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터 Mar 17. 2024

13, 나쁜 놈 라푼젤




                                                  (수채물감, 53개월)



 차를 타고 가는데 사랑이가 노래를 하고 있었다. 가락이 동요 같긴 한데 아무리 들어봐도 처음 듣는 노래였다.  저런 동요도 있나? 곡은 처음 듣지만 띄엄띄엄 들리는 가사에는 토끼가 등장하고 사슴 , 곰도 등장하고 있었다. 동요치곤 길고 우화같은 느낌의 내용이 재미있기도 한데 전체 맥락은 연결이 안 되서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뭔지 알아보려고 귀 기울여 둘었지만 때로는 크게 때로는 입속말로 웅얼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며느리에게 소곤소곤 물었다.

"어린이집에서 배운거야? 첨 듣는 노래네."

신나게 부르는 사랑이의 노래를 방해하지 않으려 며느리도 소리 낮춰 대답했다.

"지가 작사 작곡한 노래예요. 지 맘대로 작사 작곡해서 종종 저렇게 노래하던데요." 

그렇구나!

 아이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때묻은 내 귀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사랑이는 그림에도 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다행히 지나가면 사라지는 노래소리와 달리 그림은 남아있어서 무슨 이야기인지 물어볼 수가 있었다. 자신의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랑이의 상상력은 언제나 내 예상을 벗어나곤 했다.  

사랑이는 그림을 그릴때 색을 참 다양하게 사용하는데 이 그림은 유난히 색깔이 화사했다.  그림을 설명해달라고 하자 아이는  그림의  윗부분에 있는 영어 대문자 I 모양의 검회색 도형부터 가리켰다. 

"이거 라푼젤이에요."

 라푼젤이라니? 전혀 사람 모양이 아닌데? 게다가 세 개나.

 "라푼젤이 뭔지 아니?"

"알아요. 어린이집에서 친구들하고 라푼젤 놀이를 했어요. 지금 사냥꾼이 라푼젤을 잡으러 가는 거예요."

"사냥꾼이 라푼젤을 왜 잡으러 가는 거야?"

라푼젤은 나쁜 놈이니까요."
응? 이건 내가 아는 스토리하고 다른데? 


"근데 세 개나 있네?"

세 개라고 해야 하나 세 명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잠시 헷갈렸다. 사랑이가 아는 라푼젤은 사람일까?  내가 알지못한 새로운 다른 물체일까?

"나쁜 놈이 많거든요. 그래서 요정 하고 천사도 도와주러 왔어요."

분홍색 나비 모양은 천사이고 사람 형태 비슷한 노란색은 요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림 속에는 쉼표 모양을 한 수많은 사냥꾼들이 라푼젤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우린 사랑이에게 라푼젤에 대한 동화를 들려준 적이 없다. 영화도 만화도 본 적 없는 사랑이는 나쁜 마녀에게 갇힌 라푼젤을 왕자가 구한다는 이야기를 아직 모른다. 그 이야기를 잘못 이해한 어린이집 친구 누군가와 함께 나쁜 놈(?) 라푼젤을 쳐부수는 놀이를 했던 건가? 

아무려면 어때.

 요정과 천사와 사냥꾼이 나쁜 놈(?) 라푼젤을 물리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면 되지. 어차피 라푼젤, 나쁜 놈. 발음도 비슷한데.

아이들이 만들어낸 새 버전의 라푼젤 이야기도 나름대로 재미있지 않은가.



근데 아이야. 천사와 요정이 정말 있다는 건 아니?

바로 내 옆에서 웃고 있는 천사이며 요정인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너는 모르지?  

이전 12화 12, 공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