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아미안해
끔찍한 이미지를 보거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면 밤새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복 재생을 해 주는 예민한 뇌를 가졌기에, 나는 공포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다. 단순히 반복 재생 정도가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확대 재생산까지 해 내는 쓸 데 없이 부지런한 뇌를 탓해봐야 소용없다. 애초에 보지 않는 게 상책.
얼마 전에 들은 팟캐스트에서 영화 평론가 한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미국 공포 영화에서 절대 건드리지 않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건 바로 아이와 개라고. 공포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지라, 딱히 미국 공포 영화에 대한 일식견도 없지만 안 봐도 비디오라고. 당연하지. 암. 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정'이라는 것이 있듯이, 미국에도 미국 사람들만의 정이 있다. 미국 사람들의 정은 아이들을 향한다. 캘리포니아 산불이 기승을 부리던 당시, 5살 소년이 보낸 인형을 품에 안고 화재 진압에 나선 소방관들 이야기. 코로나로 뮤지컬을 보러 가지 못하게 된 9살 소녀를 위해 해밀턴의 뮤지컬 팀이 Zoom 콘서트를 열어준 이야기. 미국 뉴스에서는 종종 아이들과 관련된 소소한 사연들을 보게 된다. 5년 전, 3살 아이를 데리고 다니던 젊은 여자에게 온 나라는 친절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고 아이도 그만큼 커 버렸지만, 5년 전 미국에 와서 느낀 바로는 온 사회에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존재했다. 한창 한국에서는 맘충이라는 단어가 대두되고 노 키즈 카페가 생기기 시작하던 때이니, 상대적으로 더 그리 느껴졌던 것 같다.
식당에 가면 그게 패스트푸드 점이던 동네 작은 식당이던지 간에 아이를 대동한 손님들에게는 작은 액티비티 킷이 주어진다. 주로 3색 색연필과 함께 주어지는데 종류가 정말 다양하다. 색칠공부, 미로 찾기, 그림에 맞춰 붙이는 스티커, 단어 맞추기, 퀴즈, 모자 만들기 등등. 부모가 음식을 고르고 주문하고 모두 함께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각각의 수준에 맞게 색칠 비슷한 것을 해내거나 단순한 넌센스 퀴즈 등을 풀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액티비티 킷 뒷면에는 키즈 메뉴가 있어서, 엄연히 아이들도 자신만의 메뉴와 음료를 주문한다.
홀푸즈(미국의 고급 식료품 마트)에 가면 아이들에게는 사과나 바나나 등의 과일이 공짜로 주어지고, 아이들은 그들 사이즈에 맞춘 귀여운 카트들을 직접 밀고 다닐 수 있다. 트레이더조(자체 브랜드를 주로 다루는 오가닉 마트)에 가면 캐셔는 꼭 계산할 때,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본다. 스티커를 원하냐고. 관공서에 들르거나 이웃을 만났을 때에도 아이들은 어른들의 진지한 관심과 질문을 받는다.
아이들을 위한 대부분의 행사에는 동네의 경찰관들이나 소방관들이 대거 출동한다. 매년 프리스쿨의 행사에는 소방관들이 번쩍이는 소방차를 가지고 와서 한 명 한 명 아이들을 운전석에 태워 준다. 매년 학교에서 열리는 북페어에는 경찰관들이 와서 책을 읽어준다. 어린이들을 위한 할로윈 행사에도 그들은 사탕과 스티커를 가득 가지고 와서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대화를 나눈다.
미국이라고 해서 아이들이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다. 미국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설령 본인이 아이들이라면 질색인 사람들조차도 감히 그런 티를 낸다는 것은 못 배운 사람이라고 광고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교양의 척도쯤 되는 것 같다. 적어도 3살 아이를 데려와 5년 동안 여기서 키워본 나는 그렇게 느꼈다.
차마 글로 쓰기에도 손가락이 떨리는 한국의 끔찍한 사건을 접하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처참한 욕을 삼켰다. 어린아이를 차에 홀로 방치하는 것만으로도 감옥에 갈 수 있는 강력한 법. 아이를 차가운 눈길로 쳐다보는 것조차 타인에게 지탄받을 수 있는 분위기. 아이들의 몸과 마음과 꿈은 모두가 함께 지켜줘야 한다는 사회의 암묵적인 약속. 미국에서라면 생전 방송에서의 그 아이의 표정만 보고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신고했을 것 같다. 세 번의 신고가 신고로만 그치지 않았을 것 같다. 본인의 교양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나섰을 것 같다. 아니 그냥 이 모든 것은 내 희망사항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미국에서라면 그 악마들이 다시 사회의 빛을 보는 일은 확실히 없을 것 같다.
* 2013년 미국에서 일어난 비슷한 사건이 있었고, 6부작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어 넷플릭스에 올라 와 있다. Trials of Gabriel Fernandez (게이브리얼의 죽음. 누구의 책임인가). 어떤 끔찍한 공포 영화보다도 더 끔찍한 그 현실 속 그 아이의 엄마는 종신형을, 엄마의 남자 친구는 사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나는 Play 할 용기조차 나지 않는 다큐멘터리의 예고 영상은 법정을 지키는 경찰관의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이 재판이 여러분의 감정을 뒤흔들 수도 있으니
견딜 수 없다고 느끼거나
이성을 상실할 것 같으면
법정 밖으로 나가서 자신을 추스른 다음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이 세상에서 궁극적인 악은
잘못된 걸 보면서도
변화를 만들 힘이 있음에도
외면하는 거라고 봅니다.
그게 진정한 악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