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정 May 23. 2023

EP2. 가진 것을 누리는 생활, 뉴욕 라이프

대단하거나 근사하지 않아도, 여유롭고 행복할 수 있으니까!

[미국 여행 프로젝트 글 모음]
- EP0. 29살, 스타트업 퇴사하고 뉴욕 갑니다 - 여행 프롤로그
- EP1. 여행이 주는 설렘의 실체 -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당신은 여유로운 사람인가요?


여유롭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가진 것이 많으면 여유로울까요.

글쎄요, 그보다는 가진 것을 ‘잘 쓰는’ 사람을 보고 여유롭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눈 뜨고 감을 때까지 일만 하는 백만장자의 삶보다는, 취미 생활을 즐기거나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하는 삶이 여유로워 보이죠. 좀 더 나아가면, 속상해하는 친구의 마음을 살피거나 누군가의 기쁜 소식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이야기를 들어줄 때 여유롭다고 생각할 겁니다.(한 쪽이 더 좋고 나쁘다는 것보다는, 여유라는 말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잠들지 않는 도시에서 발견한 여유]

뉴요커라는 단어가 갖는 다양한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 뉴욕을 가보니 역설적이게도 ‘여유로움’이 느껴졌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운동복 차림으로 공원을 달리고, 주말이면 햇살 아래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 빌딩 숲과 브로드웨이, 재즈 바가 즐비한 도시에서 자신만의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지켜내는 사람들이요.

초고층 빌딩 사이에서도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어요.

The Jewel of the City라고 불리는 센트럴파크는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풀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태닝을 하고, 손을 잡은 노부부들이 서로에게 익숙한 속도로 산책을 즐겼습니다. 아이들은 해사한 얼굴로 흙과 풀을 만지고, 그런 아이를 부모들은 반짝이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다른 공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늦은 밤 가로등 아래 연인들의 다정한 대화 소리가 가득한 브라이언트 파크, 퇴근한 직장인들이 힘차게 조깅을 하던 허드슨 리버 파크, 노을 지는 이스트 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도미노 파크까지.

뉴욕에서는 도심 한가운데에서 태닝을 할 수 있다는 사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세계 금융 시장의 중심,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여행지.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 뉴욕에서 제가 마주한 풍경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화려함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지켜내는 사람들. 여유란 저런 것이 아닐까, 중얼거리게 되더군요.


그들의 공통점은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쁜 하루 중에도 공원을 걷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햇살을 즐기는 것이요. 사랑하는 강아지와 산책도 하고요.

눈을 뗄 수 없었던 귀여운 강아지... 사랑에 빠진 눈으로 강아지를 바라보면, 주인은 뿌듯한 미소를 짓습니다.



[나를 지키는 방법, 여유 찾기]

판교에서는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습니다.

아침 아홉 시 반에 출근해서 새벽 두 시에 퇴근하곤 했습니다. 아침 열 시부터 오후 여섯 시 까지는 회의를, 오후 여섯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는 밀린 메일을 읽고 그날의 지표를 확인한 뒤 문서들을 업데이트했습니다.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보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하루는 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24시간 안에 저라는 사람을 구겨 넣고 최면을 걸었던 겁니다. 그것이 성과이자 성공이라고요.

새벽 두 시가 되면 계절의 감각이 사라집니다. 모든 것이 잠드는 시간이라 그런 걸까요.

물론 보람찼습니다. 당시 성과에 대해 상사에게 칭찬을 받기도 했고요. 그러나 등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요가원에 갈 수 없었고, 읽으려고 샀던 책 위에는 먼지가 쌓였으며, 친구들에게 안부를 물으려다가도 늦은 시간을 확인하곤 핸드폰을 닫았습니다.

한 마디로 회사 밖에서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왜 여유를 따지는 게 중요하냐고요? 여유를 잃는다는 건 나를 지킬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일을 대충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돈이나 시간에 쫓기는 게 아니라, 그것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지만 판교에서의 저는 일의 주인이 아니었던 겁니다. 일에 최선을 다했고 일을 사랑했지만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없었어요.

반대로 뉴욕의 풍경에서 여유라는 의미를 발견하고 지난날을 회고할 수 있었던 것은, 여행 전 스스로에게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행을 나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다짐, 그런 다짐이 아니었다면 예전처럼 목적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공허한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갔을지도 모르죠. 새벽 공기를 맞으며 퇴근하던 그날처럼요.

느린 속도로도 달릴 수 있어야 해요



[하루를 나의 것으로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뉴욕에서 깨달은 점은 '걷기'가 내가 가진 것을 누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사실입니다.

두 발로 걸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배울 수 있습니다. 멈추지 않으면 걸을 수 있으며, 계속 걸으면 변화를 경험할 수 있고, 변화하는 눈앞의 풍경에서 어떤 것이든 배울 수 있습니다. 온몸과 마음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죠.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이 내게 주어진 기회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나요? 아니면 지나간 하루가 아득히 멀게 느껴지나요?


선뜻 답을 내기 어렵다면, 신발을 신고 한강에 가 보세요. 뉴욕의 그들처럼요. 한강이 멀다면 근처 공원도 좋습니다. 그리고 걸어보세요. 당신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나무들이 수많은 가지를 뻗기 위해 이겨냈을 시간들을 헤아려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있음을 노래하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그리고 그들의 시선으로 자신을 살펴보세요. 내가 가진 것과 나를 둘러싼 주변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작가의 이전글 EP1. 여행이 주는 설렘의 실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