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한 새끼를 품은 소리 없는 짐승
출근길과 동일한 길을 출근이 아니라, 출산을 하러 남편과 함께 가고 있다.
늘 그렇듯 테헤란로는 차로 가득했고 대부분 일터로 가는 차들이었으리라.
이 길을 그 후로도 며칠이나 하루에 세 번씩 오가게 될 줄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현대 의학에서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양수가 터졌을 때의 대처 방안은 아래와 같다.
(매우 희박하지만) 감염의 위함이 있으므로 일단 산모는 입원을 한다.
항생제를 투여한다.
분만을 위해 금식을 시작하고, 제모 관장 패키지를 실행한다.
자궁을 수축시키는 약물을 이용해서 유도분만을 시작한다.
진통이 시작되고, 적절한 타이밍에 무통 주사를 놔준다.
출산한다.
아마도 이 모든 일은 양수가 터진 그 당일에 이뤄진다.
자연주의 출산에서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양수가 터졌을 때의 대처 방안은 아래와 같다.
아이의 심박수 등으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다.
부모의 선택에 따라 항생제를 투여하거나, 투여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간다.
기다린다.
기다린다.
기다린다.
항생제 투여를 선택했을 경우,
8시간 간격을 지켜 하루 세 번 병원에 방문하여 항생제를 투여하고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다.
기다린다.
기다린다.
기다린다.
무엇을?
아이와 산모의 몸이 자연스럽게 준비되어, 진통 즉 자궁의 규칙적인 수축이 오기를.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예정일 즈음이 되면 진통을 시작하고, 진통의 간격이 좁아지면 곧바로 입원을 해서, 무통주사 대신에 진통을 이기기 위한 평화로운 춤을 추며 아이를 낳을 줄 알았다. (방송에서 보면 산모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남편과 산모가 가볍게 서로를 안고 방 안을 돌아다니며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현실의 나는 집으로 돌아와 자궁 수축을 유발하는 방법을 검색했다. 그리고 매운 음식이 도움이 된다기에 매운 닭발을 시켜 먹었다!!!!! 쿨피스 한 모금. 닭발 한입. 하아~ 하아~~~
그리고 걷는 것이 도움이 된다기에, 집 앞 공원을 쉬다가 걷다가 빠르게 걷다가 하며 한 바퀴 돌았다. 커다란 생리대를 차고 걷다가 양수가 조금 새어 나오면 영락없이 바지에 오줌을 싼 느낌에 기분이 나빠졌다.
출근 시간에 병원을 방문해서 첫 번째 항생제를 투여받았으니, 투여 간격을 지키려면 다시 퇴근 시간에 병원으로 향해야 했다. 예정일이 다가오자 우리는 (차 소리보다는 새소리를 선택해서) 공원이 보이는 곳으로 이사를 했었더랬다. 잠실 집에서 서초동 병원까지. 멀지도 않은 그 길이 트래픽 잼에 걸리면 왕복 2시간을 잡아먹었다. 양수가 터진 지 40시간이 흘러가고, 다섯 번이나 병원에 방문하여 항생제를 맞았는데.
우리가 의사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는 늘 같았다.
"아직 자궁은 열리지 않았고요. 아기는 뱃속에서 너무 잘 놀고 있어요."
자기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양수)가 반은 없어졌는데도 태연하게 잘 놀고 있는 내 새끼는 대체 어떤 녀석일까.
아빠는 '아내가 아이를 곧(?) 낳을 것 같다'고 이틀째 회사를 가지 못하고 있고, 엄마는 매 끼니 매운 음식을 먹으며 병원과 집을 오가는 차 안에서 지쳐가고 있단 걸 네가 알 수는 없었겠지.
혹시 알았더라도 그게 무슨 큰 일이냐며 오히려 아빠와 엄마를 다독이지 않았을까.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이렇게 차에서 보낼 수는 없다고, 기다리더라도 병원에서 기다려야겠다고, 입원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작은 병원이었고, 출산이 가능한 병실은 모두 차 있었다. 우리는 출산 준비를 위한 작은 대기 병실에 입원했다. 오늘 밤에는 자궁이 열리기를 기대하면서.
의사 선생님은 아마 곧 아이를 만날 수 있을 거라며 저녁을 든든히 잘 먹으라고 하셨다. 입원 첫날 저녁, 근처 고깃집에서 갈비를 구워 먹었다. 양수가 쏟아진 지 거의 48시간이 되어가니까 이거 먹고 힘내서 쑴풍. 아이를 잘 낳아 보자며, 초췌한 얼굴로 고깃집에서 사진도 찍었다.
