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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Jul 04. 2024

31화.  다시 찾은 한국

9호선 노량진역 5번출구.

챠밀라는 눈 앞에 거대한 건물이 자신을 압도하고 있음을 알았다. 다름아닌 한국의 대표적 학원인 모가스터디였다.  갈레에 3호점을 열기 전 자신의 사업점검 차원에서 방문한 한국행이었지만, 그에게 있어 모가스터디는 미래였다. 다행히 모가스터디 해외사업팀에선 자신의 사업계획에 대한 관심을 보였고, 함께 협의할 대표 매니저 중 한사람인 김수환씨를 배정해줬다. 챠밀라의 사업 구상에 컨설팅 및 협업논의가 미팅의 주제였다. 환은 대학시절 스리랑카, 네팔 등을 돌며 봉사활동 경험이 있던 내실 있는 청년으로, 그 역시 챠밀라 방문이 무척이나 고대가 되던 차였다.


모가스터디는 최근 국내사업의 레드오션화가 심화되자 개발도상국 시장으로 빠르게 눈을 돌렸다. 마침  불어온 K한류는 개발도상국에 한국어 열풍 기름을 부었고 스리랑카, 네팔, 인도네시아 등 한국행을 선택한 근로자수는 갈수록 급증했다. 심지어 그들의 상당수는 자신들의 나라에서 나름의 성공신화를 쓰는, 말 그대로 '코리안 드림'이 현실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바람은 한국행에 도전하는 수많은 잠재적 대기자들에게 더 큰 자극이 되었고, 또 다시 한국어 인기를 더 높이 치솟게 했다.    


모가스터디내 해외사업팀이 새롭게 꾸려지고 매니저 모집공고가 뜨자 수환은 지체없이 지원했다. 주변 동료들이 수환의 갑작스런 결정에 놀라면서도 그의 입사전 경험을 듣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김 매니저의 대학시절 남다른 해외봉사활동이력은 누가 봐도 그를 top-tier 에 있어야 할 사람으로 인정하게끔 했다. 대학가 근처 골목이나 교정을 걸을때마다 여기저기서 알아보는 그나름의 존재감 있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혼란의 시기는 왔고 방황이라는 내적 갈등은 피해가지 못했다. 한 달간의 스리랑카 봉사활동을 마치고 그 느낌을 잊지 못해 다시 네팔로 떠난 그에게 수개월 동안 현지인과 보낸 시간은 그에게 생각지 못한 고민을 안겼다.


'가난해도 어떻게 이들은 행복해 보일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어떤 삶을 살아야 이들처럼 행복이란 단어가 주저없이 나오는 걸까?'


네팔은 그에게 짧았던 스리랑카 봉사경험보다 더 진한 자국을 남겼다. 진한 흔적은 그를 내적 방황에

몰았고, 대학생활의 갈피를 잡지 못하게 했다. 안타깝게도 방황의 시간에 조금더 자신에게 신경을 썼더라면 마음의 소리를 듣게 할 근육들을 만들었겠지만, 주변의 친구들은 그를 가만 두지를 않았다.


'야, 취업이나 하자. 뭐해 지금'

'너는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여태 정신을 못차리냐?


'그렇게 다시 예전 '습'처럼 주변인들 사이에서 허둥대기 시작했다. 서서히 자신에게마저

'괜히, 그런 경험을 했었나.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은 갈피를 못잡고..이 사회는 나에게 강요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니... 그때 갖던 생각들은 모두 사치였을까, 지금 나이에  여태 사람구실을 못하고 있으면,.'


현실은 냉정하지만 그의 준비목록으 사기업을 도전하기엔 해외 봉사활동 외 자격증이나 다른 스펙들은 남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부족해 보이는 자신 앞의 현실이 그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고 결국 고민끝에 결단한 건,


'그래 가자 노량진.'


7급 공무원 시험 도전이었다.


해외의 경험은 그저 추억의 한페이이지였고 아쉬운 시간 버림이었다고 스스로를 자위하던 수환은, 엉덩이의 무거움을 측정하는 공무원 시험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끙끙'거리며 어떻게든 해봐야 하는 무거운 짐이었다. 그런 그에게, 모가스터디 인턴 공고는 그가 생각한 꿈에서 한참을 낮춰 잡은 일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라도 자신의 물길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전혀 맞지 않는 곳에서 인생을 허비하느니, 무엇이라도 틀어서 잡아야 한다고 마음 속은 외쳤다.

 

다행히 성실했던 그에게 인턴 3개월 후 정규직 전환은 선물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3년 후 사내 공고는 또 한번 그에게 기회로 찾아왔던 것이다. 자신이 허송세월처럼 여ㄱ겼던 스리랑카, 그리고 네팔 경험이 도리어 누구도 갖지 못한 자신만의 무기처럼 말이다. 심지어 동료들은 해외라는, 특히 못살고 시스템도 낙후된 나라와 일을 한다는 거부감 생각보다 컸고, 새로운 사업을 주도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상당했으니  어쩌면 관심갖지 않은게 당연했다. 반면, 해외사업은 수환만이 해낼 수 있었고, 그에겐 '찐'이라 할만큼 보물섬 같은 자리였다.


"어세 오세요 챠밀라씨. 김수환 매니저입니다."


챠밀라는 생각보다 어려보이는 김 매니저의 방긋 인사에 조금은 당황했지만, 사전에 스리랑카 인연을 들었던 터라 어색하지 않게 말을 이었다.

 

"챠밀라입니다. 반갑습니다. 김매니저님."


챠밀라는 그간 자신이 콜롬보 1호점, 캔디 2호점을 안착시키면서 겪었던 수차례의 시행착오와 함께 이번 3호점 갈레점을 내기에 앞서 사업을 다시 정비하고 싶었다. 한국의 모가스터디의 선진 기술을 도입한 신사업을 런칭하기 위한 논의는 그렇게 시작했다.


"예, 챠밀라씨. 우선 너무나 반갑습니다. 저도 이렇게 스리랑카에서 오신 분과 협업을 하게 되리라 생각지 못했네요. 이렇게 제 앞에 챠밀라씨가 앉아계신다는 게 어떻게 표현해야하나 싶을정도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한국에는 정말 잘 오셨고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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