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난 영화 속 보통 사람. 결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마도 그거.
미국에서 (2020년 12월 10일) 현재까지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은 17,700,000명, 코로나로 죽은 사람들의 숫자는 317,000명이다. 현재 미국 인구가 331,000,000명이고 한국 인구가 51,640,000명이다.(Sources include: World Bank, StatCa) 미국의 기록을 인구수로 환산해 한국에 적용하면, 현재까지 한국에서 49,455명이 코로나로 죽은 것이 된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에서 하루에 코로나로 죽은 사람의 숫자가 최고 3,611명을 찍었다. 미국 현대사에서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911 테러에서 죽은 사람이 2,605명이었는데, 매일 그때와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코로나로 죽어가고 있다. 매일매일.
나는 캘리포니아 Bay area에 거주하고 있는데, 코로나 초기부터 현재까지 미국 50주 중에서도 캘리포니아는 늘 순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인구가 가장 많은 주이기도 하고, 비교적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전 세계 누구에게나 어처구니없는 2020년이지만, 그중에서도 코로나 핫 플레이스에 살고 있는 부끄러운 영광으로 이 시기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들을 기록해 두기로 한다. 해뜨기 직전, 가장 어두운 시기가 지금이라 믿고 싶은 마음으로.
Day 1 - 556 new cases in USA a day
2020년 3월 13일. (지금 보니 13일의 금요일이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며 대통령이 긴급히 국가 비상을 선언했다. 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stimulus check 발행 패키지를 발표하고, 유럽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여행자들을 30일간 막기로 했다. 전날 주식은 1987년 이후 40년 만에 최고로 떨어져 팬더믹에 대한 시장의 심리를 반영했다. 하루 종일 학교와 커뮤니티에서 실시간으로 20개쯤의 메일과 전화, 음성 메시지가 쏟아졌다. 4주간의 긴급 방학이 시작되었다. 당장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재들 픽업하는 일정 조차 하루 만에 취소되었다. 일단. 집에 있으라 했다. 동네 마트에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에 며칠 전부터 이어지던 사재기 행열의 줄이 더 길어졌다. 휴지와 물, 항균 물티슈가 동이 났다. 긴 줄을 보니, 저 줄에 합류하면 없던 바이러스도 옮겨올 것 같아서 아쉬운 대로 먼 동네 정육점에 종류별로 예약한 고기들만 픽업해서 냉동고를 가득 채우고 Shelter in place(집 지키라고) 생활을 시작했다.
Day 5 - 2,444 new cases in USA a day
아이의 선생님이 교재 픽업 계획을 세워 보내오셨다. 학교에서 무언가 하긴 할 모양이다. 학교에 아이들을 다 불러 모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당신 집 드라이브웨이에 픽업 스테이션을 마련하셨다. 선생님 집은 전망 좋은 언덕 위에 거대한 저택이었고, 이 비일상이 우리는 약간 신났던 것 같다. 아무도 마스크는 쓰지 않았고, 그나마 서로가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면서 시간차를 두고 차례로 교재를 픽업해 왔다.
Day 10 - 10,432 new cases in USA a day
온라인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상황 이렇게까지 길어질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다. 그저 수업 일수는 채워야 하니까, 학교로서는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초등 2학년 아이들의 미래 수업 민낯은 귀여운 아수라장이었다. 모두가 이야기하느라 화면은 쉴 새 없이 바뀌었고, 선생님은 'Guys'를 연발하시며 2초씩 등장하셨다.
Week 4 - 35,099 new cases in USA aday
이 봄이 지나가면, 조심은 해야겠지만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가지 생각했었다. 4주가 지난 후, 오더는 연장되었다.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강제로 미래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은 새벽 출근 대신, 잠옷 바지를 입은 채로 오피스 방으로 출근을 했다. 온라인 수업도 자리를 잡아 제법 모양을 갖췄다. 이 임시적인 온라인 수업이라는 것이 미국 전체도 아니고, 캘리포니아도 아니고, 카운티(한국으로 치자면'구' 단위 정도)도 아니고, 각 학군별로 온라인 스쿨 룰을 만들고 이를 각 학교의 교장과 담임 선생님의 재량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제법 만족스러운 것이 선생님에게도 학교에도, 무엇보다 아이에게 감사했다. 전국적으로 보면 이 상황에 대한 각 아이들의 편차가 얼마나 클지. 생각하면 아찔했다. 우리 가족은 작년에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주머니 사정과 삶의 질을 이유로 외곽의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직 이웃에 아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집은 넓고, 우리 미래에서 왔나. 집콕에 찰떡같이 참을만한 상황을 만들어 지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었다.
