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은 많이 놀아야 한다는 주의이다.
유아기는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을 달리기 위한 준비 단계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초체력을 다져 두어야 한다. 여기서 기초체력이란 신체의 건강만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 건강 모두를 포함한 것이다. 좋은 교육, 영양 풍부한 음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림 통해 사회생활을 하나씩 배우는 것이며 그것은 책이나 훈육이 아니라 놀이에서 자연스레 체득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 단순한 진리도 내가 이만큼 나이가 들었기에 깨달은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가 어린이집 차에서 내리면 곧장 놀이터로 데리고 간다. 놀이터에 나와 노는 아이들은 연령 층이 다양하다. 아이는 그곳에서 언니 오빠, 그리고 동생들과 노는 법, 양보와 배려를 배운다. 아이들 뿐만 아니다.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보호자가 따라와 있으므로 놀이터에는 어른들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 보너스도 얻을 수 있다.
사랑이를 놀이터에 데리고 간 후에는 웬만하면 아이들 놀이에 관여하지 않고 지켜만 본다.
흙을 만져도, 땅에 굴러도 둔다. 옷을 더럽힌다고 험하게 노는 아이를 제지하는 젊은 엄마들에게 나는 더러우면 목욕시키고 옷은 빨면 된다고 말해 준다. 내가 사랑이에게 당부하는 것은 그 흙 묻은 손으로 눈이나 입에 손대지 못하게 하는 거뿐이다.
놀이가 끝나면 준비한 물휴지로 닦아주던가 수도가로 가서 손을 씻어준다.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 꾀죄죄해진 건 아이가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는 훈장 같은 거니까.
사랑이가 벌레를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아이도 있고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감히 제 손비닥에 올려 보려는 아이는 없었다. 어느 젊은 엄마가 보고 기겁을 했다.
"얘, 얼른 버려. 더러워!!"
그러자 몇 명 아이들이 호들갑스레 놀라며 몸을 피했다.
아직 선과 악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이다. 부모의 눈은 그들의 눈이며 제 부모들이 하는 말과 행동, 몸짓을 보며 아이들의 세상을 배워나가기 마련이었다. 엄마가 더러운 것이라 했기 때문에 아이에게 그것이 더러운 것이 되었고 만져서는 안 되는 거라는 인식을 하게 될 것이다.
벌레를 가지고 논다고 사랑이를 놀리는 아이도 있었다. 놀림을 받으면 사랑이도 속상해한다. 사랑이도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 건지 아닌지 아직 모른다. 그래서 금방 풀이 죽는다.
내가 개입하는 건 이때이다.
"벌레는 더러운 게 아니야. 개나 고양이와 다를 뿐이지 똑같은 생명이야. 이 벌레는 다리가 몇 개인지, 어떻게 다른지 잘 살펴보렴. 그리고 제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 줘."
그러면 사랑이는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한 게 아니라는 알게 되어 다시 기가 살아나고 다른 아이들도 벌레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벌레에 대해 하나씩 아는 척 의견들을 나눈다. 사랑이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잘 살펴본 후 벌레를 내려놓자 벌레가 달아나고 아이들은 재미있어한다.
벌레 하나로 사랑이는 아이들의 중심이 되었다. 만일 내가 '그거 더러운 거니 빨리 버려했다'면 사랑이는 자존심이 상했을 거고 기도 죽었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은연중에 사랑이가 어른들이 싫어하는 이상한 짓을 하는 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지렁이도 만지고 귀엽다고 하는 아이이니 사실 엄마들이 기절할만하지... 지렁이는 좋고 깨끗한 벌레라고 말해준 내 잘못이겠지...
그렇다고 무조건 다 허용할 수는 없다. 나는 사랑이가 잡아서는 안 되는 벌레들이 있다는 것도 가르쳐준다. 이를테면 풀쐐기 같은 거... 아이들은 그렇게 세상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이 지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동화에 보면 담장을 칠하는 톰 소여의 이야기가 나온다. 톰의 아버지는 톰에게 담장에 페인트질을 시킨다. 아이에게 그런 중노동을 시키다니. 요즘 같았으면 아동학대로 고발당할 일이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톰으로서는 눈앞이 까마득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놀고 싶어 죽을 지경이지만 일을 끝내지 않고는 놀 수도 없으니까. 그때 톰은 꾀를 낸다. 톰을 놀리는 친구들 보는 데서 톰은 페인트 칠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놀이처럼 행동을 한다. 처음에는 놀리던 친구들이지만 톰이 너무 재미있어하니까 호기심을 보이고 자기들도 한번 해보고 싶어 한다.
속으로는 당장 페인트 붓을 맡기고 싶지만 톰은 기회를 거저 주지도 않는다. 무언가를 받고서 생색을 잔뜩 내며 페인트 칠을 하게 해 준다. 톰이 그늘에서 룰루랄라 놀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경쟁적으로 페인트 칠을 하고 순식간에 담장은 페인트 칠이 끝난다. 톰은 그들에게 자신의 일을 떠넘기고 수확물들까지 챙긴 것이다.
톰이 아이들의 생각을 바꾸어 일을 놀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과 놀이, 편견과 호기심, 그야말로 한 끗 차이이다.
팔페트에 담긴 다양한 색깔들처럼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든 놀이터.
사랑이가 접하는 첫 번째 사회인 그곳에서 나는 한 끗 차이로 다양성이 편견으로 바뀌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