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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Dec 22. 2020

남편이 땅을 사니 배가 아프다

남편은 은행원 출신이다. 5년 동안 리스크 관리부에서 일하며 퇴사를 생각했단다. 수직적인 구조,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AI가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업무를 왜 자신이 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의 나날이었단다. 숫자 하나라도 틀리면 큰 사고가 나는 일이었기에 남편은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급기야 남편은 나와 결혼하는 6월 말, 은행을 퇴사했다. 나는 이해했다. 남편은 나와 장거리 연애하는 2년 내내 은행을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KTX에서 그는 공인중개사 문제집을 풀며 인강을 들었다. 그 수고로움을 알았기에, 꿈이 뚜렷한 남편을 보며 내심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시부모님은 충격이 컸다. 급기야 결혼식 날 시아버님은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고, 결혼을 몇 주 앞두고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셨고 그렇게 남편은 직종 전환에 성공했다.




남편은 그 해 공인중개사 시험에 턱걸이로 합격했다. 사실 대단했다. 고액 연봉에 자녀 학비 지원에 철밥통인 은행을 관두고 부동산 일을 하겠다고 처음부터 다시 출발선에 서는 남편. 나는 직장인이지만 대단히 원해서 다니는 회사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할 줄 아는 일이 홍보 직종이고 또 싫지 않아서 다니는 중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달랐다. 5년간의 치열한 고민 끝에 얻어낸 새로운 꿈이자 도전이었다.

남편은 은행권에서 일을 했으므로 대출이나 은행의 생리에 빠삭했고, 이러한 경험과 지식은 부동산업에서 시너지를 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집은 사고 싶은데 대출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인 요즘, '은행 출신 젊은 공인중개사'라는 타이틀은, 은퇴한 할아버지가 앉아있는 구식 복덕방 이미지와는 뭐가 달라도 참 달라 보였다.

남편은 주경야독했다. 동네 작은 부동산에서 약간의 실전 맛을 본 후, 본격적으로 부동산 컨설팅 회사에 이력서를 냈다. 그 회사는 빌딩 임대와 매매가 주였는데, 여기에서 남편은 은행원 특유의 성실함과 선천적 말발로 큰 계약을 따냈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 2년이나 걸렸다. 한동안 일정한 수입이 없어 내가 잔소리도 많이 했다. 퇴근해서 감평사 공부도 하고, 늦게까지 부동산 관련 논문도 읽는 등 그의 꾸준한 노력이 빚어낸 결과였다.

아내인 내가 옆에서 봐도 멋졌다. 애초에 사업가로 살고 싶다던 남편은 계약 하나를 따더니 가속도가 붙어 두 달만에 내 연봉만큼의 돈을 벌었다. 남편이 잘 되니 나도 내 일처럼 기뻤다. 다음 계약에 대한 수입이 들어오면 예쁜 가방도 사준다고 해서 더욱 신이 났다.

본격적으로 팀을 꾸려 일하고 싶다던 남편은 주변에 괜찮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회식도 자주 했다. 토요일 새벽 1시에 들어온 남편에게 여느 아내처럼 나도 그날은 화가 났다. 어떤 주제의 회식인지 뻔히 아는 나였지만 너무 늦게 들어온 남편이 미운데 그 날은 너무 미운 것이 아닌가.

분했다. 미웠다기보다는 분했다는 게 맞다. 아니 어떻게 이런 감정이 올라오는지 당혹스러웠다. 동갑내기 남편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기어코 찾았다. 보람을 느끼고 즐기며 경제적 수입도 점점 짭짤해지고 있었다 그걸 곁에서 지켜보는 나와 비교가 된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어쩌다가 들어간 회사에서 월급 받아가며 그저 그렇게 사는 내가 좀 측은해졌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감정은 질투였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던데 나는 남편이 잘 되니 배가 아픈 거였다. 부부는 같은 배를 탄 운명공동체라던데 어째서 나는 남편을 질투하는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나는 내가 어떤 한 분야에서 나만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일을 즐겁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다. 그리고 그걸 제발 알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도 자주 한다. 그러나 싫증을 빨리 느끼는 나는 그 어떤 것도 진득하게 오래 집중하며 파본 적이 없고, 그저 조금 좋아했던 것도 나의 일이 되거나 그것만 공부하려 하면 이내 질려 버리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경제적 활동은 해야 하니 전공을 살려서 홍보 업무를 시작했고, 어쩌다 보니 그저 그런 회사에서 그저 그런 월급을 받고 열정 없이 일을 하고 있는 거였다.

남편은 내게 대단히 자극이 됐다. 치열한 고민 끝에 자신의 꿈을 드디어 찾아내, 즐겁게 즐기며 수입도 나보다 많은 사람이 바로 내 남편이었던 거다.

부러웠다.
같이 마주 앉은 저녁 식탁에서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어떻게 하면 남편을 이길 수 있을까? 나도 내가 잘하는 일을 즐겁게 하면서 돈도 잘 벌고 싶다! 그래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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