Month 1.5 - 24,651 new cases in USA aday
밤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비일상이 일상으로 자리 잡고 나니, 주변이 보였다. 숫자로만 보이는 전 세계의 죽어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숫자로 보이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어제 하루 죽었다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작년에 폐 수술을 받으신 우리 아빠가 될 수도, 몸이 약한 내 조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슬퍼졌다. 나는 너무도 안전하게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과 하루 종일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하는 딸, 온 가족이 집에 있어서 꼬리가 떨어지도록 좋아하는 강아지와 함께 평화 중이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남에 나라 일, 그리고 내 나라가 그 나라와 가까워서 너무 속상하다 정도의 안일한 생각이었다. 현실을 부정하는 무식한 대통령이라 욕하고 있었지만, 나도 집에 갇히고 보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얼마나 얽히고설켜서 연결되어 있는가. 세상 일은 또 얼마나 나의 일인 것인가. 시시각각 전 세계에서 쏟아내는 암울한 뉴스를 보며 느껴가고 있었다. 나라도 잘하겠다는 마음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부모님과 가족들,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의 안위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아직은 나에게 허락된 작은 사치에 감사하며 숨을 죽였다.
Month 2 - 21,145 new cases in USA a day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어느 날은 집 앞에 산책하는 이웃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면서. 뒷마당에 텐트를 치고 우리끼리 캠핑 기분을 내면서. 새로 산 망원경으로 별을 보면서. 어느 날은 일부러 애매한 시간을 골라 집 근처 트레일을 걸으면서. 한 번은 친구네 가족과 시간을 맞춰 간 체리 픽킹에서 멀찍이서 서로 마스크를 쓴 얼굴만 봤는데, 이건 만난 것도 아니고 안 만난 것도 아니라 의미가 없구나 싶었다. 가끔씩 친구들과 맥주 한 병씩 들고 줌 미팅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쯤 되니 마트에 가도 입장하는 사람 숫자를 제한하고, 줄도 6피트(2미터 정도)를 유지해서 서고, 그마저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상식적인 상황이 되어 있었다. 우리 집은 어른들을 위한 N95 방진 마스크 두세 개를 햇빛에 말려가며 버티고 있었다. 장을 보고 나면 산소 부족으로 머리가 아파왔다. 마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스카프를 세모로 만들어 입을 슬쩍 가린 이들이 많았다. 미국은 의료진들을 위한 마스크 조차도 부족한 상황이었고, 정부는 (폭동을 우려해서?) 일반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규격의 마스크를 감히 권고하지 못했다. 한국의 마스크는 해외 반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집을 나서지 않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이었다. 친구들과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못 모이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주고받았었다.
