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아버지께서 가보로 남기시겠다는 카메라가 하나 있다. 니콘의 필름 카메라로 모델명은 F801s, 대략 91년부터 양산이 시작됐다. 듣기로는 당시 상당한 인기 모델로 가격이 제법 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구매까지는 큰 각오가 필요했던 제품이었다. 우리 집의 경우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들놈이 명분이 되었던 듯싶다. 내가 기어 다닐 때부터 걸음을 뗄 때까지, 그 이후에는 산과 바다, 계곡으로. 많지 않은 여행의 기회들 중에 가족은 카메라로 부지런히 찍고 또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두 권의 가족 앨범으로 남았다.
하지만 내가 자라면서 머리가 커져서인지. 아니면 가족끼리 서로 데면데면해져서인지. 좌우간 우리 가족의 삶은 처음보다는 많이 건조해졌다. 삶의 풍파랄까 먹고사는 문제랄까 이런저런 이유를 댈 수는 있겠지만 정확한 건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흘러갔다. 가족끼리 함께하는 일은 번거롭고 쑥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같은 곳을 보고 사진 찍는 일은 아주 드물어졌고, 자연스럽게 카메라는 장롱 깊은 곳에 묻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난 후 내가 카메라의 존재를 다시 기억한 건 대학교 졸업반 무렵이었다. 내 친구 중 하나가 카메라에 도통한 놈이었는데 돈만 생기면 필름 카메라를 모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필름 카메라는 더 이상 생산이 안 된다. 그러니 이게 재테크가 된다. 결국 관리만 잘하면 무조건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 집 장롱 속 카메라가 생각났다. 그 길로 집에 가자마자 장롱을 뒤져 카메라를 찾았다.
카메라 가방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그리고 안에는 모두 낡은 것뿐이었다. 카메라 닦이, UV렌즈, 그 옛날 설명서 등등 주변 액세서리들이 어지러웠다. 곰팡이가 크게 핀 가죽케이스에서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꺼냈다. 배터리 홀더 부분이 살짝 녹아있었다. 이외에는 아직 훌륭했다. 나는 천천히 먼지를 털어가며 깨끗하게 정돈했다. 마치 오래된 토굴 속 원시 유물을 발견한 것처럼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대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 집 가보의 시세를 확인하고, 나는 다시 카메라를 조용히 장롱 속에 묻었다. 너무 양산이 많았던 모델이었나. 우리 집 가보의 시세는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전.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옛날 아날로그 감성의 무엇인가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필름 카메라가 등장했다. 인스타에는 필름 사진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연예인들이 들고 다니는 모델들은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기도 했다. 나도 덩달아 코니카 빅미니, 니콘 af600, 라이카 미니 줌 등 가벼운 필름 카메라들을 샀다 팔았다 하며 필름을 현상하러 카메라 집을 들락거렸다. 그러나 잠깐 불었던 유행만큼 열정은 금방 바닥이 났고, 가지고 있던 카메라는 금방 처분해 버렸다.
그때 나는 딱 한 번 우리 집 가보를 들고 나간 적이 있다. 다 늙은 카메라에 무슨 기대였던 건지 싶지만, 한참 현상한 사진 보는 재미가 쏠쏠하던 때라, 무리라는 생각에도 카메라를 몇 대씩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의욕과는 다르게 보통은 스마트폰으로 찍고 필름 카메라는 적게 운용하게 됐다. 거기다 크기가 큰 우리 집 가보의 경우는 아주 차에 놓고 다니고 말았다. 그래서 몇 장 찍지도 않은 롤이 여태 그대로다. 그 이후로 내 책상에 모셔두고 있는데 보고 있으면 언제 남은 사진을 찍어볼지 난감하기만 하다.
얼마 전 내가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첫 날 저녁에는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가보 얘기를 꺼냈다. 그 카메라 내가 가져도 되냐고. 아버지는 안 된다고 하셨다. 왜 안 되냐니 비싼 거라고. 나는 즉시 우리 집 가보의 시세를 알려드렸다. 별말씀을 안 하셨다. 그러다가 두고 봐야 안다고 하셨다. 두고 봐야 안다라... 내가 뭐 지금 팔기야 하겠냐며 맥주잔을 들이켰다. 놔두면 오르겠지. 그래 놔둬야 더 오르겠죠. 그렇게 거들고 나머지를 마셨다.
가보라며 모시고 있지만, 쓰자니 번거롭고, 팔자니 푼돈이고, 그렇다고 어디 보기 좋게 두자니 실상 볼품도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처치 곤란으로 나이를 먹은 게 좀 있으면 30년이다. 실상 제 용도로 쓰인 건 2~3년 반짝이었지, 나머지 세월은 가세에 큰 밑천이 되리라는 부자의 헛된 기대로 버텼던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키듯 매력 없는 성질로 나머지 목숨을 부지할 예정이다.
요즘 아버지 어머니는 정원은 가꾸시는데 열성이시다. 나는 간혹 사람을 만나다 조용한 곳에 여행을 다닌다. 함께 보다는 각자로 변모하며 가족의 유대는 느슨하고 완숙해졌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전성기를 지나쳤다.
우리 집 가보에 여태 매어둔 필름은 언제쯤 써볼 수 있을까. 다시 또 버티다 보면 부지런했던 가족의 전성기가 다시 오기도 할지 궁금하다. 만약 그런 시기가 있다면 나머지 필름을 써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도 왕년의 노병은 제 몫을 다할 수 있을까. 장롱 속 유령 같던 지난날의 향수는 새로운 세기에도 똑같이 작동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