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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정 May 10. 2023

EP1. 여행이 주는 설렘의 실체

우리가 말하는 '여행의 즐거움'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요?

여행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두근거림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유튜브를 통해서 세계의 어떤 곳이든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물론 간접적이지만) 이처럼 여행과 관련한 콘텐츠들이 우후죽순 생겨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여행 자체가 주는 고유의 설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일부



[여행을 준비하며]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위시리스트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2주간 3개의 도시를 방문할 예정이었고, 각 도시마다 가야 하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나 체험해야 하는 문화 공간들이 넘쳐났습니다. ‘여행을 잘했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해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동시에 ‘만족스러운 경험을 얻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있었기에 위시리스트를 꼼꼼히 정리하고자 했습니다. (이전 글에서 여행에 대한 글을 틈틈이 업로드하겠다는 선언을 했기에 평소보다 마음이 무겁기도 했고요.)

노션으로 정리한 위시리스트의 일부. 한 눈에 보기 쉽도록 항목/지역/유형별로 작성하고, 비용과 같은 세부 항목은 각 아이템으로 관리했습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마음으로 리스트를 정리하고 나니 묘한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이미 경험해 봤거나, 앞으로 한국에서 충분히 경험해 볼 수 있는 일들이었거든요. 한마디로 '별 거 없는 리스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여행에서 어떤 것을 기대하는 거지?

왜 굳이 (일상이 아닌) 여행을 통해 이 일들을 경험하고 싶은 거지?



[여행과 일상의 차이는 내 마음이 만드는 것]

"커피 마시기." 이 문장은 어떤 수식어가 붙느냐에 따라 아래와 같이 느낌이 달라집니다.   

'출근 후 사무실'에서 모닝커피 마시기

'뉴욕의 카페'에서 모닝커피 마시기

여행이 특별한 이유는 일상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는 일과 회사가 하루의 중심이 되기 쉽습니다. 자는 것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커피 마시기’ 그 자체보다는 커피 마시고 나서 할 '업무'에 집중하게 되죠.

하지만 여행은 행위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줍니다. 내가 커피의 어떤 향을 좋아하는지, 어떤 온도를 좋아하는지, 모닝커피가 내 컨디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커피 마시기 외에 내가 신경 써야 할 일은 없거든요.

당신이 마시는 커피의 원두가 어느 농장에서 왔는지, 어떤 방법으로 길러졌는지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여행에서의 모든 경험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알기 어려운 내 모습을 여행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더 잘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따라서 이번 여행에서 기대해야 할 것은 ‘전에 없던 새로운 경험’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더 깊은 이해’였고, 위시리스트의 맨 위에 한 가지 항목을 추가했습니다.

여행의 모든 순간 내가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기.



[여행의 설렘을 지키기 위한 태도]

여행의 즐거움이 새로움과 비례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이국적인 경험을 한다고 해서 꼭 즐거운 여행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여행은 낯선 곳을 방문하는 일(=익숙한 곳을 떠나는 일)이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자주 겪게 되죠.

이때 우리는 두 가지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1) 그 상황에 대한 아쉬움에 발목을 잡힌 채 하루를 마무리하거나, 2)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다음 일정에 집중하는 것. 누구나 후자의 긍정적인 태도를 지향하겠지만 이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죠. 아쉬움은 마음의 문제니까요.

하루가 잘 풀리지 않을 땐 주저앉고 싶어요... 특히나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는 더더욱이요.

그렇다면 내 마음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우선순위 최상단에 ‘여행의 모든 순간 내가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기’를 추가한 이유는 긍정적인 마음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행의 모든 순간 행복할 수 없다면(즉 ‘기분 나쁜’ 순간을 한 번쯤은 마주해야 한다면)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해도 그 감정의 원인과 나의 구체적인 반응에 대해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 불쾌한 기분 대신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이고, 그렇다면 여행의 모든 순간을 의미 있게 보내겠다는 처음의 설렘과 다짐을 지킬 수 있을 테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순간은 분명히 있을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처음 가졌던 설렘으로 이 여행을 끝까지 이어가는 일일 겁니다. 그 과정에서 더 강인한 사람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거고요.

본격적인 이야기, 이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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