Month 3 - 25,334 new cases in USA a day
5월에는 많은 미국인들이 (이미 실망한) 이 시대 미국에 대해 더욱 실망하게 했던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을 말한다.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고, 일부는 폭동으로 이어졌다. 사실상 가능한 사람들만이 이어오던 Stay at home 상태에 며칠간 Curfew(야간 통행금지)가 더해졌다. 올 한 해 미국에 조직적으로 코로나가 번지게 했던 세 가지 사건 중에 하나였다. 사람들은 사건에 분노한 탓도 있지만, 지금껏 코로나 때문에 억눌려 온 생활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담아 시위를 폭동으로 변질시켰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올해 아이가 학교에 간 것을 헤아려보니 45일이다. 3월 12일부터 현재까지 9개월 동안 아이는 교실 문 손잡이도 잡아보지 못했다. 한국에 가지도 못 하고, 여행을 가기도 애매하고, 캠프에 다니는 것도 아닌 2달 반의 시간을 대체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우리 모두 처음이었다. 괜찮다가, 안 괜찮다가를 반복하며 시간은 흘러갔다. 아이가 해리포터를 읽기 시작하길래, 나도 20년 만에 한글 해리포터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가끔씩 외출한 친구들에게 사진을 받아보면, 근처 바닷가나 도시들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우리도 이쯤 12주년 결혼을 기념하며 바다를 보러 다녀왔다. 식당에서 음식을 투고해서 나오는데, 멀찍이 앞에 선 노부부도 생일을 맞이해서 바다를 보러 나왔다 했다. 나가보니 사람들이 제법 있었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너른 땅 특유의 여유로움으로 그들과 6피트를 유지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Month 4 - 61,567 new cases in USA a day
캘리포니아의 확진자 그래프는 단 한 번도 꺾이지 않은 채로 우측 상단을 향해 뻗어 갔다. 그 사이 플로리다, 텍사스 일리노이 주 등이 엎치락뒤치락 추격해 왔다. 이미 7월이 되자 미국인 110명 중에 한 명이 코로나에 걸린 상황이 되었다. 우리는 이어지는 남편의 재택근무와 아이의 방학으로 점점 셋만 사는 작은 섬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더 이상 일일 확진자를 확인하며 절망하지 않았다.
7월에는 친한 가족들과 올해 1월에 미리 예약해 둔 일주일 캠핑을 갔다. 다행히 마지막 안전지대로 불리는 야외 캠핑장은 문을 닫지 않았고, 오랜만에 친구들의 가족들과 운명 공동체가 되어 여름의 타호 호수를 즐겼다. 올 한 해 가장 즐거웠던 일주일이 아닐까 싶다. 집을 나서서 여름을 즐기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눈 앞에 있었지만, 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집을 지키며 이 불행의 종식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어떤 강력한 제한도 없이 그저 개인의 행동은 그의 판단에 맡겨진 미국의 현주소였다. 놀 사람들은 놀고, 시위할 사람들은 시위하고, 집에 있을 사람들은 집에 있었다. 지난 3월 주지사의 간곡한 권고와 함께 처음으로 떨어졌던 캘리포니아의 Stay at home 오더는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유머의 대상으로 정리돼서 떠돌았다.
'집에 있어라. 네가 꼭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마트에 가지 말아라. 네가 꼭 사야 할 것이 있는 게 아니라면.
마스크를 착용해라. 네가 불편하지 않고 호흡에 문제가 없다면......'
Month 5 - 54,061 new cases in USA a day
방학이 끝나가고 있었다. 미국은 가을 학기제를 운영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새 학년을 진학한다는 뜻이다. 학교는 개학 한 달 전부터 분주하게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공개 줌 미팅, 설문조사 등을 실시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상황에 따라 살고 있으니, 미국은 역시 '일괄적으로' 제도를 실행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부모가 풀타임, 하이브리드, 온라인 중에 골라야 했다. 한국이 최대한 '일괄적으로' 제도를 실행하고, 필요한 예외를 두게 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나는 엄청난 고민 끝에 새 학기를 온라인으로만 가는 것으로 결정했고, 나와 같은 결정을 한 부모들은 30%가 조금 넘었다. 부모의 결정과 상관없이, 개학을 일주일 앞두고 아무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코로나 상황이 날이 갈수록 나빠졌기 때문이다. 상황이 나빠지는 것은 미국 전체의 일이었지만, 학교에 돌아가고 아니고는 주마다, 카운티마다 각각 다르게 결정되었다. 하나로 뭉치기엔 넓은 나라다.
