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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하게 Jan 12. 2021

공부하는 친구에게

오랜만에 거는 전화는 통화음부터 어색했습니다. 

덜컥 넘어가는 수신음 뒤 낯설게 '여보세요'로 시작되던 목소리. 

자주 연락 못해 미안합니다.     


공부는 잘되는지, 그러면서 밥은 어째 잘 챙기는지

이것저것 심심한 물음을 띄우고

오늘 못한 술자리를 애석해했습니다.     


우리 벌써 못 본 지가 해를 넘겼네요. 멀찍한 목소리로는 그간 시간을 더듬기가 버겁습니다.

금방 모자라진 말주변을 불편한 사이음으로 채울 적, 넘어오는 무거운 목소리

질질 끌리는 통화가 행여 괴로웠을까

나는 빨리 적절한 위로나 변변찮은 응원을 궁리해야 했습니다.      


          


우리 꽃 같던 날을 기억합니다. 그 시절은 여름만 같았습니다. 

넘치는 혈기는 차가운 밤에도 식지 못해 많은 꿈을 낳았습니다.

서로를 비교하며 책상머리서 도면 치고 술 마시고     


그렇게나 뜨겁던 청춘은 그 때 모두 두고 온 걸까

어느새 계절은 가을을 훌쩍 넘어 시들한 낙엽을 떨구는 것 같습니다

그 바람에 채 영글지 못한 쭉정이만 품어버린 듯 합니다.

그래서 괜한 겉빛에나 집착하는 건 아닌지요.


거의 다 왔지 싶던 그 시절 철없던 우리.

그리고 당신은 고시생이 나는 월급쟁이가 되었습니다.

몰래 흘리는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사회생활은 자존심 버리고 둥글게 둥글게

네 알겠습니다 하고 둥실둥실 살아보니

세상 뾰족한 모서리에 자꾸 부딪혀 여기저기 멍이 들었습니다.


팍팍하기는 거기나 여기나 안쓰럽기가 매한가지일 테죠.

저는 여태 놓지 못한 욕심에 늘 빚에 쪼들려 살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     


아직 욕심을 체념 키엔 아까운 나이라지만 잠깐씩은 접어봅시다.

우리는 아직 한 배서 같은 한숨을 짓고 있습니다.     

담에는 아무 생각일랑 말고 오십시오. 저도 아무것 묻지 않겠습니다.

묵묵히 따라놓은 서글픈 잔을 금세 금세 비웁시다.

새벽 올 적까지 꿈꾸듯 취하다 보면

그 시절 두고 온 청춘의 말미라도 함께 엿볼 수 있을지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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