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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터 Mar 20. 2024

15, 어린이집을 떠나며

 

                                  (저 혼자 하고 나선 여행준비. 가방 안에는 장난감 기타)


사랑이가 다니던 직장 어린이집은 매우 훌륭하다.

시설도 좋지만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건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해주는 좋은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이다. 직장 어린이집은 7세까지 다닐 수 있어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다닐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변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들 내외는 별일 없다면 아마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별일이 생기고 말았다!

며느리가 직장을 옮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더없이 만족스러운 직장 어린이집과 별개로 직장에서 며느리의 업무는 지나치게 많았다.  야근이 잦았고 심지어 공휴일에도 급히 나가야 할 일이 생기기도 했다. 어쩌면 성실하고 꾀를 피우지 못하는 며느리의 성격 탓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남들이 기피하는 일까지 떠맡게 될 때도 있는 걸 보면. 

체력에 한계가 오기 시작한 며느리는 이직을 생각했고 결국  월급은 적어도 출퇴근 시간이 정확한 어느 중소기업으로 옮기기로 했다.

따라서 사랑이도 직장 어린이집을 더 이상 다닐 수없게 되었다. 한국나이로는 5세, 만으로는 5세가 되지 않았지만 새삼 어린이집으로 갈 수는 없으니 유치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후반기 학기도 이미 시작한 지 오래인 11월이었다.   

시기가 애매한 탓인지  집에서 다닐 수 있는 유치원은 빈자리가 없었다. 한두 명 자리가 있는 곳을 겨우 알아내 찾아가 보면 도저히 보내고 싶지 않은 곳이거나 너무 멀었다. 아들 직장에도 어린이집이 있지만 너무 먼 곳이어서 애초 고려 대상도 될 수없었다.

 난감했다.

고민을 하던 중 그때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영어 유치원에 생각이 미쳤다.  집에서 다닐 수 있을만한 거리의 영어유치원을 알아보았는데 한 유치원에서 자리 하나가 비어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받아준다는 것만도 감지덕지였다.

그런데 계획에 없던 영어 유치원에 갑자기 보내자니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영어 공부를 해본 적 없는 사랑이가(알파벳은 안다) 학년 말이 가까운 지금 들어가서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두 번째는 당연히 비싼 수업료의 부담이었다.


하지만 원래 초긍정 부부들인 아들 내외가 아니던가.


의논은 길었지만 결론은 빨랐다. 

"3 개월 동안 비싼 영어학원을 보낸다고 생각하지요. 그런 후 3월 신학기에 정규 유치원을 보내면 돼요. "

그럼 수업을 따라갈 수없어 스트레스받을 사랑이는?

그것도 아들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힘들어하면 나오면 되죠. 억지로 시킬 생각 없어요. 근데 사랑이는 원래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성격이라 잘 지낼 거예요.  그리고 5세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라고 해봤자 몇 달 먼저 배웠다고 뭐 그리 대단하겠어요. "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지만 5년도 안 되는 삶을 산 사랑에게 생각지도 않는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영어유치원은 6세부터는 시험을 쳐서 들어간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이니 시험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거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린이집에서는 감사하게도 사랑이가 그만둔다니 선생님들이 매우 섭섭해해 주었다. 

원장선생님은 사랑이 어린이집 윤활유였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들을 때 사랑이를 먼저 시키면 아이들이 사랑이를 따라 움직여 주었고, 아이들끼리 다투면 사랑이가 나서서 중재해 주곤 했다고 말해주어 너무 감사했다.

 사랑이와 하직 인사를 하다가 섭섭하다며 눈물 흘려주는 선생님도 있었다. 이토록 사랑을 받았구나... 가슴이 뭉클했다.

 챙겨준 사랑이의 물품 중 그림 한 장이 눈에 뜨였다.  어린이집 활동 중 그린 꽃이라고 했다. 


꽃(51개월 색사인펜인 듯, 도화지, 어린이집에서 그린 것)



사랑이의 몸과 마음을 사랑으로 키워준 훌륭한 선생님들과 직장 어린이집, 덕분에 밝고 건강한 아이로 자란 거 같아 너무나 감사하고 고맙다.

그리고 사랑이와 결혼할 거라고 했다던 남자애와, 사랑이 손을 물었던 남자애와, 사랑이의 단짝 친구들.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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