Month 6 - 33,343 new cases in USA a day
새로운 담임 선생님과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학년을 시작했지만, 이번엔 지난 학기와 많이 달랐다. 방학 동안 학교와 선생님들이 얼마나 노력해서 만들었을까 싶도록 커리큘럼이 단단해져 있었다. 개학을 하기 전 원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크롬북이 주어졌다. 나도 학교로 물리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아이에게 조용한 분위기의 공부방과 책상, 편안한 의자와 컴퓨터 시스템을 셋업 해줬다. 친구들끼리 서로를 알아가는데 2주 정도 쓰고 나니, 시간표도 안정되고 더 이상 아이의 방 앞에서 수업을 엿듣지 않아도 아이를 학교 보낸 것처럼 약간 긴장이 풀어졌다. 아이는 하루에 3시간 정도의 시간만큼 줌 수업을 하고, 사이사이 시간과 방과 후에는 주어진 숙제를 했다. 그렇게 아이는 학교에 꼭 가지 않아도 지식을 습득하는 미래 세상에 한 걸음 다가갔다.
이만하면 감사하다고 생각하려 애쓰며 살고 있었는데, 캘리포니아에는 연례행사인 산불이 시작되었다. 안 그래도 미래 세상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는데, 어느 날은 일어나니 영화 속 디스토피아의 하늘색이 내 머리 위에 있었다. 코로나라 친구네 집에 피신 하기에도, 어딘가 호텔로 피신 가기에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다행히 꽤 가까운 동네까지 내려졌던 산불 대피 명령이 우리 집을 피해 갔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의 공기가 한 톨이라도 들어오지 말라고, 창문을 꼭꼭 닫고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가기를.
Month 8 - 181,593 new cases in USA a day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세 번 바뀌었다. 코로나 기준 두 번째 사건이 지나갔다. 미국 선거.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선거로 기록될 것 같지만, 나는 선거권이 없으니 일단 패스. 결과와 상관없이 아무튼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주들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늘기 시작했다. 꾸준히 늘던 거라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2020년은 버린다. 내년엔 제발...
Month 9 - 207,444 new cases in USA a day
미국 최대의 명절인 추수 감사절이 지나갔다. 코로나 기준 세 번째 사건이다. 모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해도 모일 사람들은 다 모였던 모양이다. 그중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모임이 마지막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도 가능한 먼 곳으로의 여행을 자제해 달라는 권고가 비강제적으로 나오던 그때, 내셔널 파크로 여행을 떠났다. 새벽에 움직이고 5미터 안으로는 사람을 들이지도 않았지만, 호텔을 이용했고 애매한 시간 식당의 유일한 손님이 되기도 했다. 떳떳하지 못한 채로 코로나 확진자 폭발을 맞이했다. 연일 20만 명이 넘는 확진자에 얼마간의 책임을 느끼며.
1년 중에 가장 들뜨고 행복함으로 꽉 찬 마지막 달이다. 12월이 시작되고 얼마지 않아 대부분의 캘리포니아 지역에 강도 높은 Stay-at-home 오더가 새롭게 내려졌지만 말이다. 어차피 계속 안 좋았는데, 그럼에도 이런 오더가 다시 떨어진 이유는 ICU(집중치료시설) bed의 부족 때문이다. 병원들의 ICU bed가 15% 이하로 남은 지역은 모두 이 오더 안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큰 교통사고를 당해도 치료실에 자리가 없어서 입원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12월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2주 후, 어떤 숫자와 마주하게 될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FDA에서 긴급히 승인된 백신을 에센셜 워커부터 차례로 맞고 있는 중이다. 부작용 사례에 대한 기사들도 나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므로 실보다는 득이 많다는 것이 중론이다. 차례가 아주 많이 남았을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오히려 조금 마음이 편한 것이 아이러니이다. 차례로 백신을 맞기 시작하는 이 시점. 이 재난 영화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끝에 제법 다가와 있지 않을까 희망한다.
