 나보고 '인싸'같다고 했지만, 인터넷에서 글을 읽으면서 파악한 '관종'이라는 것을 봤을 때에는 , 나도 꽤 해당되는 사항이 있었다. 많았다. '관종'은 '관심종자'의 줄임말로 계속 타인의 관심을 받기 원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어로는 'attention seeker'이라고 하고, 심한 말로는 'attention hoe'라고 한다. 'hoe'이 단어는 비속어다. 성매매 하는 여성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사실 다들 알고 있는 단어고 은근히 드라마나 영화에도 꽤 나오는 말이니, 알고 있으면 앞으로 알아듣기 쉬울 것이다. 

 '집돌이', '집순이'라는 단어가 하도 오랫동안 유행해서 나도 내가 '집순이'인 줄 알았다. 집 밖으로 외출하면 당연히 에너지 소모가 있고, 집에서 쉬면 에너지 소모가 덜한 걸 얘기하는 줄 알았다. 직장에서 주 5일 9시간에서 11시간까지 일한 뒤에, 귀가해서 새벽 2시쯤에 자고 9시쯤에 일어나는 삶을 살면 당연히 '집순이'가 되긴 한다. 또, '집순이'들은 집 밖에 나갈 때 동선을 잘 짜서 한 번에 모든 걸 해결한다고 들었다. 얼마나 능률적인가. 정말 나도 '집순이'라고 생각했다. '인싸 같다'라는 말을 들어봤자 청소년기의 '일진' 느낌도 나고, 관종은 더 나쁜 말인 거 같고, 너도나도 '집순이', '집돌이'라고 하는 세상이었다. MBTI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불 밖은 위험해

 5시간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알레르기가 올라왔다. 팔 안쪽 접히는 부위부터 긁기 시작한다.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빨갛게 부어있었고, 콜린성 두드러기에, 기묘증까지 다양하게 반응했다. 콜린성 두드러기는 온도에 반응하는 거다. 에어컨 바람 때문에 가렵기도 하고, 나 같은 경우는 샤워할 때 물 온도 때문에 몸이 빨갛게 됐었다. 기묘증은 피부에 모서리 같은 게 스치기만 해도 꽤 부어오른다. 이쑤시개로 피부를 찍어서 이름 쓰는 게 가능하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직업 특성상 일이 늦게 시작하고 늦게 끝나서 맥주 한 잔 할 사람이 없었다. 동네 친구를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밤늦게 만나서 맥주 한 잔 하고 각자 집에 귀가하기 쉬우니까, 일단 어떻게든 약속을 잡아서 퇴근 후에 맥주 한 잔이나 소주 한 잔을 했다. 5개월 만에 알레르기가 멈췄다. 약을 먹지 않아도 간지럽지 않고, 자고 일어났을 때에는 눈두덩이가 빨갛게 부어오르지도 않았다. 샤워 후에 목이 빨갛게 변하지도 않았다. 사람을 만나니까 스트레스가 풀렸다. 

E와 I는 정말 다르다

 'E'는 사람들과 있을 때 에너지를 얻고, 'I'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한다고 한다. 이 둘은 정말 다르다. MBTI 얘기 나오면 난 'ENFP'냐고 의심을 받는데, 거의 맞다. 이 중에 'E'가 지금은 75%이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 'I'를 이해하기 힘들다. 'E'는 외향인, 'I'는 내향인을 뜻하니까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이라 이해하기 쉽다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는 진짜 서로 이해하기 힘든 거 같다. E와 I는 즉 외향인과 내향인은 다르다. 여태까지 배운 바로는 내향인이 처음부터 낯가리고 조용할 수도 있지만, 사회생활 능력이 높은 분들은 목소리도 외향인 같고, 낯도 안 가리고 분위기 메이커인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본인들은 내향인이 맞다고 말하며 외향형 사람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는 걸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아마 그들은 사회생활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고, 집에 가서 충전하는 게 아닐까. 혹시 이 생각이 조금 틀리거나 공감하면 댓글 부탁한다. 아버지께서 완전 순도 높은 100% 내향인이지만 정말 '사회력'과 '술자리 프로 참석러' 능력도 갖고 계시기 때문에 '내향인' 파악이 꽤나 어렵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버지께서 술을 좋아하는 이유가 사람들하고 있을 때 에너지가 고갈돼서 힘드니까 그냥 술에 취해있는 게 더 나아서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술 자체로 맛있고 재밌고 신나고 흥이 오르고 에너지를 받는 나로는 이 이상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 내향인들도 나를 이해하기 어렵겠지. 

그냥 사람을 '리트리버'처럼 좋아한다니까.

 "나 혼자 있으니까 기 빨려." 실제로 한 말이다. 'I'들이 허구한 날 '아, 사람 많은데 있으니까 기 빨려.'라고 얘기하는 것을 응용해서 만든 새로운 문장이다. 물론 정말로 저렇게 느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주말이라서 모임을 3개 연달아 열었는데 중간에 하나가 취소되었다. 카페에서 나 혼자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얼마나 졸리고 피곤하던지 그다음 모임을 할 수 있는지 걱정되었다. 기우였다. 아니, 틀린 생각이었다. 모임에 참석하는 분이 나타나자마자 내 눈이 반짝거리고 뇌에 충분한 산소가 공급되며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또, 재밌게 모임을 했다. 'I'들은 하루에 모임을 어떻게 3개를 하냐면서 혀를 내두르지만,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에너지를 받고 집에 혼자 있으면 우울하고 외롭고 불안해지는 나는, 이 정도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집에 가서 수화기라도 붙잡고 있어야 한다. 관종이 아니다. 사람에 미친 것도 아니고. 사람 자체를 좋아하고, 진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에너지를 받는다.  내향인들은 외향인들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에너지를 받는 것에 대해 진짜 이해 못 하는 부분이고 따라 할 수도 없는 거 같다. 우리나라 역사든 세계 역사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파고들면 원래 사람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내면서 살아왔다. 적어도 이 역사가 최근 현대에서 '혼자 살거나 거의 피붙이로만 이뤄진 구성원들과 함께 한 집에 사는 역사'보다 길다.  열심히 항변하는 내 모습을 보아라. 그동안 얼마나 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서 외향인으로 살아왔는가. 특히 우리나라에서. 

16 personalities  사이트 대문

  MBTI 유행의 최대 수혜자는 'E'에 해당하는 외향인들이다. 그동안 '집순이', '집돌이'가 아니라고 '인싸' 또는 '관종' 취급을 받으면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이제 그따위 편견에서 우리는 자유다. 우리는 그냥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에너지를 받는 외향인'일뿐이다. 사람들을 그냥 좋아한다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다. 받아들이자. 내향인들이 가득한 이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멋지게 '외향인'으로 자라왔다. 드디어 '인싸' 또는 '관종'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 '외향적인'성격 자체로 인정받는 날이 도래한 것이다. 사회생활 능력을 키우고 싶은 내향인들이 지향하는 성격을 가진 '외향인 인간' 그 자체다. 편견에서 벗어나 드디어, 드디어 '외향적인' 성격 그 자체로 인정받는 날이 왔다. 마음껏 누리자. 나는 관종이 아니다. 나는 '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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