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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트루 Mar 21. 2019

삶의 끝자락에 다다른 아버님을 기억하며.

더 잘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친할아버지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그분들을 뵌 적도 사진에서 얼굴을 본 적도 없다. 그래서 내 아이만큼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결혼할 당시, 양가 부모님이 전부 계시고 정정하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참 축복받았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인생의 폭풍은 갑작스럽게 예고 없이 찾아온다.  임신 8개월.. 이제 70여 일만 지나면 새 생명이 태어난다. 


그의 가족이 내 가족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살아온 세월이 다르고 환경이 달라 어떻게 진정 마음에 품고 사랑할 수 있을지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도 말이다. 아버님의 죽음이 꽤나 가까이 왔음을 실감하는 요즘. 무척 수척해진 아버님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에여온다.


그렇게 아버님과의 일을 추억하던 중 처음 아버님을 뵙던 날이 떠오른다. 처음 시부모님을 뵙던 날, 긴장된 마음으로 그의 집을 방문했었고 아버님은 꽤나 생뚱맞게 내게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차이>에 대해 물으셨다.


신랑이 내게 이 질문이 나올 거라며 미리 귀띔을 해줬었기 때문에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서 갔다. 벼락치기를 하던 실력은 아버님이 만족할 만한 대답을 안겨드렸던 것 같다. 그렇게 아버님은 자식들이 집에 데려온 사람들 중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을 드디어 찾았다며 정말 기뻐하셨다.


그러시더니 대뜸 너는 피아노를 칠 수 있을 것 같다며 거실에 놓여있는 피아노를 가리키시며 연주를 권하셨다. 무척이나 떨렸고 수준급은 아니지만 마침  외우고 있던 곡이 하나 있었고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피아노를 짧게 연주했다. 내 연주를 들으시더니 만족스럽다는 듯 표정으로 큰 소리르 웃으시며 “합격!!”을 외치셨다.


아버님은 참 호탕한 분이시다. 커다란 눈망울에서는 지난 세월 떳떳하게 살아온 아버님의 자신감이 보였으나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새겨진 세월과 노동의 흔적들에는 정직함이 묻어나 있었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 평생을 다 바쳐 살아온 아버님은 갑작스러운 병마 앞에서 하릴없이 허물어지셨다. 그렇게나 정정하고 막걸리 세병 정도는 거뜬히 들이키시던 분이 3년 전 우리가 하나 되던 그 해, <위암>으로 휘청 꺾이고 말았다.  <암> 수술로 인해 아버님은 잘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암을 절제하고 잘 살아가시나 싶었더란다.


그 후, 주기적으로 복수가 차오르고 쓰러지시기를 반복했고 어느 날 새벽엔가는 트럭에 뺑소니를 당해 가뜩이나 힘이 빠져 버린 당신의 여린 몸이 더욱 고통을 받았더란다. 몸은 나날이 쇠약해져 갔지만 아버님의 정신만큼은 또렷하셨다. 그 옛날 연대를 나오신 지금으로 말하자면 고학력의 아버님은 내게 헤르만 헤세의 소설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가끔 아버님과 대화를 할 때 그분의 지적 수준에 놀라웠으며 그 짧은 대화가 즐겁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갑자기 또 몸이 쇠약해지시고 난 후에는 한 동안 시댁에 갈 수가 없었다. 며느리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으셨던 것 같다.  천안 단국대 병원에서 암 재발과 더 이상 치료는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아버님을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어 버렸다.


의사로부터 난생처음 듣는 치료 불가 통보. 항암도 방사능도 그 어떤 치료도 이제는 소용이 없다는 그 말에 날카로운 칼날이 내 마음을 찌르는 것만 같이 슬펐다. 조금 있으면 태어날 손자를 아버님 품에 안겨 드리고 싶었는데 의사는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남은 시간이 빠르면 일주일이라 말한다. 처음 겪는 일이어서 나 또한 충격이 컸지만 신랑과 아주버님의 슬픈 표정 앞에서 울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버님이 타고 계신 휠체어를 밀며 병원 복도를 지나는데 가슴 한편이 차갑도록 시리는 고통이 느껴졌다. 어느덧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되어 있었나 보다. 


워낙 음식 솜씨 좋은 시어머니와 함께라 아버님께 맛있는 음식 한번 제대로 대접해드릴 기회 조차 같지 못한 이 못난 며느리는 또다시 위독하다는 요양병원의 메시지를 받아 들고는 한 동안 그 자리를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음에 깊은 아픔을 느끼며 그대로 주저앉아 부른 배를 부여잡고 눈물로 기도를 했다.

이미 손 쓸 수 없을 만큼 암이 전이되어 버려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계실 우리 아버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그리고 할 수 만 있다면 곧 태어날 손자를 품에 안겨드리고 며느리가 정성으로 차린 밥 한 끼 꼭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말이다.


지금은 비록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계시지만

정말이지 나의 작은 바람으로

환하게 웃으시는 아버님을 꼭 한번 다시 보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마음을 울렸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 마지막 대사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하루가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 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했던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은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신랑 너에게 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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