지난 9개월간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영구히 돌아간 친구나 지인, 건너 건너 사람들이 제법 된다. 주재원으로 근무하며 한국 본사에 임원들을 스카우트하는 업무를 하고 있는 지인은 8월에 이미 올해의 업무목표를 달성했다 했다. 2020년 미국에 너무 실망한 나머지, 코로나 방역 성적에서 그래도 순위권을 잃지 않고 있는 한국이 자랑스러운 나머지, 귀국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는 것이었다. 그동안 미국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다양성, 자유로움, 자존감과 개인주의 등이 얼마나 무책임할 수 있는지 코로나가 여실히 보여준 탓이다. 우리가 한국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남의 시선에 대한 의식, 지나친 공동체 의식, (가끔은 쓸데없는) 높은 지적 욕구 등은 선진국이라 일컫는 나라들이 모두 빗장을 걸어 잠그고 헤매고 있을 때 바이러스 셀 틈도 주지 않고 훌륭한 숫자를 만들어 냈다. 설령 지금 한국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 동의가 되지 않더라고, 위에 제시한 미국의 숫자들을 보면 나의 설명에 어느 정도는 동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최악의 과정에서 얻은 좋은 점들도 있다.
첫 번째는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당겨진 재택근무의 확산이다. 이미 실리콘밸리의 많은 회사들이 영구 재택근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그 생산성에 대해서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고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어디에서는 자기 몫의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 거대한 실험은 회사와 개인에게 또 하나의 선택지를 제공할 것이다.
두 번째 좋은 점은 교육계에서 일어났다. 캘리포니아의 공교육은 미국에서도 하위 수준을 차지하는 말 많은 분야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코로나 온라인 수업은 생각보다 많은 가능성을 열어줬다. 각기 흩어져 있던 다양한 유/무료 교육 콘텐츠들이 아이들에게 공개되었다. 그리고 아주 어린아이들조차도 컴퓨터 사용에 익숙해졌다. 혼자서도 충분히 지식을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손에 쥔 것이다.
세 번째는 원격 의료가 흔해진 점이다. 화상으로 의사를 만나 증상을 설명하고, 약을 처방받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병원은 경증 환자들까지 처리할 여유가 없었고, 환자들은 단순한 병 때문에 코로나 환자들과 마주칠 수 있는 병원으로 가는 위험부담을 지기 싫었다. 앞으로 병원 진료의 질이 올라가는데 도움이 될 실험이다.
마지막은 잔인한 상황인데, 희생자가 사회의 약자 계층이 많다는 점이다. 코로나 자체가 사람을 골라서 퍼지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가 걸렸는데 죽는 사람들이 문제이다. 나이가 많거나 지병이 있는 경우에는 더 쉽게 사망으로 이어진다. 사회 전반으로 보자면 노령층을 위한 연금 지출도, 병약층을 위한 의료비 지출도 장기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2020년의 이 기록이 역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지는 우리 모두 죽은 후에 결정될 일이다. 그럼에도 긴급히 승인된 백신의 혜택을 가장 먼저 골고루 받는 것도 결국 이 나라 사람들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갇혀 있던 억울함과 현재에 대한 소중함으로 남아 있는 이들은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다. 망가진 경제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회복 스토리를 쓰며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일어서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가 캔 푸드와 스티뮬러스 체크로 억지로 끌고 갈 것이다. 산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집을 지키며 숨죽여 지냈던 이들도, 자유롭게 돌아다녔던 이들도, 그 중간 어드메의 사람들도 모두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가족을 잃은 이들도, 병원에서 애썼던 이들도 모두 언젠가는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위대하며, 우리는 모두 함께 이 모든 것을 get through 했다고 자화자찬할 것 같다. 우리가 재난 영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미국의 성공 신화로 마무리될 것 같다. 이 쓰나미를 겪고 거대한 사회 곳곳에 쓰러져 있을 소외 계층과 상관없이 말이다.
미래는 사람들을 많이 버리고 갈 것 같다.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 자기 관리가 되는 사람과 아닌 사람. 개인으로도 충분히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사람들은 점점 소수가 되고 있고, 도태된 사람들은 자리를 잃어갈지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길고 긴 재난 영화 한 편을 찍고, 그들을 버리고 미래로 간다. 미래로 가는 길 참 길고 험하네. 꼭 이래야만 했니 미국 사람들아. 크리스마스엔 그냥 한 집에 사는 사람들끼리 사이좋게 지내자 제발. (이라고 한국말로 쓰면 뭐하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