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정 Mar 02. 2024

보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려는 태도

MMCA <올해의 작가상 2023>, '갈라 포라스 김'의 작품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보이지 않음에도 분명히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것들, 그러나 이름을 발음할수록 막연히 멀게 느껴지는 것들.


위 사진에 담긴 작품들은 '갈라 포라스 김'이라는 작가가 같은 장소를 각각 다른 시간에 그린 것이다. 해가 가장 높이 뜬 시간에 그린 오른쪽의 풍경은 대비가 명료하며 형체가 뚜렷하고, 왼쪽으로 갈수록 해가 점점 지면서 풍경은 어둡고 경계는 모호해진다.


작품 앞에서 한 아주머니와 그의 손자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대화를 나누었다.

"자 봐봐, 왼쪽으로 갈수록 점점 어두워지지? 해가 져서 그런거야."

"그런데 그건 당연한거잖아요?"


당연한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왜 당연한 것들을 그리고 쓰는가.



<신호 예보> / 2021년 / 마대, 액상 흑연, 잉크, 비정제 물, 패널, 제습기

바닥에 흰 캔버스가 있다. 그 위에 흑연이 칠해진 커다란 *마대가 매달려 있다.

마대 왼쪽에는 얇은 튜브가 이어져있다. (보이진 않지만 이 튜브는 커다란 제습기와 연결되어 있다.)

*마대: 굵고 거친 삼실로 짠 커다란 자루


제습기는 전시장을 채우고 있는 공기 중의 수분을 빨아들인다.

제습기를 통해 모인 수분은 물의 형태가 되고, 그 물은 호스를 통해 마대로 전달된다.

한 방울, 두 방울, 마대의 중앙으로 모인 물방울들은 자연스럽게 마대의 흑연을 머금는다.

흑연을 머금은 물방울은 잉크가 되어 캔버스에 흩뿌려진다.

(따라서 캔버스에는 매번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흑연은 연필의 주 재료다.

우리는 연필을 통해 무언가를 쓰고 그려낸다.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이자,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연필은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일기가 되기도, 시와 소설이나 그림과 같은 작품이 되기도 한다. 즉 연필을 통해 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커다란 마대에 고인 물이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낸다.

그러니 캔버스에 그려지는 것은 물의 그림이다. 공기의 작품이고,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에너지의 결과물이다. 작품이 설치된 전시 공간에서 이 모든 과정을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들을 온전히 느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을까?




봄이나 여름이 되면 하늘과 나무, 그리고 빛이 새어나오는 장면을 자주 담곤 했다.

그 찰나의 순간들이 주는 어떠한 울림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을 잊고 싶지 않아 카메라를 들었을 것이다.


그 때의 하늘과 나무, 빛의 근원은 아직도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 시간과 풍경은 연속적이며 무한한 형태로, 또한 입체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찰나에 존재하는 자의 몫이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것들, 당연한 것들을 쓰고 그리려는 것은 삶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일 것이다.

마주하는 모든 순간과 운명들을 이해하는 것. 그것을 통해 본질을 발견하려는 것.

그 모든 과정이 한계를 규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넓고 다양한 관점에서의 관찰을 통한 확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를 속박하는 장소로부터의 영원한 탈출>
"이 과정은 살아 있는 자들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죽은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사후세계를 존중하는 방법을 찾아 그 의미를 되새기도록 한다."



'갈라 포라스 김' 작가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궁금하다면?(클릭)

'올해의 작가상 2023'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궁금하다면?(클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