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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새 Dec 16. 2020

캘리포니아 이모의 거짓말

여덟 살 동심의 가격은 $1,000가 넘을까?

 미국에 와서 놀란 것이 참 많은데, 그중에 하나는 대낮에도 차 창문을 깨고 차 안에 있는 물건을 털어가는 좀도둑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차 창문을 깨서 뭔가를 가져가는 것이 기껏해야 선글라스나 뭐가 들어 있는지도 모를 쇼핑백인 경우도 허다했다. 우리 부부가 5년 동안 이곳 Bay area(실리콘밸리)에 살면서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다는 것은 제법 운 좋은 일로 생각해야 하는 정도이다. 출장을 왔던 남편의 친구 하나는 친구들과 가벼운 술자리를 가진 후 호텔로 돌아가는데, 자꾸만 뒤에서 바람 소리가 나더랬다. 본인이 맥주 한잔에 취한 건 아닐 텐데 생각하며 고속도로를 달려 호텔로 돌아갔는데, 주차를 하고 보니 뒷 창문이 깨져서 아예 없었단다. 어쩐지 여름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이상하게 조금 춥기도 했다나? 내 친구 하나는 '내가 LV'라고 가득 쓰여 있는 가방을 차에 두고 본인 아파트 앞에 차를 세우고 잠든 애를 먼저 안아 집에 데려다 놓는 5분 사이에 차 창문과 그녀의 유일한 명품 가방을 잃었다. 또 한 언니는 쇼핑몰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우리와 점심을 먹었는데, 차 안에 둔 개모차(개 유모차)를 도난당했다. 좀도둑이 개를 키웠나 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나도 사람들은 경찰에 리포트를 하지 않는다. 뭐 간혹 리포트를 하더라도 경찰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차를 통째로 도둑맞는 정도의 사건은 돼줘야 민중의 지팡이가 나서서 찾아준다고 할까. (실제로 친구 중에 자고 일어나 아파트 주차장에 가니 본인 차가 없어져서, 일주일 만에 4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에서 차를 찾은 사건도 있었다. 집에 침투해서 차 열쇠를 가져간 후,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를 가지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불량 청소년들.) 대신 사람들은 보험을 든다. 보험을 들면 보험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디덕터블(고객이 부담하기로 약속한 최대 금액)을 제외하고 커버해준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무사고로 지낸지라 한국의 자동차 보험 시스템은 오히려 잘 모르겠다. 미국에 와서는 운전하는 시간과 거리가 절대적으로 늘어서 그런지 자잘하게 제법 자동차 보험을 쓸 일들이 생겼다. 매달 내야 하는 보험금은 꽤 되지만, 진짜 일이 생겼을 때 아묻따 유용하게 나의 불운을 커버해준다.






 타지에 살다 보니 남편이나 내 친구들이 놀러 오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대부분 자기 차를 빌려서 다닌다. 미국에서 차가 없으면 매우 비독립적인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꿈처럼 아득해진 2년 전 여름, 내 친구와 그의 가족이 제법 많이 길게 우리 집으로 놀러 왔다. 친구는 요리도 운전도 잘하고, 싹싹하고 센스 있는 좋은 게스트였다. 어느 날 친구 가족들이 나파밸리에 다녀오더니, 여권을 잃어버리고 돌아왔다. 와인 테이스팅을 위한 신분증 검사는 아이들을 데려갔다고 예외가 아니었다. 친구는 분명히 소믈리에게에 신분증을 보여준 것까지는 기억이 생생한데, 아무래도 그 이후에 떨어뜨리거나 잃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 친구는 여행 일정이 넉넉히 남은 상태였고, 샌프란시스코 영사관에 가면 여권 재발급은 쉽게 해 줄 터였다. 그럼 아무래도 차 막히는 거 생각하면 평일에 다녀오는 것이 좋겠지? 나는 친구의 아이들까지 애 셋을 보며 집에 있는 것보단, 다 같이 샌프란시스코 관광이나 하면 되겠다고 오히려 들떴다.


