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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새 Mar 19. 2021

소심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정신승리

성악설과 성선설

대체로 성악설을 믿어왔다.

본성을 들키는 것 같고 약간은 부끄럽기도 해서 대놓고 주장해보지 않았을 뿐.


사람들이 대단히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이득을 위해 행동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결론을 다른 여러 가지 이유들을 곁들여 포장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자기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그럴듯한 변명을 만들어내고 스스로조차 속이며 살아간다. 세상만사가 사실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아갈수록 나는 더 그 생각에 힘을 얻었다. 대체로 사람들은 악하게 태어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악함을 잘 누르고, 포장하고, 다듬으면서 어른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일곱 살 어린 막내 동생의 친구들이 노는 것을 보면 그 생각이 더욱 굳혀지곤 했다. 대여섯 살밖에 먹지 않은 꼬맹이들 조차도 조금 더 큰 간식을 차지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자기가 원하는 놀이를 함께하기 위해서, 더 좋은 역할을 따내기 위해서 권모술수를 부리곤 하는 것을 나는 많이 목격했다. 대 놓고 뺏는 녀석들부터 마치 상대를 위하는 것처럼 '이 인형이 더 예쁘지 않냐'라고 상대를 설득하며 상대가 가진 장난감을 슬그머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녀석들까지. 특히 상대가 어수룩하거나, 자신보다 어릴 경우 자신의 이득을 챙기기 위한 그들의 행위는 세련되졌다. 다들 백 원짜리 동전 세 개와 동생이 가진 오백 원짜리 동전 한 개를 바꿔본 경험쯤은 있잖아요.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요. 나는 같은 종류의 사람이면서도 그들의 수가 빤히 보이는 행동을 지켜보는 것이 괴로웠다. 사랑만 받고 자란 막내 동생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도 보기 싫었다. 그들이 '대놓고' 드러내는 이기심이 자비 없는 내 눈을 만나 천하의 나쁜 것이 되곤 했다. 내 마음속에서.






성선설과 성악설보다는 케바케 이론이 지배하는 세상이긴 하다. 내 속에서 나온 사람이지만, 내 아이는 생각과 많이 달랐다. 다듬어지지 않은 어린아이일수록 더 이기적일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 아이는 뭐랄까 성선설을 뒷받침하기에 예시 같은 아이였다. (나에게서!! 왜???)


 아이가 두 돌쯤 되었을 때, 미국에서 살던 조카(당시 세돌)가 한국에 다니러 왔다. 두 아이 사이에 사소한 장난감 다툼이 시작되었는데, 사실 다툼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싱겁게 끝나 버렸다. 조카는 (내가 알고 상상하는 여느 아이들처럼) 사촌 동생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탐냈고, 내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차례로 가져가 버렸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조카의 양 손은 장난감으로 가득 차기에 이르렀고, 양 손에 쌓인 장난감을 턱으로 고정시켜 겨우겨우 장난감을 사수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또 내 아이는 뺏긴 장난감을 금세 잊어버리고 새로운 장난감을 집어서 놀이를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장난감은 '남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니, 조카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손과 턱까지 동원해 위태위태하게 가지고 있던 장난감들을 가지고 슬금슬금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아이는 놀랍게도 가지고 있던 장난감을 조카의 손 위에 층층이 쌓인 장난감 맨 꼭대기에, 그러니까 장난감 탑과 조카의 턱 사이에 끼워 주었다. 말은 할 수 없지만 '옛다. 이거까지 니 다 해라!' 하는 느낌으로.


아이가 다섯 살 때, 수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타들어가듯 더운 날이었는데, 컨디션 때문에 나는 벤치를 지키고 있던 참이었다. 아직 수영을 배우지 못한 아이는 퍼들 점퍼를 끼우고 물에 둥둥 떠서 노는 수준이었다. 간식으로 치즈를 챱챱챱 먹고는 다시 아빠와 수영하러 돌아간 아이는 깜빡하고 퍼들 점퍼를 입지 않았다. 물속으로 쑥 들어가 버린 아이가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옆에 아빠라는 사람은 그것도 모르고 자기 몸에 물을 적시며 천천히 수영장에 들어가고 있었다. 다급한 "오빠!!!" 소리에 그가 정신을 차리기까지 2,3초쯤 지났나 보다. 키보다도 훨씬 깊은 물에 풍덩 빠져버린 아이에게는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 급하게 건져진 아이는 세상 놀란 눈으로 아빠에게 1초 만에 얘기했다.

"아빠 구해줘서 고마워요."

아이는 울지 않았고, 나는 그날 벤치에서 땀만큼이나 많은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의사를 제법 똑바로 표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도, 아이는 자꾸만 나눠주고 퍼주고 내어주고 오곤 했다. 내어준 것은 내 아이인데, 나는 내 것을 빼앗긴 것보다 더 괴로웠다. (나의 성악설 세계관에 따라서) 차라리 내 아이가 상대 아이를 때리고 오는 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아이의 프리스쿨 컨퍼런스에 갔다.

"She is just a generous person."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그렇지. 맞지. 너는 그런 아이로 태어났지. 그랬지.


아이를 가졌을 때, 개점휴업 상태였던 나의 비루한 종교에 기대어 대단한 것을 기도하지 않았었다. 쉽지 않게 가졌던 아이였기에 아이가 '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만 가득이었지, '어떤 아이'가 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에는 그저 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10개씩 있는 건강한 아이가 와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참 과분한 녀석이 와버렸다.

이런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나는 자주 소망한다.


좋은 것이 통하는 세상이 되기를.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큰 아이가 되기를.

그 과정에서 내가 네가 받는 상처와 부당함을 안아줄 수 있는 따듯한 엄마가 되기를.






타고나기를 소심하고 욕심이 적은 아이를 아름답게 포장해봤다.
사람 쉽게 바뀌는 거 아닌데, 내 아이에게만 바뀌라고 강요하는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
모두가 잘난 세상에서 뒷켠을 지키는게 행복한 넓은 마음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엄마도 정신 승리가 필요 하니까.






성악설이고 성선설이고 뭐고.





[ 표지 사진 출처 ] SMITHSONIAN MAGAZINE | JANUARY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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