그날 저녁, 마지막 샤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샤워를 하다가 벌거벗은 상태로 쓰러졌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희미한 목소리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편을 불렀다. 손가락 끝까지 떨려와서 샤워 타월을 몸에 두를 힘도 없었다. 부끄러움이고 뭐고 벌거벗은 몸에 커다란 타월을 둘둘 두르고 휠체어에 실려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온몸을 덜덜 떨면서 이제 정말 때가 왔나 보다 생각했다.
자궁은 아직 2cm도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의 충격이라니.
아이는 또 너무 잘 놀고 있다 하고.....
너 정말... 안 나올 거니? 거기서 영원히 살 꺼니??!!!
휠체어에 실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관계로, VIP병실(이라고 쓰고 비싼 병실이라 읽는다.)로 옮겨졌다.
예정에 없이 따듯하고 쾌적하고 넓은 병실로 옮겨가니 잠시 찾아왔던 쇼크가 천천히 가라앉았고, 우리 부부는 이제 진짜 곧. 아이를 만난다고 생각하며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출산에 좋다고 하는 여러 가지 자세도 취해봤다.
옆으로 눕기, 고양이 자세, 런지 자세, 남편에게 기대는 자세, 짐볼을 이용한 자세 등등
편안하게(?) 자고 다음날은 계단을 오르는 것도 좋다길래 병원 비상계단을 오르내렸다. 얼마나 많이 오르내렸었는지, 그 계단 공간의 서늘한 냄새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병원 밥도 꼬박꼬박 열심히 먹었다.
엄마 이제 진짜 준비된 것 같은데, 이제 그만 우리 만나는 게 어떨까?
양수가 터진 지 90시간이 넘어가고, 내 자궁이 아직 5cm도 안 열렸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좌절했다.
진통은 왔다가 갔다가 하기를 꼬박 이틀째인데 모든 것은 너무나 느리게 흘러갔고, 나는 살만 하기도 하고 너무 힘들기도 했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처음으로 끼니를 걸렀다. 그리고 비장하게 의사 선생님에게 제왕절개를 요청했다. 지켜보는 남편도 동의했다. 이제 그만 제 배를 갈라서 아이를 꺼내 주세요. 힘들어서 못 하겠어요.
죽을 것 같이 힘든 건 아니었지만, 예상과 다른 전개는 인간에게 짜릿함과 피로를 함께 선사한다.
너무. 피곤했다.
"산모가 이렇게 건강하고, 아이가 너무 잘 놀고 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잘 버텼는데, 오늘 밤만 넘겨보기로 해요. 힘내요."
내가 지쳐가는 동안 양 옆방에서는 짐승의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새끼를 낳는 짐승의 소리.
드라마에서 나오는 찢어지는 비명아 아니라, 좀 더 날것의 소리. 낮고도 으르렁 거리는 듯한 포효.
내 새끼는 너무나 태연하고도 느리게 찾아오고 있어서, 내 안에서는 끄응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사실 포효를 내기에는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나는 태연한 새끼를 품은 소리 없는 짐승이었다.
의사 선생님의 간곡한 설득으로 이 밤만 넘겨보기로 했다.
저녁을 굶고 배를 가르기로 결심한 나에게는 더 이상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제야 본격적으로 찾아오는 진통을 받아들이기에 내 몸은 너무 지쳐있었고, 자꾸만 자고 싶었다.
지쳐있던 몸을 위해서 수중분만을 하기로 결정했다.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몸을 이완시키는데 집중했다.
물 안과 밖을 오가며 힘을 주다가 쉬다가를 반복했다.
밤 10시쯤 드디어 아이의 머리가 손톱만큼 보이기 시작했다.
양수가 터진 지 4일이 조금 모자란 시점이었다.
다시 힘을 주고
다시 쉬고
또다시 물속에 들어가고
다시 물 밖으로 나오고
힘을 주고
쉬고
호흡하고
힘을 주고
새벽 4시가 넘어
물 안에서
아이가
태연하게 태어났다.
100시간 만에
아이는 울지 않았다.
쪼글쪼글 눈을 꼭 감고 내 품에 안긴 아이에게 인사했다.
"안녕, 너구나. 너였구나."
100시간 만에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이는 평화로웠다.
마치 좀 전에도 내 품에 안겨 잠을 자고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평화롭게 우리에게 찾아왔다.
너는 아마
평화롭고 태연한 아이로 클건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