 친구는 워낙 운전을 잘했고, 미국에서 운전해본 경험도 제법 있었다. 우리는 친구가 모는 렌터카에 아이 세명과 강아지까지 태우고 간식을 넉넉히 준비해서 신나게 출발했다. 2열에 8살 오빠와 강아지를 태우고, 3열에 6살 언니들을 태웠다. 이전에 2열에 유아용 카시트 세 개를 꽉 채워 설치하니, 세 개 중에 양쪽 카시트에 탄 아이들은 번갈아 불평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양쪽 카시트는 가운데 쪽으로 약간씩 기울어져 있었고, 차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회전할 때마다 관성으로 아이들의 몸은 더 안쪽으로 기울곤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차의 1,2,3열에 사람들이 골고루 탔다. 그러다 보니 맨 뒷줄의 아이들이 요구사항 따위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에서 우리에게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문제의 강아지. 보통 때라면 강아지용 안전벨트를 매고 얌전히 누워 갈 강아지가 아이들의 성화에 따라 이 아이 무릎에서 또 저 아이 무릎으로 옮겨 다녔다. 그에 따른 아이들의 탄성과 불만의 소리는 덤이었다. 출발한 지 30분 만에 지치는 마음이었지만, 우리가 또 언제 이렇게 진하게 뒹굴며 추억을 쌓을 기회가 있을까 싶어 아직은 웃는 낯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우리는 제일 먼저 영사관에 가서 여권 재발급 신청을 했다. 그리고 답답했을 아이들, 강아지와 그 주변 산책을 했다. 바람이 살랑거리고 함께했던 여름도 끝나가고 있었다. 게다가 샌프란시스코 영사관은 부촌에 위치하고 있어서 집 대문들만 봐도 즐거운 산책이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커피가 필요했고, 아이들에겐 달달한 간식과 버라이어티가 필요했다. 구글맵을 쓰윽 훑어보고, 그나마 아이들과 가기 무난한 Ghirardelli 초콜릿 샵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이미 강아지와 도시 산책 맛을 봐서 그런가. 매우 흥분 상태였다. Ghirardelli 근처에 스트릿 파킹 자리를 찾지 못한 우리는 주차 빌딩으로 들어섰고, 곧 내린다는 사실 때문에 아이들의 흥분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아이들은 내리면 강아지 리쉬를 누가 잡을 것인가를 놓고 말로 몸으로 싸우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땅이 넓다 보니 주차장도 한국보다 넓은 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차들이 '전진 주차'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차들에 후방 센서음이 없고, 대신 후방 카메라가 달려있다. 그러니까 뒤로 차를 대다가 무엇인가와 부딪힐 염려는 애초에 없다고 가정하고, 땅이 고른 지 아닌지 정도 확인하는 느낌이랄까. 그마저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내가 가끔 기분에 따라 후진 주차를 할 때면 주변에 사람들이 경이로운 눈빛으로 나의 주차 과정을 지켜보고 엄지를 치켜들며 칭찬하고 했다. 사람은 이렇게나 습관에 익숙하다. 친구는 습관적으로 후진 주차를 시도했고, 우리는 아무도 그 sign을 읽지 못했다. 원어민이라면 읽기 싫어도 눈을 통해 뇌를 거쳐 경고했을 그 sign을 우리는 회색은 벽이고, 하얀 건 글씨구나. 너네 정말 조용히 하지 못해!! 내리기만 해 봐라 다들 혼날 줄 알아!!라고 생각하며 그대로 주차를 시도했......빠지지이이익!


 잘못된 소리와 함께 차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차의 뒷 창문이 완벽하게 깨져서 수천 개의 반짝거리는 유리조각들이 차 안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다행히 주차장에 들어서며 아이들은 각자의 안전벨트를 풀고 어떻게든 강아지의 리쉬를 잡고 제일 먼저 차 밖으로 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만약에 3열의 아이들이 카시트에 얌전히 앉아 있었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가 보고도 읽지 않은 sign은 차를 행여나 전진 주차하지 말라고 써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언덕에 지어진 주차장이 그 특성상 위쪽으로 살짝 돌출된 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나자, 우리는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짐들을 챙겨 일단 차에서 나왔다.


 사고를 치고 엄마한테 연락하는 아이처럼 일단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남편은 렌터카 회사에 연락하는 것이 우선이고, 아마 그들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그 차를 몰고 집으로 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을 거라 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면서. 남편과 통화를 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하던 내 머릿속에 천재적인 나쁜 생각이 떠올랐다.

 "오빠, 여기 샌프란시스코잖아! 만약에 좀도둑이 깨고 간 거라고 하면? 그럼 말이 되지 않을까? 그럼 과실이 다른 사람에게 있으니까 그럼 디덕터블이 달라지지 않을까? 어차피 보험금은 제법 냈고..."

 남편은 어떤 판단도 유보하고 내 말을 듣기만 했지만, 나는 이미 결정했다.

 초콜릿 가게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초콜릿을 하나씩 입에 물고 커다란 광장에 앉아 기다리던 친구와 아이들에게 가서 내 생각을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친구는 이미 내 차 자동차 앞유리에 금이 갔을 때  견적이 $1,000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참이라 매우 침울하던 참이었다. 친구의 얼굴이 햇빛처럼 밝아지며 너는 천재라고. 네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말하며 나의 아이디어에 강력한 합의를 하였다.


 "엄마, 거짓말하면 안 되는 거잖아. 우리 창문 누가 깬 거 아니고, 그냥 깨진 거잖아."

친구의 여덟 살 아들이 말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가 찬물을 끼얹은 듯 마음이 차가워졌다. 친구의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순하고, 자라면서 크게 고집 한번 부리지 않은 착하고 순수한 아이였다. 내가  $1,000를 아끼려고 동심을 파괴하는구나. 친구가 아들을 멀찌감치 데려가서 한참을 이야기하고 돌아왔다. 복잡한 표정으로 돌아온 아이는 나를 잠시 쳐다보고, 엄마를 잠시 쳐다보고는 조용히 초콜릿을 마저 먹었다. 친구는 착한 거짓말에 대해서 설명해줬다고 했는데, 이거 착한 거짓말 맞음? 누군가 손해를 보지 않고, 모두가 이익이어야 쭈굴 한 내 마음이 좀 펴질 텐데, 보험사가 우리 대신 돈을 쓸 예정이니 내 마음은 구겨진 체로 펴지지 않았다.


 결국 친구는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조금 조정해서) 설명했고, $1,300 견적에 조정을 거듭하다가 결국 친구가  돈은 $0 걸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친구에게 백번의 감사 인사를 들었고, 친구의 아들에게는 거짓말하는 캘리포니아 이모 남았고.

여덟 살 동심의 가격은 $1,000가 넘을까? 넘겠지...만 각자 주머니 사정에 따라 다른 걸로.

이모가 정말 미안해. 우리 **이. 이 사건 기억하고 있을까?

잊었으면 좋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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